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ㆍ작성자 |
강경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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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1-10-07 (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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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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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프로야구심판이야기
어느 프로야구 심판 이야기
그는 한 때 아주 인기있는 야구심판이었습니다. 선수로서는 크게 이름을 떨치지 못하였지만, 계속 그라운드에 남고 싶어 심판을 지망하였고 한국 프로야구 심판 아카데미를 훌륭한 성적으로 수료하였습니다. 박진감 넘치고 우아하기까지한 제스처와 걸걸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경기장밖의 어떤 회유에도 굴하지 않았고 그라운드에서의 거친 항의나 협박에도 굽히지 않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어 야구심판으로서는 처음으로 팬클럽도 생겼으며, 그 사람을 보기 위해 야구장에 오는 관중들도 심심찮게 등장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주로 선심을 보았는데 경력이 쌓인 후 주심을 맡고나서부터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심을 맡게 된 이후에도 처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폭발적인 제스처와 명쾌하고 단호한 판정으로 인하여 그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습니다. 그런데 차츰 주심을 보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이상한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라이크 판정이 까다로워지고 투수의 투구중 볼판정이 많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스트라이크 존의 경계선에 묻어 들어오는 공은 무조건 볼 판정을 받았습니다. 스트라이크존 가장자리에 공이 걸치지 않고 완벽하게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선수나 감독 그리고 야구팬들도 사람이 워낙 강직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 주심도 있어야지 그것도 개성이지 다 똑같으면 되겠어?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점 더 까다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 홈 플레이트를 지나는 순간까지 공이 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옆으로 방향이 바뀐다든지 위에서 아래로 급격히 떨어진다든지, 아뭏든 공이 휘어서 들어오면 그건 타자를 속이는 속임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투구는 하지 말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요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커브 싱커 슬라이더 포크볼등등 모든 변화구가 볼 판정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요.
경기 스코어는 20대 19, 30대 24 이런 식으로 핸드볼 스코어를 넘어 농구 스코어에 근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심판이 주심을 맞게 되면 투수들은 아주 좁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직구밖에 던질 수 없으니 당연히 그렇게 될 수 밖에요. 이 때부터 그는 각 팀들에게 보이콧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심판을 보면 야구경기를 안하겠다는 데야 별 수 있겠습니까? 야구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그를 제명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제명을 안타까워하고 구명운동을 벌이는 팬들도 있었습니다만 그는 점점 잊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제명된 지 오늘로 벌써 20년입니다. 그의 체격은 지금도 우람합니다만 뒷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허술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났으니 그 옛날의 패기만만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겠지요. 20년만에 다시 기아와 엘지가 한국시리즈를 벌이는 오늘, 그는 여전히 탄천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그를 버린 그라운드의 거대한 외벽을 흐릿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잠실벌의 우렁찬 함성을 이미 허술해진 달팽이관을 통하여 쫑끗 듣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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