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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태몽을 끝까지 숨기고 돌아가신 어머니
 ▲ 1973년 결혼40주년을 맞아 시골장터의 사진관에서 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때 어머니 57살, 아버지는 한 살 아래인 56살이었다. 내 태몽을 끝까지 숨기고 돌아가신 어머니 [우리 엄마 이야기 2] "꿈이 너무 좋아..." 남편에게도 함구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유종필 기자 어머니는 아담한 체구에 똥글똥글한 얼굴을 가진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이다. 그 작은 체구 어느 구석에서 그런 힘이 나와서 온갖 대소사를 해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가지만, 어릴 적 나에게는 어머니의 쉬지 않고 움직이는 모습이 그저 당연하게만 여겨졌다. 어머니의 솜씨는 인근에서 알아주는 정도였다. 특히 우리 집 약주는 이름깨나 나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도 맛보기 위해 왔었고, 면내 유지들도 가끔 와서 밤늦도록 술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60년대에는 일반 가정에서 술 담그는 것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다. 세무서 직원이 불시에 나와서 동네를 돌면서 적발하여 벌금을 매겼다. 동네 어귀에 세무서 직원이 나타나면 즉시 연통이 돌아 동네 전체가 술 항아리 숨기느라 난리통이 벌어지고 야단법석이 되었다. 특히 우리 집은 일년 열 두 달 술 떨어지지 않는 집으로 소문이 나 집중 단속 대상으로 찍혀 있던 터라 꽁꽁 잘 숨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집안에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온 식구가 황급히 움직였다. 숨기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볏짚단이나 두엄 속 깊숙이 넣는 것은 원시적 방법이었다. 광의 마룻장을 몇 장 뜯어내고 그 밑에 파놓은 구덩이에 넣기도 했고, 급할 때는 항아리를 통째로 안고 대나무 밭을 통해 뒷산으로 빼돌리기도 했다. 언젠가는 형이 무거운 술 항아리를 엉거주춤한 자세로 안고 뒤뚱뒤뚱 도망치다 들키기도 했다. 또 한번은 미처 연락도 못 받은 상태에서 세무서 직원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도저히 손을 쓸 새가 없었다.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어머니가 기지를 발휘하여 안방에 드러누워 끙끙 소리를 내며 앓는 시늉을 하면서 아랫목에 이불로 싸놓은 술 항아리를 지킨 적도 있다. 세무서 직원은 눈치 채고도 눈감아 주는 것 같았다. 이 무렵 나는 술 항아리를 들키는 날이 우리 집 망하는 날인 줄로만 알았다. 그만큼 술 항아리를 애지중지하면서 지키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애주가를 넘어 폭주가에 가까운 아버지를 비롯하여 우리 식구 모두가 어머니가 손수 빚은 약주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좋은 술을 만드는 데는 고품질 원료와 적절한 배합비율에다, 무엇보다도 온도와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은 과학적 기법보다는 타고난 예술적 감각에 의존하게 되는데, 아마 어머니도 그랬던 것 같다. 대충대충 하는 것 같지만 늘 환상적 술맛이 나왔다. 누룩을 만들고 술밥과 누룩을 잘 버무려 항아리에 넣어 아랫목에 이불로 싸서 앉히는 과정을 수도 없이 보아왔기에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옆에서 구경하다 얻어먹는 술밥 한 덩어리는 목구멍으로 얼른 넘기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너무 맛이 좋았다. 씹고 또 씹어서 달콤한 맛이 날 때까지 입속에 넣고 웅얼거린다. 술밥이란 약주재료가 되는 순도 100%의 찐 쌀밥으로, 물렁물렁하지 않고 꼬독꼬독하여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빚은 약주의 은은한 때깔과 달착지근한 맛을 좋아하여 몇 모금씩 예사로 마시고 나른한 취기를 느껴보기도 했다. 어린 것이 술 맛을 알면 얼마나 알았겠는가. 술에 취했다기 보다는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에 흠뻑 취했다는 편이 맞지 않을까. 어머니의 약주 빚는 솜씨는 친정 내림이었다. 광산군 임곡면(지금은 광주광역시)이 친정이다. 17살 때 한 살 아래의 신랑을 맞이했다. 친정집 방안에서 연지 곤지 볼에 찍고 족두리 머리에 꽂아 얹고 대기하던 중 방안에 혼자 남은 틈을 타서 마당에 당도해 있는 신랑을 문틈으로 살짝 훔쳐보았는데, 전날 밤 꿈속에서 보았던 영락없는 그 얼굴이더란다. 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어머니는 꿈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이었다. 아들 넷을 낳은 후 또 임신을 했을 때 빨간 열매 세 개를 따는 꿈을 꾸었다. 동네 할머니가 해몽하기를 딸을 연속 셋 낳을 거라고 했는데, 적중했다. 아홉 번째 아이, 바로 나를 뱃속에 가졌을 때도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나는 나의 태몽을 모른다. 어머니는 꿈이 너무 좋아서 입 밖에 낼 수 없다며 남편에게도 끝까지 함구했다. 입 밖에 내면 누군가가 훔쳐갈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나는 언젠가 한 번 당사자는 알아야 할 것 아니냐며 마구 졸라댔지만 어머니의 완강한 소신은 바위처럼 끄떡도 하지 않았다. 숨기면 숨길수록 더 궁금해지는 법이지만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누가 훔쳐갈지 걱정이 되어서가 아니라 자식 생각이 그 정도에 이르는 어머니의 마음 씀씀이를 존중해주고 싶어서였다. 나는 지금도 간혹 이 일이 떠오를 때 마다 그 엄청 좋다는 태몽에 대한 기대보다는 어머니의 가없는 자식사랑에 마음이 숙연해지곤 한다. 어머니는 자식이 아홉이나 되다보니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식걱정으로 평생을 보낸 여인이다. 그야말로 걱정을 팔자로 타고났다는 편이 맞겠다. 아들이 여섯이나 되어 한동안은 우리 집에 군인이 끊이지 않은 세월이 있었다. 둘이 동시에 군대에 있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아들 셋을 함께 군대에 보내놓고 있었던 기간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둘째 아들은 베트남전쟁에 파병됐고 셋째는 68년 무장공비 청와대 침투 기도 사건 때 토벌작전에 동원되었으니 어머니가 하루 밤인들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겠는가. 당신이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시부모 모시고 대가족 살림살이 하느라 모진 고생 온갖 풍상 다 겪은 터라 세 딸은 죽어도 맏며느리로 시집보내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결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단단했다. 큰 누나, 즉 어머니의 큰 딸이 혼인적령기에 도달하자 여기저기 혼처가 나타났다. 인근에서 이름 있는 중매쟁이들이 우리 집을 드나들고 친척들도 나섰다. 유 면장네 큰 딸이 얌전하고 솜씨 좋고 인물도 반반하다고 소문이 돌아 꽤 실속 있는 신랑감들이 자천타천으로 우리 집 골문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골키퍼가 만만치 않았다. 우리 집 골문을 굳게 지키고 선 골키퍼는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첫 번째 질문은 무조건 장남 여부였다. 쓸만한 신랑감 다수가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골키퍼의 손에 맞아 보기 좋게 튕겨져 나갔다. 큰 누나는 누가 보아도 맏며느리 감이었다. 생김새나 마음씀씀이에 앞서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그랬다. 적성 ․ 취미 ․ 특기가 한 묶음 패키지로 일사불란하게 몽땅 맏며느리 감이었다. 그래서 이치상 장남들이 많이 몰려온 것은 당연했다. 중매쟁이들이 가져온 신랑후보의 사진은 대개 꼬마성냥갑 절반 정도의 크기였다. 온 가족이 심사위원이 되어 등잔불에 흑백사진을 비추어보면서 품평들을 쏟아냈다. 어린 나도 빠지지 않고 예리하게 약점을 찾아내 물고 늘어지곤 했다. 60년대 중후반 무렵 결혼풍속도 가운데 하나는 서로 간에 기본 조건이 맞으면 신랑감이 부모와 함께 신부감의 집에 와서 선을 보는 방식이었다. 양가 가족이 단체로 상견례를 하다가 적당한 시점에 청춘남녀만 방에 남겨두고 마당으로 나가는 맞선 방식이 막 유행을 타던 시절이었다. 선을 볼 때 신부 감에게는 철저한 사전준비가 요구되었다. 양가 부모가 기다리고 있는 방에 들어설 때 문을 여닫고 걸어 들어오는 품새에서부터 앉은 자세, 시선의 높이, 말하고 웃을 때 입을 여는 크기, 퇴장의 뒷모습 등등 모든 행동거지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써야 한다. 특히 앉아서 절을 할 때 공손함의 정도가 넘치거나 부족해선 안 된다. 넘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직 시부모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어른이기 때문에 시부모에게 절하는 정도까지 극도로 공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모든 과정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서는 흡사 미스코리아 합숙훈련과도 같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야 감점을 받지 않고 원하는 상대와 결혼하거나, 설사 결혼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좋은 뒷평을 남겨 집안의 명예를 지키고 동생들의 혼삿길에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머니의 맏며느리 불가론은 7 ․ 8 월 태양처럼 맹위를 떨쳤다. 이 때문에 큰 누나는 꽤 좋은 신랑감을 계속 놓치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들을 위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양 그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행복한 결혼의 조건에 맏며느리 여부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지 않았다. 그만큼 시대가 바뀌고 있었다. 근대화 ․ 산업화 ․ 도시화에 발맞춰 핵가족화가 막 진행되고 있었다. 장남도 부모와 함께 살지 않고 도회지에 나와 신혼살림을 차릴 수 있게끔 막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대변화도 어머니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대가족의 맏며느리가 정신적 ․ 육체적으로 오죽이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까지 할까, 나는 이해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녹록치 않은 법. 국민학교 교실 자리배치 때도 꼭 피하고 싶은 1순위와 짝꿍이 되기도 하는 것이 세상사이다. 결국 어머니는 큰딸을 남의 집 맏며느리로 주고 말았다. 친척이 데리고 온 도시청년이 큰 누나의 마음을 대번에 사로잡았는데, 장남여부는 미처 사전심사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보다는 큰 누나의 운명이 맏며느리가 될 수밖에 없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인들 운명 앞에 어쩌겠는가. 맏며느리 불가론은 처음부터 보기 좋게 깨지고 말았다. 이어 둘째 셋째 딸까지 모두 맏며느리로 주고 말았다. 아마 일부러 세 딸 모두 맏며느리로 만들고 싶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 딸 모두를 그토록 안 된다던 맏며느리로 보낸 뒤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 했을까. 그렇게도 걱정을 사서라도 하는 성격에 얼마나 걱정 불안 근심 초조를 가슴속 깊이 품고 살았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어머니가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김 인배: 어이~ 종필 친구,자넨 분명히 대박일꺼네.. *^^* 자네 어머니의 지극정성에 고개가 숙여지네,, 하여간 진 빼는 무더위에 체력관리나 잘 하시게.. *^^V 덕분에 세상의 감사함을 찿고 가네... -[07/21-1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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