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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선 친구 아들
"어, 이녀석 많이 컸네?" "내가 너 본지가 언제지?, 야, 정빈아! 니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셨냐?" "예, 6월 17일입니다." 복수 아들 정빈이는 지난 50일 동안에 적어도 1.5cm는 자란 것 같았다. 복수를 닮아서 여전히 목소리도 작고 말수가 없다. 애써 청해야 겨우 띄엄띄엄 한마디씩 한다. 복수 형님을 통해서 정빈이를 위한 관계자 모임을 한번 갖자고 제안을 했는데 날 받는 것이 만만치가 않더니만 결국 어제 광명시 하안동 중국집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당사자인 복수아들 정빈이, 정빈이 담임 안태석 선생님, 복수형, 나, 그리고 광명에 사는 우리 친구 정대진. 중국음식을 시켜 놓고 모두들 한마디씩 해댄다. 한마디 훈rP를 할 기회는 지금 뿐인 듯 어린애 말을 듣기 보다는 자기 이야기부터 먼저 쏟아 놓는다. 듣는 정빈이가 그 말을 소화를 하고 못하고는 다음 문제인 것 같다. "야, 정빈아! 너 요즘 뭐 하면서 시간 보내냐?" "너 고등학교는 다닐 생각이냐? 학교 성적 올리려면 학원을 다니면서 뒤떨어지진 공부 보충을 해야 할텐데." "너 핸드폰은 있냐?" "너 통장에 돈 얼마 있냐?' "너 피씨방에서 올린 포인트가 얼마나 누적되어 있냐?" "엄마는 언제 오신다든?" 정빈이 선생님과 우리는 금방 의기가 투합되었다. 57년생인 정빈이 선생님은 유도선수 출신 체육선생님이셨다. 운동선수 출신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노력을 거듭하여 이제는 영어도 아주 잘하고 박사학위, 컴퓨터1급 준비를 한다고 했다. 처자를 미국으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인 선생님이 정빈이를 맡겠다고 나섰다. 사실은 자기로서도 마음만 있지 어찌 저놈을 살펴야 할지 몰라 답답했었는데 이제 한번 같이 해보자고 하셨다. 50줄에 들어선 중년 사나이들이 보는 세상에 대한 눈높이가 비슷했다. 듬직하신 선생님은 앞으로 정빈이를 꼼꼼히 살피며 성장기를 쓰시겠다고 했다. 불쌍한 어린 녀석에게 좋은 선생님이 계시니 그나마 큰 다행이다. 공부는 꼴찌이고, 보살펴주는 이가 없어서 아침에 집을 나가 비실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밥늦게 들어오는 정빈이는 같이 놀 사람도 의논할 사람도 앖었다. 나이든 할머니와는 어차피 겉도는 형편이었다. 오늘 어디갔다 왔냐고 했더니 이모집에서 온단다. 어머니가 이혼하고 집을 나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안들어 오는데 그 이모가 얼마나 가겠냐 싶어 애잔한 마음이 끓어 오른다. "그래, 앞으로는 뭐하고 살래, 너 어떤 학원을 다니고 싶냐?"고 했더니 "컴퓨터 배워서 그래픽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했다. 그건 나중에 배우라고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달래고 얼려서 지 수준에 맞는 영어수학 보충학원에 넣기로 하고 공부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그리고 애하고 연락을 위해서 한달에 2만5천원 정액요금 핸드폰도 사주기로 했다. 공부 잘하면 내가 쓰는 중고 노트북, 선생님이 쓰는 자전거, 그리고 두둑한 용돈도 주마고 했다. 나는 호기있게 말했다. 너는 아직 어리고 시간도 많다. 부모가 안계시지만 오히려 그 환경 때문에 더 굳세게 자랄 수도 있다. 실업계고등학교 갈 생각말고 대학에 가겠다는 큰 꿈을 갖고 죽자사자 공부해라. 애 눈가에 가끔씩 이슬이 맺혔다. 사춘기가 한창인 이 녀석은 벌써 눈물도 다 마르고 없는 듯했다. 하기사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 집나가고, 일정치 않은 아빠와의 생활, 더구나 창졸간에 아빠를 잃은 안타까움... 할머니 명의로 집이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 돌보는 생활보호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 급식비 4달치 8만원, 무슨 활동비 4만원이 밀려 있는데 해결책이 없다고. 선생님은 2학기부터는 자기 자전거를 내주면서 신문배달을 시켜볼 생각을 했었다고 하셨다. 현실적으로 한달에 4,5십만원만 조달해 내면 그 놈 고등학교는 마치게 해 줄 수 있다. 어느 독지가를 찾아 보기도 하고, 장학재단도 찾고 하면 그 정도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 우리 3학녀11반 출신 의사만도 20명은 된다. 뜻이 확실히 선다면 우리 광주일고 동기들이 그 녀석 하나 못 키울까? 어쨋든 나는 약속했다. "정빈아, 여기있는 사람 모두 힘을 합쳐서 니가 두발로 똑바로 서서 이 세상을 보듬고 살게 해주마." "대신에 너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잠들기 전에 <소중한 내인생>이라고 세번씩 말해라." 선생님이 거드신다. "니가 공부를 잘한다고 할 때 니 옆에 잇는 모든 사람이 신나지만 니가 공부를 안할라고 하면 어쩔 것이냐. 다 너한테 달렸다." 또 대진이가 한마디 한다. "너 처음에는 공부하기 싫어도 금방 공부가 재미있어진다. 겨울까지만 열심히 해봐라. 아저씨는 광명시에 사니까 니가 공부 열심히 한다고 하면 떢볶이 사줄께." 정빈이가 다음 월요일날 방청소를 해놓으면 선생님이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정빈이 재산 7,000원중 5천원짜리 통장을 만들고. 선생님이랑 학원을 골라 보기로 했다. 나는 준비해간 금일봉을 선생님께 전해 드렸다. 지금 정빈이를 위한 통장에는동창들이 보낸 92만원이 들어와 있다. 내 생각에는 우리 친구들 개인별로 첫달에만 20~30만원 정도의 몫돈을 내고 매월 1만원이나 2만원의 장기 송금약정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국민은행 곽수만 234301-041-029979> 모든 돈은 일단 정빈이 선생님과의 협의하에 지출될 것이고 정기적으로 수입과 지출이 보고될 것이다. 친구들아,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선량하다고 믿고 있으며 또 그 선량함을 실천하려고 한다. 그러나 각 개인이 실천하는 정도는 편차가 굉장히 심하다. 어떤 이는 좋은 일에 수입의 20%를 내기도 하고 어떤이는 생각만 있기도 하다. 또 많은 기부와 헌금을 하는 친구중에도 이런 딱한 경우에는 아예 돈을 못낼 수도 있다. 우리가 하는 선행의 실천량을 결정하는 변수는 무엇일까? 내 경험으로는 마음이 움직일때 돈내려는 손이 바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막상 손이 움직일 때는 계량하고 재보다가 그만 잊어버리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일을 할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줄 때는 아낌없이, 인연을 따지지 말고 경중을 따지지 말고, 지체 없이 과감하게. 물론 세상에 돈 낼 곳은 참 많고 내가 앞으로 살면서 써야 할 돈을 생각하면 지금 내 통장은 한참 부족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돈이 남아서 내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우리 일고 51회 친구들 수준이면 選民, 즉 "Nobles"라고 생각한다. 뽑혀서 잘 사는 정도의 여건이 된다면 지 식구들이랑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에 따른 公的 責務, 즉 "Oblige"를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선한 마음들이 김복수 아들을 키워내는 인연으로 묶어지기를 바란다. ================================================================================ 내 어찌하다 보니 잘난 척하거나 훈시적으로 글을 쓴 것 같아 미안허이. 하나 그것은 본래의 마음이라기보다는 글의 전개기술상 그런 것이니 친구 여러분들의 용서바라네. 태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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