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작성자 강경탁 ㆍ작성일 2011-11-17 (목)

ㆍ추천: 0  ㆍ조회: 2584

애너벨 리     애너벨  리                                   - 강   경   탁 -    가을이 되면 나는 그 아이가 생각난다. 코스모스 같았던 아이. 그 애 때문에 나는 에드가 앨런 포우를 알았고 그의 시 ‘애너밸 리’를 외웠고 ‘안온’하다는 말이 그렇게도 따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로 올라온 지 몇 달 지나서였을 것이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나에게 문학써클 가입을 권유하였다. 시내 고등학교 연합써클이었는데 당시 글을 쓴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나는 당연히 거절하였다. 그런데 하도 강력히 권유해서 ‘그래 한 학기 정도만 자리를 지켜주자’는 마음으로 써클에 가입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시화전도 열었고 시낭송회도 열었다. 시화전이나 낭송회에 출품한 작품은 모두 그 친구가 대필하여 준 것이었고.  염불보다 잿밥이라........ 나는 모임에 나가는 동안 글쓰기를 포기한 상태로 참 어정쩡한 회원자격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한 여학생이 눈 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하였다. ‘연희’라는 아이. 아마 연꽃이라는 뜻의 이름이었으리라. 착하고 여리게 보이지만 야무진 데가 있는 여학생이었다. 글도 곧잘 쓰고 발표 때도 뒤로 빠지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고백했었고 그 아이는 선선히 받아주었다. 뭐 그 당시 10대의 연애란 게 별 거 있었겠는가? 빵집에 가서 우유 한 잔에 슈크림빵 하나 사서 나눠먹고, 충장로 고전음악감상실같은 데 가서 음악감상한답시고 폼잡고, 뭐 그런 거 아니었겠는가? 그때도 선물이라고 주고 받은 것은 있었다. 돈 되는 건 물론 하나도 없었지만.  그런데 지금도 기억에 아련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나 아쉬운 선물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그 애가 작은 스케치북처럼 생긴 노트 한 권을 나에게 내밀었다. 표지를 들추니 ‘여기 쓰여 있는 글로 하여 안온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고 페이지 하나하나마다 자기가 좋아 하는 글들을 정성스럽게 펜으로 적어 옮겨 놓았었다. 그 글 중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고 생각나는 게 바로 에드가 앨런 포우의 ‘애너벨 리’이다. ‘아주아주 오랜 옛날 바닷가 한 왕국에 애너벨 리 라는 한 소녀가 살았습니다. 소녀는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애너벨 리’라는 시를 읽고 소년은 저 높이 저 멀리 환상의 나라로 올라갔었다. 아무튼 그때부터 나의 보물 1호는 이 노트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덧 고3이 되었다. 꼭 서울대에 가고 싶었으나 실력은 모자라고. 내가 게으른 탓은 하지 않은 채 결국 ‘연애하면 공부 못한다’는 속설에 굴복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고 또 미안하지만, 공부한다는 핑계로 바보스럽고 미련스럽게 당분간 그 여자아이를 잊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나 공부해야 되니까 1년 뒤에 만나자.’ 이 때도 그 아이는 선선히 받아들여주었다. 그 날 헤어져 돌아와 나는 그 아이와 함께 한 흔적들을 마당 한 귀퉁이에서 태우기 시작하였다. 그 애너벨 리가 적힌 노트도 함께.  1년 뒤 나는 대학에 입학하여 서울로 올라왔었고,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태가 되었다. 나는 그 아이를 많이 잊고 있었고 5월에 열리는 대학 축제에도 초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봄날 아마 4-5월쯤이었을 것이다. 서울에 있는 금융기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던 그 아이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둘이 같이 밥을 먹고 학교 담장을 따라 걷고 있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나의 왼손에 팔짱을 끼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여자와의 신체접촉은 난생 처음이었던지라 내심 많이 당황하였지만 기분이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때의 기분좋은 느낌이 지금도 고스란히 나의 심장과 뇌 속에 저장되어 있다.  기분좋은 느낌도 잠시. 당시 1976년의 분위기는 전라도 출신의 한 청년이 대학에서 낭만을 꿈꾸며 보낼만한 상황을 만들어주지 못하였다. 이런 저런 분위기에 부딪치고 휩쓸리다 보니 다시 몇 달 동안 그 아이에게 연락 한 번 못하고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가을이 깊어갈 때쯤 불현듯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연락을 취했으나 그 아이는 이미 서울을 떠나 고향인 광주로 내려간 뒤였고 나랑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뒤늦게 그 아이가 몹시도 그리워진 나는 광주에 있는 친구에게 수배령을 내렸지만 못찾겠다는 연락이 왔었고 이 말을 듣자마자 그 애를 찾아 바로 광주로 내려갔으나 그 애의 단짝 친구만 만났을 뿐 상봉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날 허탈한 마음으로 내가 서 있었던 외곽쪽 신작로길에는 그 아이를 닮은 코스모스가 하양, 노랑, 보라, 빨강으로 무리지어 피어 있었고, 무심하게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를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결국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주절 주절 늘어놓은 심심한 이야기가 내 첫사랑이야기다. 뭐 첫사랑이라고 할 거나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 한 켠에 아련한 것이 지나간다.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가끔 혹시 그 여학생이 나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고 또 광주로 내려간 것이 아닌가 하고 자책할 때가 있다. 연락이 두절된 때로부터 몇 년 후 그 아이의 후배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결혼할 때까지도 나에 대한 이미지가 과히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혹시? 하고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 후배 여학생은 지금 내 고향 친구와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염치 불구하고 연락을 취해달라 하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꼭 한 번은 보고 싶은데........ ‘애너벨 리’의 마지막 부분을 여기에 옮기며 나의 심심한 첫사랑이야기를 맺는다.   ‘달이 뜨면 나는 언제나 꿈을 꾸죠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별이 뜨면 나는 느끼죠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동자를 그래서 나는 밤새도록 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의 곁에 누워 있어요 바닷가 소녀의 무덤 파도치는 바닷가 무덤 속에.’

서경석 2011-11-17 10:23	강 대장,  내 익히 자네의 문장 솜씨를 알고 있었네만 이렇듯 애틋한 첫사랑을 읽는이로 하여금 꼭 나의 일 처럼 푹 빠져 들게끔 풀어내는 재주가 보통 남다르지가 않네 그랴. 암튼 추억으로 고이 간직하기만 하라고 권하고 싶네. 만나려면 못 만날리 없겠지만 말야........ 강경탁 그래도 보고 자픈디 안되까? 11/17 19:49

김태룡 2011-11-18 07:50	경탁이 많이 컸구만. 겁없이 첫사랑 얘기를 인터넷으로 공개하다니. 자네 집에 있는 세 여자들로부터 허가는 받았는가? 연희는 자네 가슴속에만 묻어 두시게. 공연시 쉰줄에 든 여자 가슴 싱숭생숭허게 만들지 말고.ㅎㅎㅎ 강경탁 딸내미들한테 보여줬더니 엄마한테는 보여주지 말래드라. 그래서 집사람한테 글을 볼 생각이 있느냐 물어봤더니 보고싶지 않다고 하더구만. 우리 각시한테 전달만 하지 마시게. 11/18 09:34

김정식 2011-11-18 10:04	한편의 소나기가 생각난다. 기회가 된다 하더라도 가슴속으로만 품고 사는데 한표! 강경탁 친구한표 소중히 간직하겠네 11/19 14:12

최명규 2011-11-18 10:46	글 잘 쓰네. 누구나 아련한 추억은 있지. 남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지라도...다들 건강하시고, 씩씩하게 살다가 웃으면서 만나세. ㅎㅎㅎ 김정식 반갑네. 식사 한번 하시게. 11/18 15:52 강경탁 새애인만 만나고 다니지 말고 옛날 애인도 가끔은 한번씩 챙겨보시게. 내가 만나보니 많이 울고 있대. (여기서 새 애인은 '골프', 예날 애인은 '산'입니다) 11/19 14:14

임성래 2011-11-18 15:27	ㅎㅎㅎ~~~ 올 가을 지나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문득 듣는 푸르른 첫사랑 이야기네^^ 늘 싱그런 그리움으로 살게 하겠네~~! ^0^ 강경탁 조만간 한 번 만나서 그리운 이야기들 나눠봅시다. 11/19 14:15

윤경욱 2011-11-18 16:17	아따~~  나도 덩달아 맴 한구석이 허전 해지네.... 강경탁 윤회장! 맘 속에 품고 있지만 말고 옛 이야기 한 번 들려주세요. 11/19 14:17

ohintack 2011-11-20 13:40	열화와 같은 댓글을  보니 강대장의 공감대를 건드리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나도 이렇게 써보고 싶지만 여러가지가 부족하니 댓글로 만족해야지!!! 갑자기 추워졌네요! 건강들 챙기시고 강대장 글에서 가장 맘에드는  문장은 "나의 왼손에 팔짱을 끼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강경탁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모를 때가 더 좋았던 것도 같어. 11/21 15:30

소회섭 2011-11-21 15:09	부인과 나눌만하고, 딸들과도 함께 할 수 있는 첫사랑이야기를 가졌다니, 곁에 지켜보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렇게에 부인을 더욱 아끼고 사랑할 남자일 게 분명하다,그대는. 강경탁 앞으로는 그렇게 해볼라고 생각하네. 우리 나이또래만 해도 부인에게 잘하면 불출이니 뭐니해서 쫌 남새스럽기도 해. 11/21 15:32

김재호 2011-11-21 17:44	캬!. 우리 강대장한테 그런 멋진 추억이 있었구먼. 읽고 보니 강대장의 이야기가 강대장의 인상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가끔씩 삶의 활력소가 되기를 바라네. 산에 가면 힘이 넘치던 게 그 덕이었던가? 강경탁 산에 가는게 그때문은 아니고ㅋ. 잘 살고 있는가? 언제 발 한 번 맞춰봐야 되겄는디. 11/24 16:44

박하석 2011-11-21 18:09	"우리는 사랑보다 더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했지요, 나와 애너벨리는 하늘의 날개 돋친 천사님들도 우리를 부러워할 그런 사랑을." 애너벨리와 같은 사랑, 우리 친구들은 오늘 만날 수 있다네. 강경탁 그려~~~~ 친구들이야말로 죽을 때까지 같이 가야할 사람들이제. 11/24 16:45

김태성 2011-11-23 15:33	오래 간직하였던  비밀을 털어내어 놓으셨네..   이젠 더이상의 비밀은 아니니 마나님에게 고하시게    물론 뒷감당은  알아서하시고  ...... 강경탁 언젠가(5년전쯤?)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더니 60넘어가면 상관안하겠다고 하대. 아마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을거야. 11/24 16:48

배민영 2011-11-24 14:01	경탁이 가슴에서 흘러나온  글 한편이 잔잔한 호수에 돌던졌구만 뜨거운 반응들이네 . 이제는 우리가 모두가  다시 할수 없는 사랑이고 그리고 누구나 마음에 그 못지 않는  추억들이 있기에(무대와 상대만 다를 뿐)  ... 만나지 마라 실망한다 . ref.  냉정과 열정사이 강경탁 여자측에서도 만나지 않으려 할거라는 예상이 대세인듯하네. 별로 좋지않게(?) 변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을 거라나? 아무튼 모든 게 상상속에서만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만. 11/24 16:58

김영주 2011-12-01 19:22	자네의 단단한 겉모습에 이런 여린 사연이 담겨 있었구만.   아!  곱고 착하기만 했던, 그 때 그 시절, 그 이야기들! 자네 글을 읽으며, 나의 그 때 그 시절 그 이야기들이 함께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네.   잠시 좋은 시간, 고맙네.  늦게 자네 글을 발견하고 이리 늦게 답장하네. 강경탁 고맙네. 잘 지내고 있제? 연말 잘 보내고 기회 있을 때마다 종종 보세. 건강관리 잘 하시고.... 12/5 09:39

송의열 2011-12-05 16:52	우리 홈페이지 최대 댓글이 달린 글이 되었구나!  축하한다. 나도 한 마디 보태볼까나. 나에게도 아련한 첫사랑이 있었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지금의 마누라하고도 결혼 전에 한 자리에 같이 만난 적도 있다. 사람이 부족하여 첫사랑의 여자와 헤어지고 지금의 마누라와 살고 있지만, 결혼이라는 것이 우리 마음대로는 잘 안되는 것이 아닐까 쉽다. 첫사랑의 여자와 결혼해서 사는 사람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되겠지(내 생각에). 그렇다고 현재의 내 결혼생활에 대해 어떤 소설을 쓰거나 단정짓지는 마라. 자식들의 결혼이야기들도 들어 보면 어려운 과정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아뭏든 첫사랑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무리 늙어가도 항상 가슴 설레고 또 곰씹어지는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그녀가 지금 어디에 근무하고 있는 지도 알고 있지만 결혼 후 한 번도 만나거나 연락한 적은 없다. 마음 속에 묻어 두고 항상' 잘 살아라' 빌고 있지. 그래 우리 모두 건강하게 잘 살아야지!!! 경탁아! 잘 읽었다. 좌우간 산행팀에서 조만간 한 번 만나자. 강경탁 답글 고맙다. 얼굴본지가 오래됐네. 일요일날 만나서 막걸리 한 잔 하자. 12/7 10:30

문병민 2011-12-16 14:02	한 편의 단편을 읽는 느낌이 드네. 마음에 품어 두었던 사연인지라 읽는 입장에서도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 같네. 글 쓰는 재미를 새로이 얻은 것 같아 축하하네. 자네의 문운이 빵빵 터지기를 기원해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