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新春 南道 紀行文
지난 주말에 2박3일간 남도여행을 다녀왔다. 금요일 오후에 광주에서 사업관련 회의를 할 일이 있었고, 토요일엔 6촌 동생의 결혼식이 있어서 겸사겸사 여행길이 성사되었다. 금요일 오전 11시에 서울을 출발해서 오산 근처 한정식집에서 점심을 했다. 골프를 치러 다니다가 발견한 집이다. 청국장과 두부가 훌륭하고 스무가지가 넘는 맛갈난 반찬이 나오는 이집 1인분 식대는 8천원이다. 음식맛에 반하신 어머니는 서울에서 친구들이랑 조를 짜서 또 오시겠다고 하신다. "공짜 전철 타고 오산에서 내린 후 택시를 타면 되는데..."하면서 예산이 얼마나 드는지 셈을 하시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광주에서 회의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시장 귀퉁이 음식점 골목을 뒤지면 싸고 맛있는 집이 있기 마련이다. 양동 시장 주변에서 그 집을 찾아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유세하러 왔다가 들러서 식사하던 사진이 걸려 있다. 그 때 대통령 후보가 드신 메뉴는 "노탕"이라고 명명되었다. 순대국 국물에 돼지 내장과 머릿고기를 넣어 끓인 것이다. 옛 정취를 살려 보고자 순대 한접시, 동지죽 한사발, 장터국수 한그릇, 노탕 한그릇을 시켰다. 4인분에 13,500의 거금을 냈다. 상무지구 찜질방에서 잠을 잔 우리는 아침 7시에 다시 여행길을 재촉했다. 12시 40분 예식까지 오전 몇시간의 여행을 하기로 했다. 백양사를 첫 행선지로 잡았다. 아버지가 못가보신 절이라고 채근을 해 대신 까닭이다. 장성호를 지나 좁은 골짜기를 깊이 들어가다보면 바위 모양이 특이하여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듯한 동네가 보인다. 그 백학봉 아래 자리잡은 백양사의 절집은 보잘 것이 없다. 그러나 조계종 25개 본사 중의 하나인 古佛叢林 白羊寺는 숱한 명승고덕을 배출해 냈다. 다음은 광산군 본량면에 있는 勇進精舍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약 100년 전에 지어진 사설학원이었는데 지금도 보존 상태가 아주 좋다. 해방되던 해에 가세가 기울어져서 중학 진학을 못하신 아버지가 8개월이나 기숙하며 한학을 통해 향학에의 꿈을 키우던 곳이다. 아버지는 여기서 배운 대학,논어,소학,맹자 등의 한학과 일반 교양 서적을 탐독하셨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아버지의 가치관이 정립되었으니 작은 인연이 아니다. 아버지는 지금도 하루에 5시간은 독서를 하신다. 그 서당 올라 가던 길은 어머니의 한이 서린 길이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44세에 애물단지 막내딸을 낳았지만 학교에 보낼 능력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학교 대신 어린 나이에 6Km쯤 떨어진 문중밭을 일궈야 했었다. 학교가는 친구들을 한없이 부러워 하며 재망태를 이고 밭갈러 나서는 길에서 어머니는 무척 울었다고 했다. 그래도 어깨 너머로 한글을 깨치고 구구단을 외워 장사하며 셈하는 데는 남보다 한참이나 上手이셨던 어머니. 외가 동네 노인당에 들어가니 어머니 또래 노인들 몇분이 한담을 하시다가 화들짝 놀라며 반가와 하신다. 엎드려 인사드리면서 용돈 몇닢을 놓고 나오는데 어찌나 고마워 하시던지... "등림떡네 막내딸이 서울가서 잘되야 부렀다고 허드만, 우리가 다 덕을 보네." 예식은 화려했다. 서울의대 나와 삼성병원 레지던트인 신랑과 현직 구청장 딸의 혼사인만큼 인산인해였다. 숙소인 대흥사로 가는 길에 이모님 산소에 들러 성묘를 했다. 1980년을 전후하여 신장병을 앓으신 어머니는 거의 사경을 헤매셨다. 시신이나 다름없이 늘어져 누우신 어머니를 데려다 지극정성으로 간병하여 살려내신 이모님이었다. 비록 지금은 돌아 가셨지만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지? 어머니는 그 때 친절히 해 주셨던 노인들 집을 일일히 찾아가 과일을 전달했다. 여행길에서는 극도로 어려웠던 우리가족 서울상경후 고생담이 화제가 되곤 한다. 가족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 뭉치고 힘을 합해 줄타기 하듯이 어려움을 극복해 낸 이야기가 쏟아 질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해양대학을 그만두고 성균관대에 진학했을 때 내 첫 납부금은 내 둘째 동생과 세째 동생이 번 돈을 털어 넣어 장만했다. 시골에서 장사하시다가 파산하신 어려움을 딛고, 거적대기로 둘러진 월세 판자집에서 살며 청계천 고가도로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시는 등 모진 고생 이겨내며 부모님은 자식들을 다 가르쳐 내셨었다. 우리 형제들 또한 그 험난했던 시절을 가족간의 희생과 사랑으로 극복한 후 지금은 모두가 사회에서 나름대로 기반을 잡아 자기 몫을 하고 있다. SK Telecom 다니는 막내는 지난 주에 회사의 베트남 사업팀과 함께 출국했다. 네째 동생은 국제적인 명성이 높은 회계법인의 중국내 한국대표로 일한다. 홍일점 여동생의 남편은 삼성그룹 계열회사 경리부장을 하다가 퇴직하여 지금은 캄보디아에서 신도시를 개발하는 일의 책임자로 일한다. 우리 형제는 온 가족이 모여 "고난극복 회고기"를 녹음한 후에, 그것을 책으로 편집한 다음 아버지 팔순때 봉헌해 보자고 했다. 밤늦게 해남 대흥사에 도착했다. 주지스님의 배려로 하룻밤을 보낸 대흥사의 "별당"은 정말 특별한 감동을 주었다. 미리 데워진 뜨끈한 온돌바닥, 두툼한 솜이불, 최신식 세면실에 준비된 과일이며, 향기로운 茶啖道具까지 "완벽!" 그 자체였다. 200년 이상된 한옥에서 잠이 드니 잠깐의 취침만으로도 심신이 개운하다. 원래 이 절집은 정조대왕의 위패를 모셨던 곳인데, 십여년 전에 그 위패를 성보박물관으로 옮긴 후 지금은 특별한 손님을 모시는 방으로 개조하였다. 전에 친구 덕에 한번 잠을 잔 적이 있는데 하도 좋길래 막무가내로 주지스님에게 떼를 써서 부모님을 모실 수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새벽예불에 참여하였다. 3시 30분에 시작된 예불이 한시간 가량 진행되는 동안 어머니는 감사와 참회를 가득 담아 기도하고 절을 하신다. 나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불교의 교리는 잘 모른다. 그러나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뜻함, 말함,행함"을 진실하게 하려 하고, 쬐끔 더 남 생각해 주는 삶이 되기를 맹세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날 새벽, 뜻만 세웠지 실천이 못따라가는 내 일상을 깊이 뉘우쳤다. 이튿날 산자락과 바다가 맞물린 아름다운 절집 達摩山 美黃寺를 둘러 보고 완도에서 점심을 했다. 돌아 오는 길에는 월출산 자락에 자리잡은 無爲寺 極樂殿을 참배했다. 세종조 1430년에 지어진 극락전은 조선 초기 건축의 백미로서 국보로 지정되었다. 과연 名不虛傳이었다. 단촐한 맞배 지붕의 가구미, 잘 잡힌 균형감이 뿜어내는 비례미를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좋은 미술품 앞에 서면 이해하려고 할 일도, 설명하려고 할 일도 없다. 그저 "아, 아름답구나. 내가 이런 미술품을 친견할 수 있다니 그저 감사할 뿐..." 이런 여행을 몇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成住壞空"이란 말이 있다. 일단 생성되어 전성기에 이르더라도 이내 곧 무너져서 비어버리는 것이 우주만물의 진리이다. 우리 부모님도 곧 흙으로 돌아가실 것이다. 가시기 전에 宿世의 인연에 기대어 조금이라도 되돌려 드리고 싶다. 웃고 떠들고 노래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한양길 천리길이 한걸음이다. 새봄맞이 여행길에 얻은 이 복을 친구들과 나누고자 한다. 복들 퍼가소!!! 태룡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