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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마라톤 완주기
내 사랑하는 작은 아들 철영에게 이 곳 서울은 청명한 가을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데 그곳 캐나다는 벌써 추워지기 시작한다더구나. 네 하숙집 아저씨 말로는 이번 주말에 눈이 올 것 같다는데 환절기에 건강에 유의하거라. 아빠는 어제 춘천마라톤에 출전하여 완주하였다. 네가 아빠의 건강이 염려되어 나이 마흔 여덟에 풀코스를 뛰는 것이 무리라고 네 엄마에게 걱정섞인 충고를 했다지만, 아빠가 바라보는 마라톤의 세계는 그런 것 만은 아니란다. 네 나이 이제 10대 중반, 꿈많은 네 인생에 하나의 느낌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춘천마라톤 참가기>를 써 보낸다. 올해로 57회째 개최되는 춘천마라톤은 이미 우리나라 최고의 마라톤축제가 되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크게 붐이 일어나 동호인이 200만에 이른다는 마라토너들에게 춘천마라톤 풀코스 참여는 이제 하나의 꿈이 되었다. 올해는 무려22,915명의 참가자들이 몰려들었더구나. 관광버스로 춘천공설운동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이곳은 커다란 축제의 도가니가 되어 끓고 있었다. 스포츠 용품부터 오뎅이나 번데기를 파는 사람들까지 온갖 장사치들과 선수들, 응원나온 사람들, 대회 관계자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오전 11시가 되자 출전 선수들이 자기 종전 기록순으로 무리를 지어 출발선상에 섰다. 일년 내내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 모여든 전국의 마라톤 강호들이 두근거리는 심장과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그 표정들이 재미있다. 마치 영화 <벤허>의 전차경주에 출전한 선수들인 양, 길고도 험난한 레이스를 시작하기에 앞서 긴장된 마음을 억누르며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마침내 출발을 알리는 총성과 함께 고적대의 경쾌한 팡파레가 울려 퍼지고, 높고 푸른 하늘에는 비행기가 오색 연기를 뿜으며 날아 올라 잔치 분위기를 돋군다. 나는 구름처럼 무리를 지은 선수들 틈에 끼어 천천히, 그리고 힘차게 춘천시내를 빠져 나갔다. 1.5Km쯤 되는 언덕을 오른 후에 다시 긴 내리막 언덕을 내려가니 소양강을 막아 놓은 의암댐이 나온다. 엄청나게 길고 긴 마라톤 레이스의 행렬, 울긋 불긋한 단풍, 그리고 호수와 가을하늘이 보여주는 푸르름의 절정….. 가볍고 경쾌한 달리기가 계속되는 동안 간간히 선수들의 “와아”하는 함성이 들려 온다. 충만한 기쁨을 아우성으로 내 지르면 계곡의 메아리가 화답한다. 길가에 피어난 들국화, 구절초, 코스모스가 고운 때깔을 뽐내며 가을 바람에 살랑거린다. 15Km를 넘어서면서부터 레이스가 본 단계에 접어든다. 오늘 내 목표는 3시간 30분 이내에 들어 오는 것이다. 지난 두 번의 완주 경험을 통해 그것이 쉽게 이룰 수 없는 기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연습을 하면서 길바닥에 뿌린 땀방울의 양이 내가 그 기록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있다. 아빠가 그 기록을 달성하면 모든 마라토너들이 참가하고 싶어하는 보스턴대회의 출전자격을 얻게 된다. 아빠가 얼마나 보스턴대회에 나가고 싶은지는 너도 잘 알 것이다. 아빠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응원단으로 모시고 가서 유서 깊고 아름다운 보스톤시내를 달려 보고 싶다. 이제 그 분들에게는 건강하게 여행을 하실 수 있는 기간이 많지 않다. 마라톤 가는 길에 양가 부모님들을 관광시켜드리면서 자식키운 보람을 안겨 드리고 싶다. 이제부터는 얼마나 작은 힘으로 멀리 달릴 수 있느냐는 게임이다. 최소의 에너지로 최고의 효율을 올려야 하는, 즉 에너지법칙에 맞는 주법을 구사해야 한다. 훈련이 잘 되었을 때 이렇게 달려보면 마치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전혀 힘도 안들고 호흡도 가쁘지 않다. 경쾌한 발걸음에 속도만 붙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하는지 네가 아느냐? 매일 7-8Km의 조깅은 기본이고, 주말이면 15-30Km의 크로스 칸트리, 간간히 언덕에서 하는 근력강화 훈련이 있어야 한다. 여느 사람들처럼 아침에 늦잠을 더 즐기려 해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이 자신감, 튼튼한 두 다리로 자신있게 땅을 박차고 나가고 있는 아빠의 이 자부심을 네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15Km지점을 통과하면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목동운동장에서 새벽마다 같이 운동하는 분인데 나보다 더 잘 달린다. 그 분이 내가 너무 빨리 뛴다면서 속도를 잡아준다. 맞다! 철영아, 좋은 지적이야. 인생살이나 마라톤이나 컨디션 좋을 때, 그리고 잘 나갈 때 앞날을 가늠하면서 속도조절을 해 나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나는 그 순간 컨디션 좋다는 것만 믿고 또 과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내게 맞는 속도로 조정하여 달리다 보니 26Km 지점에서 시작하여 2Km가 넘게 계속되는 오르막도 훌쩍 넘어서게 되었다. 아직도 내 다리에는 탄력이 살아 있다. 허리를 세우고 발목에 힘을 뺀 채 허벅지와 엉덩이의 큰 근육을 이용해서 항공모함을 운전하는 기분으로 꾸준히 내달려 나갔다. 좀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니 수백명의 건각들이 사뿐한 주법으로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전국에서 모여든 고수들답게 고른 호흡소리를 유지하며 가벼운 발걸음을 계속한다. 나는 내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달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스럽고 행복했다. 하지만 나는 풀코스를 달릴 때마다 잊지 않고 나를 찾아 오는 악마와의 대면이 두려웠다. 그 악마는 허기, 다리통증, 무력감, 의지상실, 편안함에 대한 그리움 등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나는 그 악마를 몇차례 만난 적이 있다. 지난 봄 4월, 처음으로 뛴 풀코스에서는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해버려 30Km지점부터 처절한 사투를 하면서 뛰었다. 그때 지옥을 건너가듯 어렵게 얻은 기록이 3시간 45분이었다. 연습이 부족한 가운데 참가했던 제주도 대회에서는 날씨마저 더워서인지 22Km 지점부터 다리에 쥐가 났었다. 그래도 완주해 보겠다고 8Km를 더 버텨 봤지만, 두다리의 발등부터 허벅지까지 붙어있는 근육 모두가 뭉쳐버리는 바람에 뼈아픈 낙오를 감수해야만 했다. 32Km 지점에 도달하니 드디어 악마가 마중을 나온 것 같다. 왼발 발바닥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작은 모래 한알이 박혀 있는 것 같다. 발바닥이 아프니 다른 다리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참고 뛸 것인가, 아니면 신발을 벗어 모래를 털어내 버릴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 자꾸 생긴다. 일단은 고통을 참고 뛰기로 했다. 운동화를 풀고 발바닥을 살피느라 단 일초라도 멈추기가 싫다. 아니, 한번 멈춘 후에는 다시 못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아빠가 최근에 불교공부하면서 배운 보왕삼매경의 다음과 같은 절구가 생각났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겨나기 쉽고, 탐욕이 생겨나면 파계하여 마침내 도에서 물러나게 되느니라.’ ‘그래, 완벽한 컨디션을 기대하지 말자. 이 작은 고통은 즐겁게 견디자.’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36Km까지 왔다. 지금까지의 내 속도는 목표시간의 사정권 안에 들어 있다. 지금부터는 1Km를 5분 안쪽에서만 뛰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아무도 장담 못하는 레이스의 후반이다. 발바닥의 통증이 더 심해지고 있다. 다리 전체가 무거워져 자꾸 가라앉으려 한다. 갈증과 허기도 고개를 내밀고 조금만 쉬고 싶다는 유혹이 나를 부른다. 결국 물을 마시려 컵을 집다가 길가에 무너져 앉아버렸다. 발바닥 상태를 확인했다. 모래만 없애면 발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아차, 동전만한 물집이 생겨 있다. 허탈한 쓴웃음이 나왔으나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고통을 안고 뛰는 것은 오늘의 내 숙명, 여기서 일어서지 않으면 나는 오늘 망한다.’ 그러나 결심은 결심이고 현실은 버거웠다. 다시 속도를 내보려 하나 몸이 엄청 무거워져 있다. 마침 제법 빠르게 뛰어나가는 선수 한사람을 추격하기로 했다. 나는 오늘 레이스의 성패를 여기다 걸기로 했다. 엄청난 흥분과 긴장감이 새로 몰아쳐 온다. 힘차게 팔을 휘젓고 더 큰 보폭으로, 조금은 무리한다는 느낌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래, 드디어 마라톤의 클라이맥스에 섰다. 정점에서의 질주! 좋다, 마지막 레이스를 해 보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여기에 퍼부어 주겠다. 나중을 위해 힘을 아껴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걸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살이중에도 언젠가 한번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때가 오지 않던가? ’ 철영아, 한치 앞날을 알 수 없는 순간에도 할 수 있다는 강인한 신념이 때로는 불가사의한 일을 만들곤 한단다. 미친 듯이 뛰어가는 동안 발걸음이 가벼워져 오는 느낌이 새로 전해져 온다. 그렇게 약 4Km를 뛰는 동안 내가 100명 이상을 제꼈을 것이다. 그 때가 소위 “Runner’s High”라는 무아지경이었던 것 같다. 너무 행복했다. 세상 모든 것이 눈물이 날 만큼 고맙고 사랑스럽다는 느낌이다. 나는 이 유혹에 넘어가서 새벽마다 마라톤화 끈을 동여 매고 연습을 나가는 것 같다. 원래 이 구간이 풀코스 전구간에서 가장 힘이 들기 때문에 죽기로 맞설 각오를 했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날듯이 뛰고 있으니 얼마나 큰 행운인가? 철영아, 내 몸이 경험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진리는 없단다. 영화로 보거나, 책으로 읽거나, 생각에서 얻어낸 간접 경험과는 달리 땀과 눈물과 고통을 뒤범벅하여 얻은 경험과 믿음이야말로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된단다. “내 땀, 내 눈물, 내 다리, 내 자신감, 감사함, 너그로움…” 이것이 내가 달리는 목적이고 이유이다. 나이가 쉰이든 예순이든 가릴 것 없이 나는 달릴 수 있다면 달릴 것이다. 마라톤은 이렇게 정신적 기쁨과 충만감까지 주기 때문에 빠른 걷는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것과는 그 성질이 다르단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잊고 있던 악마가 다시 찾아왔다. 골인지점 1.5Km 전방에서부터 종아리 근육들이 미세하게 동작을 시작하고 있다. 작은 지렁이가 휙 스쳐가는 느낌인데, 그것은 분명히 쥐가 나려고 하는 신호였다. 바짝 긴장이 된다. 제주도 마라톤에서 쥐가 나 옷핀으로 찔러가며 뛰었던 생각이 난다. 여기서 근육이 마비되면 끝장이다. 온전하게 마지막까지 가려고 긴장감을 완화시키면서 속도를 좀 낮추었다. 뒤따라 오는 선수들이 휙휙 내 옆을 지나간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심장이 터질 듯이 질주할 때 느낄 수 있는 막판 1Km 스퍼트의 즐거움은 포기하기로 했다. 드디어 춘천종합경기장이 시야에 들어 온다. 이제 결승점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다리 근육들이 연속적으로 꿈틀거리려고 한다. ‘참아라, 이놈들 조금만 참아라,’고 달래면서 운동장안으로 들어섰다. 와아, 외쳐대는 함성! 힘차게 고동치는 내 심장의 박동소리! 그리고 풀코스를 질주하는 동안 부풀어 올라 팽팽해진 내 다리 근육들! 이 당당함, 이 자신감, 이 통쾌함! 나는 지금 모든 것을 가진 제왕이다. 아무도 부럽지 않고, 누구도 두렵지 않다. 나는 개선장군이 되어 피니쉬라인을 통과했다. 3시간 26분 55초! 22,915명중 1,649등, 40대 참가자중 310등. 만족하고 감사한다. 다음에는 더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보스톤 대회에 갈 수 있다. 이 기쁨을 너에게 보낸다. 자랑스러운 너를 한없이 사랑하는 아빠 씀  최준영: 태룡이 축하한다. 정말 대단하구나. 보스톤 마라톤 자격도 취득하고. 11월에 우리 동문 두엇이 고창에 마라톤(하프) 출전한다고 하더라. 내년 에 완주에 도전한다는군. 넌 내년에 보스톤 가냐? 다시 한번 축하한다. -[10/23-13:43]- 위운량: 축하한다. 지난 해에도 후기를 보았는데 기록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구나.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하였을까 싶다. 나도 풀코스를 세번 완주하였 는데 최고기록이 4시간7초다. 11월 2일에 중앙마라톤에 나갈 채비를 하 고 있는데 열정이 많이 식어서 .... 이제는 마라토너들의 꿈의 무대인 보스턴대회의 후기도 보고 싶구나. -[10/24-12:02]- 김태룡: 지난 일요일에는 제가 춘천마라톤에 참가하여 완주하는기쁨을 누렸다네. 마침 주최측인 조선일보에서 <참가기>를 공모한다기에 캐나다로 유학보낸 자식에게 보낸 편지 형식을 빌어 몇자 적어 보았네. 혼자만 가지고 있기에는 워낙 큰 희열감이었기에 같이 나누고 싶었다네. 운량이는 11월 2일 중앙일보 대회에서 보세. -[10/24-16:47]- 서경석: 태룡아 큰일을 했구나.언감생심 어려운 일을 치른 것 같구나. 지금나이에 라는 단어를 사용치 않았던 나역시 이젠 그용어를 사용하게 됨이 부끄럽구나. -[10/24-19:40]- 김선출: 야! 대단하다. 마라톤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더니 정말 그렇구나.우선 축하하고. 그 무엇보다 위대한 승리, 삶의 충만감과 희열, 기쁨 그 모두를 체험한 피와 땀의 노력을 함께 공감한다. 마라톤에 대해 이렇게 생생하고 깊은 사유를 담은 글을 본적이 없다. 나도 해볼까? 도움을 청한다. -[10/25-10:35]- 김태룡: 마라톤 입문 요령1. 하루에 40분 이상, 일주일에 4회 이상을 자기에 맞는 속도로 한달 이상 꾸준히 달려 본다. 2. 그 이후 점차 자기 속도와, 훈련량, 그리고 훈련 시간을 늘린다. 3. 지속적인 달리기를 위해 동호인 회에 가입하는 것도 좋다. 4. 신발은 전문점 직원의 안내를 받아 마라톤 훈련화를 구입해 신는 것 이 좋다. 5.전문 사이트 www.marathon.pe.kr에 들어가면 많은 정보가 있다. 김태룡 -[10/26-16:55]- 박하석: 태룡이의 승리를 축하한다. 우리는 인생 마라톤의 어디 쯤 달리고 있을까. 마라톤의 완성은 피니 쉬 라인을 지나는 것 일진데, 우리 인생의 목표는 죽음인가? 한인홍 친구는 마라톤을 끝내고 휴식에 들어간 것인가? -[10/26-23:57]- 심재철: 마라톤 완주에 경의의 축하를 보낸다.한마디로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건강한 체력으로 꿈꾸고 있는 일들 다 이루기를... -[11/02-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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