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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경제

 

 

 

작성자 신재형
작성일 2005-09-21 (수)
홈페이지 http://www.maximkorea.com
ㆍ추천: 0  ㆍ조회: 3874   
武俠志 土龍昇天傳
(사업하는 외사촌 형 때문에 형수님이 하루하루 숨쉬기조차 힘드시다며 보낸 멜에 보낸 답장인데 친구들에게 공개해도 좋을 듯 싶어 붙입니다.)


형수님,

추석을 집에서 모신다는 게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6남매 대가족이 한꺼번에 먹을 그릇도, 밥이며, 반찬이며를 끓여 댈 냄비도 솥도 수저도 아예 없었으니까요. 30센치 후라이판에 전이며를 부친다는 것도 말이 되질 않고...

그래도 4년만에 처음으로 집사람한테 돈 백만원을 갖다줄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그 덕분인지 원래 성격탓인지 집사람도 별 불평없이 거의 3주동안을 추석준비를 했고, 만 사흘 꼬박 20명의 대식구가 하루 세끼를 끓여먹으면서 정말로 마음까지 풍성한 추석을 보냈습니다.

조카들한테 몇만원씩 용돈도 쥐여주고... 어려운 막내한테는 고스톱으로 몇십만원 잃어주기도 하고... 참 아이들 보여주러 일산에 분수쇼도 가고, 창덕궁도 가고... 형제간끼리 서원밸리 골프도 가고... 전부 2백만원 정도 들었습니다. 큰형이 다시 넉넉해진 듯 하니까 동생들도 다들 좋아하더군요.

미국 가 있는 큰놈 광일이 전화가 없어서 내심 서운해 했는데 연휴 마지막날 아침에 "아빠 어디야" 하는 전화가 오니 만사휴의 였습니다. 할머니집에 전화했는데 안받는다면서...올 추석부터 우리집에서 모시기로 한 것을 깜빡하고는 추석 다일에 광주로만 전화를 했었답니다.

까잇껏 돈 2백만원이 이렇게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큰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추석을 준비하면서, 또 연휴기간 내내, 동생들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는 것까지 확인하면서 내심 흐뭇해 했습니다.

정규 기생도 아니면서, 후원자 하나 없었으면서,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면서, 정치적 지향이 오너와 정반대이면서 오직 실력 하나 믿고 맨땅에 헤딩하면서 살아온, 마키야벨리스트가 우글거리고, 할 일 하는 사람은 10%뿐이고, 그 10%를 씹는 일이 자신의 직업인 것처럼 사는 90% 직원들이 득실대는 언론사 생활이 지겨워서, 남들보다 15년 빨리 출세했던 제가, 내 자식 만큼은 맨땅에 헤딩시키지 않겠다는 각오로, 어디가서도 무시받지 않는 잘나가는 월급쟁이를 때려치운 게 2001년 7월이었습니다.

게임회사를 하면서 출판사를 차려 시작한 맥심. 2002년 11월 창간호 1억8천을 했던 광고가, 2호에는 8천으로 떨어지더니, 5호부터는 7천선에서 밑으로 떨어지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불경기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매월 적자가 1억8천에 이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이디어 뱅크에 추진력까지 좋고, 맡겨진 사업마다 성공시키는, 월급쟁이로 남의 사업을 대신해 줄 때는 마이다스의 손 저리가라할 정도로 돈을 갈퀴로 긁어모았던 신재형이었는데 말입니다.

2003년 4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을 만났는데,"사업 잘 되지요."라고 묻더군요. "제 실력의 바닥이 어딘 줄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대표도 맘대로 안 되는 일이 있어? 엄살부릴 줄 아네."라며 웃길래, "중앙일보 있을 때는 정말로 그것이 내 실력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그 실력이 제 실력이 아니더군요"라며 그야말로 환담을 나누었더랬습니다.

정말 그때는 환담을 나눌 정도로 매월 1억8천의 적자였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해 8월까지 10억을 담보도 없는 상태에서 신재형 이름 석자로 은행에서 차입할 수 있었고, 아는 선배에게 5억을 년 9%라는 비교적 좋은 조건에 차입했으니까요.  

작년 6월 초...

직원들 월급을 석달째 지급을 못하고, 은행 차입금은 이자도 못낸지 이미 6개월이고... 돈은 38억을 쏟아부었는데 그 때까지도 매월 적자가 8천만원을 넘고... 어디서 돈을 차입할 데라고는 한군데도 없고, 호주머니에는 천원짜리 몇장인지가 벌써 몇개월째고... 기름값이 아까와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라 헐레벌떡하고... 친구들한테 어렵사리 돈 이야기를 꺼내면 바로 며칠전에 땅을 샀고, 집을 샀고, 주식에서 빼질 못하고, 돈 빌려줬다 친구까지 잃은 적이 있어 등등의 이유로 거절당하고... 주변 경조사 이야기를 들어도 못 본 체 하고... 술 마시자는 전화가 오면 술값이야 마시자는 놈이 낼 터이지만, 집에 갈 택시비가 없어 요리조리 선약 핑계를 대고...

집에서 나와도 월급도 못준 직원들 얼굴 볼 면목이 없어 사무실에도 못가고... 그랬더랬습니다. 사무실로 날아오던 각종 가압류 통지서가 집으로도 수십장 날아오고... 맨 처음에는 부들부들 두려움에 떨던 마누라도 나중에는 무감각해지더군요. 큰놈 광일이는 미국으로 가기로 하고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는데... 날마다 서너장씩 날아오는 가압류 통지서 때문에 자식새끼 보기도 민망하고... 거래선에서는 미지급금 독촉 전화가 하루에도 5-60통씩 걸려오지... 이미 눈치 빠르게 떠난 직원들이 노동부에 임금체불로 신고해서 오라가라 하지, 세무서에서는 체납금 독촉하지, 건강보험공단이니 의료보험, 산재보험에서는 잔고라고는 한푼도 없는 통장을 압류하지...5.5%에 할인받던 초우량 매출 어음이 할인하러 찾아가면 20%를 요구하지...  

그때 벼라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재훈이(네째, BMW 광주 지사장)가 자기 평생 번 돈에 집까지 팔아 3억2천만원까지 꼴아박았는데(순천 지사장 가면서 회사에서 숙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그 돈만 건질 수 있다면 사업을 포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사업을 포기하고 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꼼꼼히 적어 본 적도 있었습니다. 수입자동차 세일즈맨이 되어서 가까운 사람, 어려운 사람부터 돈을 갚아나가는 것,  두 아이들이 있는 뉴질랜드로 도망가 유학생 관련 사업과 골프유학생 사업으로 재기해서 돈을 나중에 갚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세무서 직원조차 폐업신고를 하라고 권할 정도였으니까요.  

하루에도 몇번씩 자살도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내가 삶을 포기하고 나면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까지 꼼꼼히 적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큰놈 광일이는 누가 키울꺼며, 둘째 딸내미 상일이는 누가 키울꺼며, 세째 막내놈은 누가 키울껀지 까지... 네 동생 중에 세놈에게 아들자식이 없다는 게 참 다행스럽게 생각되더군요.

하루는 한강물에 뛰어들 생각을 하고 사무실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는데... 그 무렵 비가 무지 많이 내렸더랬습니다, 엠병할 놈의 한강, 보통 때는 맑기만 하더니, 내 죽으려 드니까 물까지 흙탕물이네 하는 생각에, 죽을 놈이 물색깔 걱정이냐 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냥 28층 사무실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하고 어떻게 몸을 빠져나가야 하나 골똘히 궁리한 적도 있었습니다. 결론은 머리부터 디밀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를 붓잡은 것은 비겁함도, 자식도, 마누라도, 부모도 아니었습니다. 직원들이었습니다. 나야 아이템 잘못 선정해서, 아니면 마켓팅에 실패해서, 불경기탓에, 실은 자금 조달계획이 어긋나는 바람에, 아무튼 모두 내탓에 이같은 결과를 초래했으니까 할말이 없고, 내 가족이야 지애비 잘못 만난 죄로, 애비 잘못 둔 죄로 생각할 일이지만, ... 도대체 직원들은 무엇이냐 하는 생각이 어느날 퍼뜩 들더군요. 직장 잘 다니다가 나 하나 믿고 나와서 신용불량 일보직전까지 가도록, 카드대금도, 각종 공과금도 내지 못하고 월말이면 빚독촉에 시달리는 가장이 되었으니...

그때 중앙일보에 근무하던 때부터 나를 잘 받쳐주던 편집장이 결론을 내주더군요. 6월말까지만 직원들 나오게 하겠다, 7월 15일까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사업을 접자, 나머지 일은 나도 모르겠다... 사실상 포기하라는 통고였습니다.

6월 15일까지 결론을 내기로 한, 6개월을 끌어온 중앙일보와의 투자협상이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습니다. 전 직장이었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정말 제금난 딸내미 대하듯, 시집간 어니 대하듯, 살갑게 나를 대해주더군요. 내 등을 떠밀면서 걱정말고 집에 들어가시라, 우리를 일하게 놔 주는 게 신대표 뜻대로 되는 길이다면서... 그랬었는데...

15일 오후 세시가 되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이것저것 보충 자료를 요구했던 그들이었는데...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서 직접 찾아갔더니... "이유는 묻지 마시고... 아무튼 안 되었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내 젊은 청춘을 바친 직장이고, 연줄도 후견인도 없고 기생도 아니면서 남들보다 15년 빨리 그것도 9 직급을 수직 상승해서 대표이사까지 했던 전직장이었는데... 사표를 내고나서도 두달 넘게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사의 철회를 요구할 정도로 내 능력과 공을 인정해 주던 곳이었는데... 거절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고 내치더군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잡지를 잘 안다는 회사가 No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정말로 머리가 어지럽더군요. 15억에 인수하겠다던 또 다른 협상은 직원 인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깨지고... 그러자 10억에 제호만 인수하겠다며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고, 역시 직원 인수가 아니어서 포기했더니, 제호인수 조건에 8억, 5억, 3억, 1억5천까지 가격이 내려가더군요.

직원들은 안 나오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고, 정말 내 인생의 데드라인이 될 7월 15일은 착착 다가오는데...  

이제 사업을 포기하는 길만 남아있었습니다. 날마다 잠못 이룬지는 오래고... 그런 어느날 신새벽에 사업을 포기했을 때 내가 부담해야 할 돈과, 계속했을 때 내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돈을 적어보았습니다. 포기하면 30억에 가까운 부채를 지고, 계속하려면 지금까지 미지급금을 논외로 하고 추가로 맥시멈 2억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2억 이상은 들어갈 일이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정말 그때는 2억이면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겠더군요. 그런데 그 돈 2억 대 줄 사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담보 한푼없이 은행에서 18억을 신용 하나만으로 빌린 신재형이 말입니다. 정말로 한달에 5억짜리 자본금을 모아 벤처를 하나씩 세워주던 신재형이었는데 말입니다. 정말로 무력감과 자괴감 때문에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귀도 잘 들리지 않고... 4킬로 떨어진 곳의 입간판 글자도 읽어내던 시력도 글짜가 겹쳐 보이고... 발음도 헛나오고, 당당했던 걸음걸이도 오른쪽 발등이 저리고, 무릎이 당기고, 앉았다 일어나려면 오른쪽이 약간 주저앉혀지는 신체 이상까지 생기더군요.

그 무렵 내가 "오랫만에 뜻밖의 연락이 오면 그건 돈 이야기다"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찾아갔던 친구들 가운데 내가 돈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한 돈 많은 친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돈을 꿔 줄 것 같지 않아서가 아니라, 눈코뜰 새 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저 친구는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나는 이렇게 열심히 돈을 꾸러 왔구나" 하는 생각에, 목구멍까지 넘어오던 아쉬운, 실은 생존의 부탁을 스스로 접었더랬습니다.

先지랄後수습이 제 주특기입니다. 7월 14일 사무실에서 편집장을 만나 "기존의 부채는 알아서 해결하되 앞으로 운영경비 부족은 2억원 한도 내에서 대주기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나서기를 싫어한다, 아이들 출근시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순진했지요.

기자의 직업병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의심입니다. 편집장은 역시 유능한 기자였습니다. "누구냐, 나한테만이라도 말해 줄 수 있지 않느냐, 어떻게 어제까지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느냐, 그 말만 믿고는 어떠한 액션도 취할 수 없다"며 내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 사정없이 몰아부치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람이다."는 내 대답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는 것이었습니다. 거짓말일 것이라는 직관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내일 형수를 만나겠다. 그래서 확인하겠다."더니 "뭐 내일까지 끌 게 있느냐, 오늘 보자"며 짜고 칠 순간을 주지 않겠다는 자세였습니다. "오늘은 집사람 약속이 있다더라. 내일 함께 보자"고 둘러대고 일단 그 자리를 모면했습니다.

사실 작년 2월 집사람이 아주 심각하게 제게 통고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큰놈 미국 가고 나면 나는 짐 싸갖고 나갈거다, 도저히 이 상태로는 견딜 수가 없다, 그 이상 가면 당신이란 인간까지 싫어질 것 같다, 아이들은 어떻게 해볼 테니 당신이 이 큰집에서 혼자 지지던 볶던지 알아서 해라."

또 어느날 하루는 마누라가 내 핸펀을 가져가더니 핸펀 줄을 바꿔주는 것이었습니다. 줄 장식이 크라운과 열쇠였는데 "지금 사업 문제 해결하고 사장 노릇 제대로 하라는 의미"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위험한 거래선 식별법 가운데 CEO가 운명론이나 기복에 빠져드는 것도 들어있지 않습니까. 남편 잘못 만나 천주교 신자인 마누라가 기복을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된 게 안쓰러웠습니다.  

그런 마누라에게 보름도 되기 전에 들통 날 거짓말에 동참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알량한 남편이 된 것입니다. 그것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부탁을 해야 하는...

게다가 "한 번 사기쳐서 평생 먹고 살 수 있으면 사기쳐라,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평생 사기치지 마라"는 게 그때까지 내가 부하직원들한테 하는 18번 지시사항이었습니다. 그러던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더러웠습니다. 당장 그 달 차입할 돈 8천만원도 없는데...

그런데 그날 저녁 기적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누라가 호주머니에서 조그만 금속성 물질을 꺼내더니 "이게 뭐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에 대답할 여유가 없었던 나는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습니다. 한참을 말없이 듣고 있던 마누라의 첫대답이 "이게 결국 내 손에 쥐여졌네." 하며 기막혀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내 핸펀에 달아주었던 고리 가운데 하나인 열쇠 모양이 끊어져서 집사람 호주머니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큰 계약이 성사되었고, 8천만원이 이달에 선금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어떻게 어떻게 쥐어짜 보면 한 석달 2억까지는 안 되어도 1억8천은 될 것 같다, 거기서 맞춰 보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직원들 앞에서의 부부 동시 취조 과정은 생략하겠습니다.

기적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모든 외주거래선이 순순히 외상매입금 유예에 합의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임대관리비 같은 경우는 무려 70%를 디스카운트 해 주었고, 거의 모든 거래선이 실비수준으로 외주비를 줄여주었는가 하면, 인쇄소는 두달 인쇄비를 추가로 유예해 주었습니다.

직원들은 스스로 3개월 아르바이트를 자청하더군요. 그러면 회사는 소위 4대보험료가 절약되어 이익이고, 자기들은 80만원 정도를 고용보험에서 고용촉진 장려금을 받을 수 있어 상호 이익이라고... 회사 사정을 잘 아는 편집장은 스스로 100만원의 임금을 삭감하고, 서무와 총무 직원도 50만원씩을 삭감하더군요. 당장 월 2천의 적자가 보전되었습니다. 두달 동안 밀린 임금을 세번에 나눠 지급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기더군요.

10월까지 집사람으로부터 1억8천이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10월말, 마감하고 났더니 3천원이 남더군요. 11월초 중앙일보 송필호 대표를 만났는데 "신대표 고생했는데, 돈 많이 벌게 해 주려고 그때 투자 안한거니까 서운해 말라"고도 하더군요. 이때까지 차입금 이자는 지급할 꿈도 못꾸었던 상황인데... 회사가 돌아가는 낌새를 알아차린 퇴직직원들이 노동부에 제소했고, 그것도 올 1월에 다 갚았습니다. 스스로 삭감한 직원들의 봉급도 원상회복했구여. 차입금 이자와 원금도 분할 상환할 여유가 생기더군요. 15%에도 할인할려면 사흘이 걸렸던 어음도 작년말에는 서로 해주겠다고 아우성이더니, 3월부터는 6%에 얼마든지, 언제든지 해주겠다는 업체들이 줄을 섭니다.

올 1월에 부산에 어떤 부자가 MAXIM 인수하고 싶다기에 "100억 주면 49% 지분 주겠다"고 했더니 조금 깎아줄 수 없겠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나는 Deal 질질 끄는 사람이 아니다고 돌려 보냈습니다.

올 3월에는 재훈이가 광주 지사장 발령을 받는 바람에 집을 마련해야 해서 1억2천을 우선 갚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대충 4억원정도 빚 탕감도 했습니다. 올 8월말 큰애 학비 2만5천불을 송금하고 나도 마감에 부족함이 없습디다. 그러고 나니 4년만에 최초로 가장으로서 역할을 남의 도움없이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추석 연휴 전날 거래선에 처음으로 약속한 날보다 앞당겨 1천만원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기분이 좋습디다. 집사람한테 추석준비하라고 빳빳한 10만원짜리 수표 열장을 건넬 때는 어깨가 절로 펴지더군요.

오늘은 어떤 재일교포가 중간에 사람을 내세워 맥심을 팔 생각 없냐고 묻더군요. "연봉이 1억5천이던 사람이 월급한푼 안가져가고 40억들여 키운 회사다. 지금 현재 이 상태로 인수하면 흑자가 월 1억이다. 잡지는 매출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 않는다. 지금이니까 1억이지 내년 이맘때면 최소 월 3억 이상은 예상된다. 3년 후면 광고 빼고 판매만으로도 월 4억 흑자는 자신한다. 내가 알기에 일본 금리가 년 3% 미만이다. 그냥 올 8월 매출을 기준, 월 1억이면 년 12억이고 12억의 33배면 400억 정도의 자산인데 당신 전주가 그 정도 있느냐고 물어봐라" 며 되돌려 보냈습니다.

세후 콤마가 두개가 찍히는, 숫자 아홉 자리가 꽉차는 연봉에, 무한대의 법인카드에, 무한대의 판공비에, 부부 해외여행에, 치과치료비에, 자녀 학자금까지 대주는 위치에 남들보다 15년 빨리 가있던 시절에는 정말로 통장에 돈 쌓이는 소리가 들렸더랬습니다. 식비 빼고는 돈 쓸래야 쓸 데가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IMF 때는 주식투자로 국내에서는 20배가 넘는 대박을 터뜨렸고, 해외벤처투자도 재미를 보아 평가액이 3백만불이 넘는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세상에 뵈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작년에는 정말 하루에도 자살을 수십번도 더 생각할 정도로 내몰렸습니다. 명절 때 광주를 가도 마음이 편안하질 않았습니다. 홀로 되신 어머님께 전화로 건강을 여쭈면 어머니 대답은 한결 같으셨습니다. "나는 괜찮애야. 내 걱정은 하지 말아야. 나는 괜찮응께 아무 걱정 허지 말고... 나는 니들 건강하기만 하면 더이상 바랠 것이 없어야 잉. 전화요금 많이 나옹께 얼릉 전화 끊어라"

하지만 올해는 풍성했습니다. 죽음의 해협을 건넜지만, 대가리는 모래밭에, 다리는 아직 상어떼가 우글거리는 바닷속에 담그고 있는 상태에서 올 추석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작년 추석에 비하면 미꾸라지가 아니라 지렁이 용되어서 승천한 격이지요. 돈 2백만원에 치룬 소박하다면 소박할 추석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물으면 "이제 숨은 쉬고 산다"고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시간을 쪼개 그동안 신세졌던 친구들도 찾아보면서 지내지요.

이전에 어떤 모임에서 사람들 앞에서 "제 본이 平山인데 시조가 申崇謙이다. 신씨들 가운데 나라를 세운 사람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申叔舟다.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이 둘을 俠客이며 풍운아로 본다. 이 시대의 협객이나 풍운아는 어떤 사람들인가. 제 생각에는 사업가들이다. 특히 창업자들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 8월 중순 큰놈 미국에 떨궈주러 갔을 때, 정말 돈 한푼없이 미국에 갔었더랬습니다. 하루 20불 정도면 해결될 모텔비가 없어, 이틀을 아틀랜타에 사는 건태네 집에서, 엿새를 몽고메리 현대자동차 공장에 파견나온 현대 직원 아파트에서 신세를 지고, 차는 둘째 재환이 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다음은 큰놈과 차안에서 나눴던 대화의 한토막입니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되고 싶은 건 너무 많고 자주 바뀌는 통에 아직 뭐라 얘기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는 다면 그건 답할 수 있다."
"그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데"
"아빠같은 사람"
그말을 듣는 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뭐? 왜?"

자식놈이 나를 닮고 싶다고 하는데도 흐뭇하기는 커녕,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아빠, 의아하고 당황해서 되물으며, 시속 140킬로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자식의 표정을 확인하려 고개까지 돌려야 하는 아빠... 그 모습이 작년 8월 제 자화상입니다.

난다긴다하는 놈들 가운데에서도 떵떵거릴 만큼 돈 많은 남부의 부잣집 자식들만 온다는 고풍스런 교정 한켠의 호숫가  바윗돌에 앉아, 혹시 그런 애들한테 기죽을까봐,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3형제가, 증조부가, 고조부가, 5대조가, 6대조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고, 조국과 민족을 생각했던 사람인가 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늘어놓자, 묵묵히 듣고 있던 큰놈이 "아빠, 나 알아, 아빠가 왜 좋은 직장에서 잘나갔으면서 때려치고 사업 시작했는지, 아빠 덕분에 나 맨땅에 헤딩 안 할거라고 믿어. 아빠 사업 성공할 거야, 내 걱정하지 말고 아빠 사업 신경 써, 엄마 건강 조심하라고 하고" 하며 나랑 시선은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호수 저쪽 편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고 들키지 않으려고 꼭 껴안아 주면서 "나 이제 간다."며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차를 몰고 나왔더랬습니다. 그게 그 무렵 제 자화상입니다.

불과 1년 남짓, 이제 맥심은 판매수입만으로도 BEP를 넘어서는 대한민국 유일한 잡지가 되었고, 남성지는 물론 여성지까지 통틀어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잡지가 되었습니다. 발행부수 공시기관인 ABC에도 가입했고, 지금 출판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역시 신대표야, MAXIM이 Blue Ocean을 창출했다"며 부러워들 합니다. 실은 아직 아닙니다. 오늘 LG증권 호남본부장으로 있는 동창 배순기가 전화했더군요. 조카들 두놈한테 물으니 다들 맥심 잘될거라고 했다면서...

5억도 되지 않는 집에는 6군데서 20억을 아직도 가압류해 놓은 상태고, 욕실 문짝 합판이 너덜거려도 수리할 염두도 내지 못합니다마는 작년보다 저는 행복합니다. 12명밖에 되지 않는 직원에게 30만원 들여 추석선물로 포도주 한세트씩을 나눠주고 다행으로 생각할 줄 알게되어 행복합니다. 5년전 30만원이라는 돈은 저처럼 장남으로 태어나 고생 많이 한 후배들 경조사에 香燭代로 건내는 돈이었습니다. 후배들 해외 출장갈 때 출장비 보태쓰라고 건내는 돈이 200불이었습니다. 4년만에 단돈 2백만원 가용에 보탤 수 있는 처지를 마음 속 깊이 감사할 줄 아는 쫌팽이가 되어서 행복합니다. 400명 가운데 297등을 하는 막내놈한테도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맙다는 생각할 줄 아는 아빠가 된 게 행복합니다. 형수님, 막내 현일이가 1학기 성적표를 받아들고 와서 제 누나랑 비교해 보고는 "누나는 우, 미, 양, 가가 하나도 없지? 나는 양이 다섯개나 된다. 누나는 가 있어?" 해서 부부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세상에 사회는 17점이었답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제가 풍운을 몰고 다니는 팔자 인 듯도 싶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난 4년이 꿈만 같습니다. 창업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하지만 창업이 이렇게 힘들 줄 미리 알았더라면, 지금보다 100배쯤 더 잘 될 확실한 대박이 보장돤 사업이라손치더라도, 지난 4년을 다시 해야한다면, 전 죽어도 못합니다. 이게 나이 먹는 징조일까요?

형수님, 돈때문에 매일매일 숨이 막히다는 압구정 주민? 이렇게 제목을 뽑으면 좀 읽히지 않을까요? 형수님 팍팍하시다기에 헛웃음으로라도 웃겨보려고 하는 소립니다. 힘 내세요. 원래 동트기 전이 젤 어둡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그럼 이만

(졸문 읽어준 친구들 고맙고, 모두들 힘내서 50 고개 훌쩍 넘어보세. 심적으로 내게 용기를 북돋워 준 친구들, 형편 닿는 대로 날 도와준 친구들 일일히 거명하지는 않지만 정말 고마왔네. 내 평생 자네들 잊지 않음세.)




221.151.4.132 배민영: 신재형 축하한다. 얼마전 추석영화 신데렐라맨을 보고 가슴이 찡했는데
     너의 스토리가 그 못지 않다.
       -[09/21-14:04]-


59.20.135.10 장재홍: 부산 내려오기 며칠 전 너의 밝은 모습과 맥심의 안부를 전해듣고 좋은 소식에 감사했었지.
     맥심 잘 되길 바란다. 아니 정말 잘 될거다.   -[09/21-20:21]-

220.86.131.29 신재형: 민영아, 아까 통화 중에 전화 끊어져서 미안타. 내 핸펀이 고물이라서...
       -[09/21-23:47]-

220.86.131.29 신재형: 재홍아, 어째 부산 생활은 대충 정리는 되었냐?
     부산2저축은행에 김민영 사장이 일고 선배다. 아주 좋은 분이시지.
     동아대 중문과에는 김용운 17회, 김종현 22회 동문이 있다. 시간 내서 연락한번 해 봐라.   -[09/21-23:49]-


83.141.64.147 서경석: 꽤 긴 글을 읽다보니 한 편의 소설을 보는 듯하구나. 역시 기자 출신이라 글도 잘쓰는구나.
     재형아 그래 잘 나가던 중앙일보를 나와 활기차게 시작하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동안 어둡고 캄캄한 긴 터널을 지나왔구나. 멀리 있어서 제대로 소식을 모르고 살았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차례인 것 같구나 축하한다.  -[09/22-04:58]-

220.86.131.62 신재형: 경석아, 추석은 씩씩하게 쇠었는지...
     2004년 6월 포르투갈 FARO에서 MAXIM 컨퍼런스가 있었다. 수중에 돈한푼도 없는데...결국 싱가포르항공 마일리지로 다녀왔는데... 서울-싱가포르-런던 히드로-철도-버스-런던 개츠윅-파로를 왕복했다. 그때 런던 길거리에서 네 생각이 나더라마는 연락도 못했다. 수중에 돈이 있었다면 맨손이라도 떳떳했을 텐데...암튼 미안하다. 담에 런던 가면 꼭 연락하마.   -[09/22-21:08]-

211.39.76.119 김태룡: 재형이 어깨 늘어진 때 눈치도 못채고 있다가 이제 술산다고 하면 속보일까봐 말도 못꺼내겠군.
     재형이 기개가 대단한 건 일찌기 알고 있었지.
     승승장구하기 바라네.
       -[09/23-11:46]-

211.250.112.68 정윤택: 인간지사 새옹지마라고 맘고생 몸고생 넘많이 하였구나
그러나 항상 정열적이고 부지런한 신재형이길래 모든걸 이기리라 믿는
다  -재형이 화이팅 아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8-7   -[09/27-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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