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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태룡
작성일 2005-11-20 (일)
ㆍ추천: 0  ㆍ조회: 2183   
천국의 아이들.I
1.경인고속도로 위

 2005년 11월 19일 오후 7시40분,
 경인 고속도로는 꽉 막혀 있다.
 내 차 뒷좌석에 앉아 있던 경서가 어느새 잠에 떨어져 있다.

 민경서, 1988년 생, 부천실업고등학교 2학년 재학중
 아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올라와 낮에 공장에 나가고  
 밤에는 고등학교 학력인정을 받기 위해 공부 중.
 공장 근처에서 친구랑 자취한다.

 경서는 이번 주말에 아산 집에 들려 집안을 좀 챙겨보고 올라올 생각이다.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절개하고 항암 치료중인 어머니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이틀이나 공장에서 밤을 세운 안색이 파리하다.
 지금은 사출기를 돌리고 있는데 조만간 금형기술을 배울 것이라고 한다.
 올해 서른 살인 회사 사장님 역시 부천학교 출신이다.
 기술을 배워 하청공장을 차려서 운영 중인데 종업원이 스무명이나 된다.

 결국 경서는 8시 기차를 놓치고 9시 기차를 타게 되었다.
 마누라는 경서가 대합실에서 졸다가 그나마 차를 못 탈까 봐 걱정이다.
 영등포 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2.돼지갈비집

 먹성 좋은 애들 스물 일곱 명이 한꺼번에 밀어 닥친 돼지갈비집은 갑자기 난리가 난 꼴이다.
 김진호 선생은 예산서를 셈하며 메뉴를 뭘로 할까 고민한다.
 결국 돼지갈비, 혹은 삼겹살과 공기밥으로 정했다.

“야, 고기로 배 채우면 안돼, 고기는 어디까지나 반찬이야!”
“아줌마, 밥 좀 빨리 갖다 주세요.”
 모처럼 고깃집에서 외식을 하는 애들이 정신없이 먹어대고 있다.
 깔깔대거나 서로 흉을 보면서 젓가락질하는 모습이 너무 이쁘다.

 내 옆자리의 은경이는 부천대학에 진학하여 산업디자인을 공부할 것이고,  
 그 앞의 수정이는 삼성전자로 취업 확정.
 현주는 열쇠 홈통을 만드는 숙련공인데 졸업 후 이직 여부를 결정 못하고 있었다.

 1인당 만원 정도의 식대가 나왔다.
 보조금을 받으려 눈치하는 하는 김선생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우리 마누라 있을 때는 항상 원칙대로 해야 됩니다.
 오늘은 그냥 김선생이 다 낼 수 밖에 없어요.”
 400만원에서 시작한 통장에는 이제 달랑 몇 십만원 밖에 남지 않았다.

 식사 후 아쉬움을 달래면서 모두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3.영화 [천국의 아이들]

 이란 테헤란 남쪽 흙벽돌 동네에 사는 초등학생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무공해로 제작되어 소개된다.
 영화는 주인공 소녀의 하룻동안 삶을 통해 이란 사회의 무지와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녀가 중학교 입학시험 보는 날
 아버지가 급환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등교 전에 가축 챙기고,
 젖먹이 동생 돌보면서 시험을 치르러 가기까지의 안타까운 사정이 한시간 남짓 속 터지게 느린 속도로 전개된다.

 우유를 짜다가 젖소에게 채이고,
 시험치르는 동안 애를 맡아줄 사람은 못 구하고,
 시험 볼 필요가 없다는 할망구에게 붙들리는 등
 너무 답답한 일이 연발로 일어나 거의 시험을 못 볼 지경에 이르지만
 굳센의지와 기지가 발휘된 끝에
 주인공은 시험장에 도착하여 시험을 치른다.

 마지막 대사가 일품이다.
 “어려운 일은 늘 생기는 법이다. 오늘은 참 분주하고 힘든 날이었다.”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하면서도,
 굳센 의지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어린 소녀의 삶을 담은 영화를 보면서
 우리 부천학교 <천국의 아이들>의 가슴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4.연극반 동아리

 김진호 선생, 서른 다섯살, 서울예전 연극영화과 출신,
 부천학교 경력 10년차, 키 182Cm, 몸무게 95Kg, 성격 무지 밝고 우스개소리를 잘함.
 키작은 간호사 마누라에게 꼼짝도 못함.

 "애들에게 왜 연극을 시키나요?”
“특별활동 시간에 일상의 생활을 연극처럼 표현시키거나, 서로 협동하는 동작을 반복하게 해 줍니다.”
 “애들이 처한 개인적인 현실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자기자신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배려 같은 게 부족하기 쉬운데
  이걸 연극놀이를 하면서 보충하고 있습니다.”

 “김선생. 한달에 한번씩 애들에게 외부 공연을 보여주면 어떨까요?"
  "청소년기에 연극, 영화,  뮤지칼, 댄스, 축구경기 같은 것을 보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예술 자체에 대한 감흥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한다면
   그게 평생가는 재산이 될 수 있습니다.”

 아주 어렵게 고등학교를 다녔던 시절,
 음악선생님이 강요하여 음악회에 다녀와서 감상문을 제출하고
 친구들과 영화를 본 후 토론했던 경험이 참 좋았다.

 우리가 늘 늘 감동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그 또한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감동”이란 놈은 어려서부터 감성훈련을 해야 발현하게 되어 있다.

 내가 올해 연초에 100만원을 내고 동지 3명을 규합하여 특별활동 지원비 400만원을 김선생에게 주었다.
 지난 1년간 김선생이 치밀하게 기획하여 잘 진행해 나갔다.
 결과가 너무 좋았다.
 주관적 착각인지 모르지만
 애들이 공연 나들이 덕분에 학교다니는 재미를 더 느끼는 것 같았다.
 만날 때마다 표정이 밝아지는 느낌이다.
 매월 공연구경 때마다 다른 동아리도 한 팀씩 합류시키기로 했다.

 김진호 선생이 어렵게 말을 건넨다.
“다른 동아리를 맡은 선생님들이
  우리부서에 집중 지원되는 이런 외부 지원금을 무척 부러워하기도 하고,
  더 많은 지원을 아쉬워합니다.
  내년에 확대하여 지원해 줄 수 없나요?
  연말에 전교생을 데리고 외부 공연을 볼 생각이니 100만원만 추가 송금해 주세요”
 
 조만간 100만원은 송금하기로 했고, 내년 문제는 차차 연구해 보자고 했다.


5.부천실업고등학교(www.jalani.or.kr)

 지난 4,5년간 부천학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과 졸업식 날,
 고교동창 이규, 최명규와 함께 교사들 회식연에 초대받아 참가하는 일이 나의 연중 공식일정에 포함되었다.
 우리는 번갈아 가면서 밥값이나 맥주 몇잔 값을 부담하곤 했는데 제법 재미난 일이었다.

 부천학교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 내 맘을 잡아 끄는 것은
 학생과 선생님들 모두의 가슴에 담겨있는 아픈 사연들이었다.
 가정이 깨져서, 부모가 무능해서
 삶의 정상궤도를 일탈해 버릴 위험에 처한 어린 애들을
 젊은 선생들이 온 몸을 던져가며 17년째 지탱해 주고 있는 곳이 부천학교다.

 낮에 직장에서 일해야만 밤에 학교에서 공부하는 자격이 주어진다.
 직장을 잡아 주거나, 직장에서 탈락한 애들이 잘 지내도록 챙겨주는 것은 선생님들 몫이다.
 그러나 '어디 번듯한 직장이 늘 있나, 어렵게 넣어주면 애들이 잘 버티기를 하나?’
 선생님들 또한 죽을 맛이다.
 입학 후 졸업하는 학생 비율이 40%에 불과하다.
 돈이 있어야 애들을 얼래고 달래면서 지도해 나갈 수 있는데
 운영자금이 절대부족 상태다.

 선생님 평균 월급이 130만원 수준이다.
 돈만 생각한다면 젊디 젊은 선생님들이 굳이 거기서 그러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 바보들(?)은 애정 때문에 애들을 뿌리치지 못하고
 부천학교에 주저앉아 청춘을 불사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개인적으로 얼마간의 돈을 후원하거나
 외부에서 스폰서를 끌여 들이는 일을 해 왔으나 힘에 부친다.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상일은 모두 인연을 따라 하게 되어 있다.
 얼마 전에 수만 명의 죽음이 있었던 파키스탄 지진 피해자에게도,
 인도네시아의 쓰나미해일 피해자에게도 한푼의 구원금도 보내지 못했다.
 내 마음통이 좁은 소치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한편으로는 아직 나와의 연이 닿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부천학교 재정을 돕기 위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으나
 그 인연의 끈을 더 이상 당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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