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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짬찌에게(27th)
지난 9월부터 4개월 코스의 전문강좌를 듣고 있습니다. 국립박물관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에 개최하는 <창조적 경영을 위한 최고위 과정>입니다. 분야별로 한국미술 16강좌를 들은 후에 1시간 동안 박물관 해당 코너에서 생생토크를 합니다.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원우들과 함께 베트남에 다녀 왔습니다. 귀국 길 비행기에서 군에 간 작은 아들에게 여행 소감을 편지로 썼습니다 군복무 2년동안 100통의 편지를 쓰기로 했었는데 6개월만에 27번째 글을 보냅니다. 점차 내면의 힘이 딸려서 글발이 약해진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번 편지는 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독서와 사유를 통해 내공을 키워야겠다고는 다짐하지만 ㅠㅠㅠ 짬찌는 짬밥찌꺼기라는 군대의 속어로 일등병을 칭합니다. ======================================== 사랑하는 짬찌, 철영에게(27th)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세라톤 호텔 로비에서 편지를 쓴다. 목요일(12월 8일) 밤 늦게 호텔에 도착했다. 어제(금요일)는 베트남의 세번째 큰 도시이자,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의 관문인 하이퐁부근의 LS전선 공장을 견학했다. 그리고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적인 관광 명소 하롱베이를 관광했다. 2~3억년 전부터 비에 씻겨진 석회암 덩어리 3천여 개가 바다 위에 기암절벽의 섬이 되어 있다. 국립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창조적 경영을 위한 최고위 과정> 3기 멤버중 한 분이 LS전선 회장인데, 그 분이 하롱베이 관광을 위한 특급 유람선을 별도로 준비했다. 선상 파티, 화려한 음식, 격조 높은 대화, 하롱베이의 황홀한 경치…. 네 엄마 이경희 여사님의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다 것이 삶의 큰 보람 중의 하나임을 다시 확인한다. 창 밖 보슬비가 바람에 슬슬 날리고 있다. 베트남의 전형적인 겨울날씨란다. 이 비가 멎으면 온도가 좀 더 떨어져 제법 추운 기운이 돌 것이다. 우리는 이제 곧 하노이 국립박물관과 공자의 문묘를 견학할 예정이다. 베트남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살펴 보자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베트남은 중국의 속국으로 1,000년을 지내다가 우리나라 고려 때쯤 독자적인 왕조를 세웠다. 그 왕조들은 대략 200년을 주기로 교체되다가 1840년 무렵 프랑스가 태국을 제외한 인도차이나 전체 나라를 모두 식민지화했을 때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때인 1940년 이후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는다. 2차대전 종전 후 프랑스가 다시 지배세력으로 들어 오자 호치민(胡志明)이 주도하는 공산주의 혁명세력이 프랑스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인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1963년 마침내 프랑스를 물리쳤으나, 다시 미국이 베트남을 노리고 침략해 들어오자 미국과도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베트남인들은 10년 전쟁 끝에 1975년 미국을 패퇴시킨다. 세계 최고의 강국을 연달아 패퇴시킨 베트남의 힘은 어디에서 출발하였던가? 기본적으로 역경에 처한 나라를 구한 지도자들은 본인 스스로의 행실을 올바로 하면서 나라의 장래를 이끌 수 있는 비젼을 제시해 왔다. 베트남에서는 호치민이 그런 사람이었고,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그러했다. 모택동은 말년에 중국인들을 개혁시킨다는 목적으로 문화대혁명이라는 모험적 사회운동을 펼쳤다. 그는 젊은 소년병들을 자극하여 문화적 전통과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기득권 일체를 철저히 부정하였다. 불교와 유교의 문화유적을 파괴하고 사회의 지도층 모두를 강제노동 현장으로 몰아 넣었다. 목적이 순수했다고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큰 폐해를 남겼다. 후일 역사가들은 문화혁명은 그의 업적에 오점이 되었다고 평가하였다. 반면에 호치민은 결혼조차 포기하고, 일신의 영화를 멀리한 채 오직 외국의 침략으로 고통받고 있는 인민을 해방시키는 데 헌신했다. 베트남인들은 지금도 호치민을 가장 존경하고 사랑한다. 베트남의 강인한 민족정신과 독립운동을 심층적 이해하기 위해서 “호치민 평전”을 구해서 읽기로 했다.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하여 베트남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아침에 시작한 편지를 늦은 저녁, 귀국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하노이 공항에서 이어 쓰고 있다. 오늘 일정은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文廟와 유학을 강의하는 國子監을 구경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베트남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서기 1천년 경부터 유교를 국가경영의 기본 사상으로 받아들였다. Ly Dynasty는 서기 1050년경 유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인 국자감을 설치했다. 그 무렵 우리나라의 고려시대 국립교육기관 이름 또한 국자감이었다. 국자감은 목조 2층 건물로 지어졌는데, 그 규모가 우리나라의 성균관이나 명륜당 보다는 훨씬 컸다. 그 무렵의 베트남 국력이 우리보다 더 강했던 것 같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2,000여Km의 긴 국토면적을 자랑한다. 히말라야 산맥의 동쪽 끝인 중국 운남성에서 발원하여 1,200Km달려온 홍강 물줄기는 하노이시 주변에 삼각주를 쏟아낸다. 무려 4,000Km를 달려 인도차이나 반도를 통과한 메콩강 하류 호치민시 주변에도 거대한 삼각주가 생겼다. 거대한 강들이 쏟아 낸 퇴적물 들 주변에서 인류 문명이 탄생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갠지스 문명, 이집트 문명, 황하문명이 그러했다. 한강이 약 300Km를 달린 하류지역에는 서울이 있다. 강의 크기는 자연스럽게 생산능력의 크기로 이어진다. 베트남은 이미 고대부터 거대문명이 싹트고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한강문화는 왜소한 편이다. 이런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무시한 채 우리가 그간 막연히 베트남을 낮춰보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 일행은 보슬비가 내리는 하노이 거리에서 자전거 인력거인 시클로를 탔다. 시클로에 앉아서 보는 사이공의 무질서가 아름답다. 신호등을 무시한 채 인력거는 오토바이의 바다 속을 천천히 밀고 나간다.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을 보면서 중국의 위대한 문학가 루신의 소설 “루어뚜어 시앙쯔”(駱駝箱子)를 떠올렸다. 작가는 미래의 꿈을 상실한 채 무거운 인력거를 끌며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는 주인공을 통해 100년 전 암담했던 중국의 사회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오늘날의 중국은 꿈이 가득 찬 나라로 다시 변했다. 베트남 역사 박물관을 견학했다. 우리나라 박물관에 비해 전시된 유물의 수가 작고, 전시방법도 많이 뒤떨어져 있다. 몇 가지 눈에 띄었던 것을 정리해 본다. 1) 구석기 시대의 “깬돌”(타제석기)이 있었다. 구석기 유물은 발견되지 않는 나라도 많다. 몇 년 전에 일본의 어는 교수는 구석기 유물 발견을 조작하여 신문에 발표하기를 반복하다가 들통이 나면서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되었다. 구석기 유물의 존재 여부를 국가 자존심과 연계하여 생각했었던, 바보같은 사건이었다. 2) 신석기 시대의 거대한 청동기 유물들이 대단했다. 특히 북으로 쓰였다는, 무늬가 정교한 청동북은 웬만한 가마솥만큼 컸는데 전시된 수량도 많았다. 거대한 청동북은 그 시대 우두머리의 지배력을 드러내고 있다. 청동제 유물 만큼은 베트남이 우리나라는 물론, 오히려 중국보다 더 앞선 게 아닐까 싶다. 3) 징기스칸의 침략을 패퇴시킨 전쟁 그림도 참 의미가 깊었다. 海戰에 약한 몽고군을 수로로 유도하여 박살내 버렸는데, 그 때 갯벌에 박아두었던 나무기둥이 자랑스럽게 전시되고 있었다. 4) 최근 100년간의 독립전쟁 유물은 전쟁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의 피와 살이 튀었을 전쟁 유물은 베트남의 자부심 그 자체일 것이다. 호치민 평전을 읽은 후 머지 않은 시기에 그 박물관을 둘러보기 위해 다시 베트남에 와보고 싶다. 사회주의 국가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베트남은 중국을 닮았다. 이제 겨우 개혁.개방 15년임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주목할 만큼 베트남의 성장은 눈부시다. 아직도 8천만 인구의 7할이 농촌에서 인력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고 사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유의 자립심을 발휘하여 빠른 시일 내에 자본의 성장과 더불어 인민을 행복하게 하고, 인류의 번영에 기여하는 베트남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여행기가 길어졌구나. 이번 여행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재발견이다. 개인적으로 깨끗하고 고상한 인격을 지향하는 사람만이 인류를 위해 위대한 실천을 할 수 있다. 늦은 나이지만 나의 도덕성에 대해 많이 반성했다. 너도 이 편지를 읽고 “도덕”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게 되기를 바란다. 도덕이란 양심이 시키는 삶의 바람직한 가치나 규범을 말하는 것인데 종교적 경전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쉽게 말하자면 "옳고 바른 길'이지. 거친 군대생활인 줄 알지만 “도덕”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 보면 좋으련만. 2010년 12월 12일 너를 한없이 믿고 사랑하는 아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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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언
2010-12-1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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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하고 친구같은 멘토로서의 아빠를 둔 철영이는 무척이나 좋겠다.헌데...왜 나는 이리 위축되고, 울 아들들에게 미안함이 막 드는걸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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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룡
2010-12-1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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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노상언 님 , 우선 괜시리 맘쓰게 해서 상언이에게 미안하다. 글은 전달할 목적으로 쓰지만 어떤 글을 여기에 올릴 것인지는 참 판단하기 어렵다. 우리 친구들 중 훌륭한 글장이들이 많지만, 여기에 친구들이 진솔하게 쓰는 글들이 아주 드물게 올라오는 이유가 바로 "글 싣는 목적과 분위기의 미묘함"에 있다고 본다. 나는 군바리가 나태해 지는 것을 막는 자극제로서 아들에게 여행기를 썼다. 그리고 애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 특히 여행과 문화와 역사 등을 다루는 이야기는 여기에 올려 보는 것도 좋다고 여겼다. 그러나 역시 조심스럽다. 글 올리는 게 잘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도 맘쓰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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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언 |
김상순
2010-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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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일은 나이들수록 좋은 일이다. 특히 부자지간에 글로(글로벌) 정을 나누니, 글로벌하게 좋은 일이다. 요즈음 광주에 계시는 82세 아버지께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께서 어찌나 좋아 하시는지. 이 나이에 아버지로 부터 금일봉(용돈이상)까지 받았다. 내가 태룡이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글을 우리에게도 오픈하여 51회 홈을 훈훈하게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철영이 같은 자녀를 둔 우리가 한 번 쯤 편지로 부자간에 알콩달콩해 보는 것. 좋은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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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해성
2010-12-1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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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자식에게 쓴 편지는 아무리 평범한 이야기라도,쓰여진 글 이상의 교감을 나누게 된다. 자식은 그 편지속의 글 한귀절이 부모님이 물려주신 DNA에 의해 수백마디의 말로 바뀌어 격려와 사랑 등을 느낄 것이다. 27번째라니 대단한일이다. 태룡이 아들은 수백 수천권의 책을 읽은 마음의 풍요를 느낄 것이라 생각된다. 인도 수상이었던 '네루'가 40대 일때 독립운동중 감옥에서 그의 10대 딸 '인디라 간디'에게 쓴 편지가 '세계사편력' 이라는 책으로 발간되어 읽어본 적이 있다. 그딸은 아버지 네루에 이어서 인도의 수상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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