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선생님께,

봄이라고는 하지만 황사먼지 부옇게 끼어 천지간에 혼돈만 가득하고, 공연시 사흘이 멀다 하고 비까지 추적거리는 통에 올해 춘삼월은 그야말로 春來不似春입니다.

언감생심 하늘같으신 조정래선생님께 못난 글이지만 만용에 힙입어 몇 자 올립니다.

우선 이 글은 기본적으로 독후감, 즉 제가 선생님의 글을 주관적으로 소화해 낸 감상문입니다. 저에 대해서 몇 가지 기본 정보를 미리 드림으로써 예를 갖추고자 합니다.

-      이름 김태룡, 1956년생

-      광주일고 1976년 졸업. 1982년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야간부 졸업

-      대학졸업 후 현대그룹에서 자금관리 업무에 16년간 종사

-      개인사업을 시작해 10년 간 운영. 지금은 상당히 큰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여 운영중. 해외에서 태양광사업을 추진하고 있음

-      문.사.철에 대해 큰 흥미를 갖고 있으며, 성균관대학교 민주동문회 회장이기도 함.

-      매년 여름 선암사에서 열리는 3박4일간의 기도회에 10년 째 참석.

지난 가을 제가 가입해 있는 재가불자 모임이 주도하여 50여명이 1박2일로 전북 김제지방으로 문화재 답사여행을 갔습니다. 스물네번째인 금번 답사여행을 통해 김제지방이 참으로 대단한 문화의 보고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륵신앙의 중심도량 금산사, 통일신라가 백제부흥운동을 감시하기 위해서 운영했던 귀신사, 한국의 초기 기독교 정신이 오롯이 살아있는 금산교회, 그리고 강증산이 운영했던 구리개 약방터가 한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이 훑고 간 민중들을 보듬고 안았던 진묵선사의 유적들도 잘 남아 있었구요.

벽골제를 둘러보고 죽산면의 하시모토 농장 건물을 살펴 본 저희 일행은 <아리랑문학관>을 관람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쓰시던 일용품으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만년필,볼펜심,그리고 원고지를 보면서 선생님 내공의 깊이를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십여년 전에 <태백산맥>을 읽은 후에는, 사업을 핑계대 술마시는 데 시간을 허비하느라 여태까지 <아리랑>을 읽지 못했습니다. 실은 태백산맥에서 원체 큰 감동을 받아버렸기에 마음 속으로 아리랑이 그 아류쯤 되리라고 미리 짐작을 한 탓에 <아리랑>에 손이 안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답사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리랑과 한강을 한 질씩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새벽마다 한권씩 독파하였습니다. 저는 곧바로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었습니다. 책 권 수가 후반으로 넘어갈 때마다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책을 손에서 놓은 지 일주일쯤 됩니다. 책읽기가 끝나자 발을 허방에 디딘 듯한 허전함을 메꾸어 뭔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에 독후감을 씁니다.

조선이 일본에게 능욕을 당한 끝에 꼭 병탄이 된 지 올해가 꼭 100년.

선생님은 지긋지긋한 일제강점기를 거쳐 사상적 대립이 표면적으로 분출해버린 6.25동란, 그리고 전쟁의 상처를 쓰다듬어 가며 경제 도약의 기틀을 이룩한 1980년까지 무려 83년간의 세월을 써 내려간 이야기들을 풀어 <아리랑>,<태백산맥>,<한강>에 담았습니다. 억눌린 채 착취를 당하며 사는 풀뿌리 민중의 피와 땀으로 점철된 이 땅의 역사들, 그리고 내 강산을 되찾아 사람 사는 세상을 세우려던 순국 선열들의 삶이 생생하게 나에게 전이되어 왔습니다. 특히 우리가 국사교육을 반푼이로 받는 바람에 독립운동사를 거의 알지 못했었는데 아리랑을 읽고서 비로소 잃어버린 역사책을 되찾았습니다. 어찌 살아야 사람 속에서 생각을 깊이하고 바른 행실을 할 수 있는지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소설 전 과정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그래, 너는 시방 어떻게 살아 볼 참이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5십대 중반에 선 저는 이번에 스물두권의 대작을 독파하면서 내가 생활하면서 실천해야 할 과제를 보다 선명하게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내 이웃으로의 回向”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지어 온 모든 인연이 나로 인하여 더 선하게, 바르게 발전하도록 내가 좀더 꼴심을 부려 보고자 합니다. 나이 든 핑계를 대 나태해 지지 말고 가족부터 시작해서 일가친지, 친구들, 더 나아가 사회 전체에 의미있는게 기여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청을 하나 드려 볼까 하는데 어떠실른지요?

조만간 선생님 일정이 허락하는 때에 선생님 내외분과 제 부모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싶다는 제안입니다.

1932년생이신 제 부친도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으셨습니다. 부친과 저는 선생님에 대해서 얘기 꽃을 피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부친이 지난 연초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습니다만, 본인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계십니다. 맨 정신으로 계시면서 온전한 삶을 누리실 기간이 불과 몇 개월 남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머지 않아 병마가 물어뜯는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하시리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매 주말이면 아버지 모시고 전에 다녔던 맛있는 식당을 찾아 외출을 나가고 있습니다. 4월 10일께는 만개한 벚꽃이 강물과 함께 찰랑거리는 팔당호를 드라이브하려고 합니다.

국졸의 학력이셨던 제 아버지는 늘 당당한 선비임을 자처하셨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한강>의 ‘천서방’ 만큼이나 辛酸한 세월을 사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지적 호기심이 넘치시던 당신은 독서를 통해 많은 지식을 쌓으셨습니다. 선생님 내외분과 제 부모님을 같이 모시고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에게는 영광일 뿐 더러 작은 효도를 더할 수 있는 기회로 여깁니다.

참고로 한겨레신문의 정석구 논설위원이 제 친한 벗입니다. 선생님이 허락하신다면 그 친구 내외도 자리를 함께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3월 23일

김태룡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