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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하나 가슴에 묻고
오늘 새벽 4시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캐나다의 시골 마을에 둘째 아들을 떨구고 온지 23시간만입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짐을 풀고 있는데 캐나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내일 학교갈때 뭘 챙겨 가야해?" "응? 우리도 몰라. 주인집 Dale 아줌마더러 물어서 해결해라." 이말을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 다시 전화벨이 울렷습니다. "엄마, 아빠! 너무 보고 싶어. 사랑해. 이메일 보냈어." 울먹거리는 애를 달래기에 앞서 아내는 전화기를 쥔채 통곡을 하며 몸부림합니다. 아내를 달래던 나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철영이는 우선 주인집 컴퓨터의 영어자판을 이용해서 "Yok muk u myun su rado Momirang Dadrang gachi salgo sipuyo!"라고 써 보냈습니다. 영문은 서툴지만 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그렇게라도 쓴 모양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내는 누워 있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아직 어린 놈에게 부모 욕심을 앞세워서 무리한 요구를 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어제 철영이를 하숙집에 맡기고 돌아서는 순간까지만 해도 내가 이렇게 여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그 전까지는 무언가가 내 가슴을 밀고 올라오는 것 같긴 했어도 캐나다 현지에서 애를 누가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알아보고 학교의 관계자들,하숙집 아줌마, 현지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슈퍼마켓 아저씨 등에게 우리애 잘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하느라고 정신없었습니다. 그런데 애 방에 학용품과 옷가지등 생활용품을 정리해 주고 귀국 비행기 시간에 맞춰 차를 타려고 하는데 갑자기 앞이 캄캄한 것입니다. "아, 저 놈이 얼마나 막막할까?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괴로울까?" 미칠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애는 우리보다 더 속이 깊어서 전혀 슬픈 내색을 않고 잘 참는다 싶었는데 우리랑 헤어져서 집모퉁이를 돌아설때 샤쓰에 얼굴을 묻는 것이 보였습니다. 차를 운전해 오는데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려 정신을 가누기조차 힘들었습니다. 나는 아직 부모를 비롯한 혈육을 잃어 본 적도 없고, 불같은 연애를 하다가 애인과 헤어져본 경험이 없어서 이별의 괴로움을 몰랐었는데 혈육을 떼놓고 오는 순간 애간장이 녹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일찌기 석가모니께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을 태어나서 늘고 병들어 죽는 괴로움과 같은 반열의 괴로움이라고 하시면서 그러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고제를 멸해야 열반에 들수 있다고 설파하셨나 봅니다. 일전에 어떤 선배에게 자식을 외국에서 공부시키겠노라는 상의를 드렸더니 "자식이 외국으로 떠나면 남이 된다는 사실을 냉엄하게 받아들일 자신이 있느냐?"고 되묻더군요. 그때는 외국 공부의 장점만 생각나고 내가 제법 차가운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말을 건성으로 흘렸는데 이제야 그 말이 뇌리를 칩니다. 그 애는이제 거칠고 험한 인생의 바다에 내 던져진 채 거의 자기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항해를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나와 그 애와의 부자관계라는 끈에 묶여 눈물을 보일 것이 아니라 장도를 축하하는 노란 손수건을 흔들어 주는 것이 맞겠지요. 하지만 그건 논리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애가 불쌍하고 내 속이 타는 것을 어찌합니까?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가 문득 생각을 고쳐서 자식을 가슴에 묻기로 했습니다. 지금 복받혀 오르는 감정은 머지 않아 세월이라는 모진 묘약에 희석되어 색이 바래질 것입니다. 나는 그 위에 뚜렷하게 그 애의 앞날을 밝혀 줄 지침들을 이성이라는 펜으로 써 나가기로 했습니다. 비록 늦게 깨치긴 했지만 애비가 못다한 자식 교육을 외국인에게 통째로 맡길 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떨어져 있다고 해서 꼭 교육이 안되라는 법도 없겠지요. 나는 이제 그애에게 거의 매일같이 정성스럽게 쓴 이메일을 보내려고 합니다. 우리애가 공부하게 될 곳은 인구 삼만이 채 안되는 관광과 예술의 도시입니다. 캐나다의 토론토와 미국의 디트로이트 중간에 위치한 곳에 영국인들이 정착하면서 세익스피어가 태어난 동네 이름을 따 STATFORD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영국의 지형을 본떠서 호수 주변에 마을을 형성하고 세익스피어 연극을 제대로 공연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연극이 하나의 테마가 되어 축제가 이루어지고, 그 축제는 미국과 캐나다의 오대호 일대에 명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름다운 전원마을에 세익스피어의 고전극이나 뮤지컬을 상시 공연하는 극장만 넷이나 둔 아주 특색있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안정감있는 이 도시는 뜻있는 사람들이 오랬동안 준비하여 이룩한 것입니다. 이 도시를 소개하는 팜플렛에는10년에 걸쳐서 문화예술 발전기금을 5천만불을 모으려고 계획하여 작년 말까지 2천8백만불을 모았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그 모금의 대부분은 자선가의 기부금과 공연수입으로 되어 있고 정부보조금은 5%에 불과했습니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일어나 도시 중심을 이루는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둘레가 7Km나 되는 호반을 달리면서 수백년에 걸쳐 가꾼 경관의 아름다음에 취하였고, 그것을 이룩해내는 과정에서 그 사람들이 흘렸을 땀과 눈물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날 오전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부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세익스피어를 알고, 연극과 공연을 알고, 더 나아가 이 곳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거라. 그래서 자식놈이 내 말뜻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곳 사람들의 느긋한 표정,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 아름다운 도시 경관이 철영이의 인간성을 형성하는데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번에 작은 애를 외국으로 보내게 된 것은 미리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돈이 충분히 준비된 상태도 아닌, 우연이 거듭되며 만들어진 운명과 같은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적선과 보시를 거듭하여 제 아들놈이 쌓아가는 업장의 과실이 착하게 익도록 해야할 책무가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동무들에게 심려를 끼쳐 미안하고 격려해 준 데에 감사합니다. 김태룡 PS; 토론토에는 우리 동기 <정권>이가 10년전부터 터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일찌기 그곳에 나아갔고 지금은 그 곳 저축은행(신협)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50명쯤 되는 일고 동문회의 총무일도 본다고 합니다. 큰 딸이 올해 캐나다에서 제일 간다는 토론토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답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처음으로 한 전화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식당으로 우리가족을 초대하여 따뜻한 저녁을 대접해 주면서 여러가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감사를 표합니다.  최준영: 나이가 들면 사람이 약해진다더라. 눈물도 많아지고. 이번에 캐나다에 교환교수로 간 사람이 있는데 작은 애는 데리고 살고 마누라와 큰애는 10일만 같이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보내는날 얼마나 눈물이 나오는 지 미칠 것 같았단다(50이 다된 분이 말이야). 며칠 간 아무 일도 못하 고 있다고 메일왔더라. 옛부터 우리 부모들은 자식 먼길 보낼 때 집에서 배웅했었다. 군대를 가건 외국을 가건 그 자식이 앞으로 지낼 현장에서 헤어지려면 그런 나약함이 보여지는 걸 싫어서가 아니었을까. 내 주변에 도 자식 외국 보내는 부모들 많은데 한국서 배웅한 사람들은 그럭저럭 잘 견디는데 외국까지 따라가서 여러가지 봐주고 오는 사람들은 힘들어 하더라. 혹시 다음에 보내려면 필히 한국에서 배웅해라. 안보는 게 약이 다. 그리고 애들 생각보다 적응 잘한다. 아무 걱정마라. -[09/02-16:40]- 김인배: 자식이 커가면 헤여지기 연습부터 준비해야 한다는데..... 쩝그래도 태룡, 자네 최선의 선택이였고 내 알기로 그렇게 약한 놈은 아니 거 같은니 한번 맡겨 보세나... 에거 자식이 뭔지.... ㅠ.ㅠ -[09/02-18:52]- 유종필: 태룡이 보내고 나도 마음이 안좋았다.괜히 잘하는 일이라고 코멘트햇다는 후회도 들엇고... 그러나 아픔은 순간이고, 좋은 결과가 있을 걸로 확신한다. 나도 솔직 히 큰 아들을 어디로 보내고 싶다. 방법이 없어서 그렇지... 이별연습도 해야하는 일. 힘내거라잉. -[09/03-09:48]- 박하석: 철영아, 힘내라. 철영이 아빠의 글이 오늘도 내 마음을 적시는구나. -[09/03-10:40]- 신재형: 태룡이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간다. 나도 애들 셋을 뉴질랜드에 벌써 1년반이나 떨궈놓고 있는데... 이제 큰놈은 내년에는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고, 둘째 딸녀석은 돌아오겠다고 하고, 막내놈은 그곳에 그냥 있고 싶어하고.... 한 석달 독한 맘 먹어야 할거야. 애들엄마하고 역할 분담을 해도 좋 고... 태룡이는 엄하고 강한 척, 엄마는 자상하게... 내 경험은 그런 게 좋은 것 같더라. 석달만 지나면 다들 금발 자리잡고, 그곳에서 즐겁 게 보내는 것 같애. 지금 나는 다행이다 싶어. 아이들이 밤 12시까지 학원 쫓아다니지는 않으니까. 그러면서도 스포츠 클럽에 서너개씩 가입 하여 친구들 사귀고... 철영이한테 지가 좋아하는 스포츠클럽에 가입하도록 권유해. 그게 가 장 빨리 현지 적응하고, 향수병 극복하는 방법이면서, 친구들 사귀고, 그 속에서 영어도 늘고 하는 것 같더라. 한국 아이들 똑똑해서 다들 금 방 적응하고 성적도 쑥쑥 올라. 태룡아 부디 독한 맘 먹고 자식을 강하게 키워라. 동병상련이라고 네 마음 모르는 것도 아니다만, 나는 일부러 전화도 무뚝뚝하게 받고 그 래. 웃기는 것은 우리집 큰놈이야. 메신저라도 할라치면 숙제해야된다고 빨 리 나가랜다. 그게 가서 딱 석달 걸리더라. 거기서 고등학교 가면서 1 학년으로 가야할 것을 2학년으로 월반 진학했는데 또 한 석달 고생하더 니 다 따라잡은 모양이야. 자식을 믿고 용기를 북돋아 주거라. -[09/04-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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