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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말리기
 고추 말리기. 2003년 7월 23일 쉴세없이 쏟아지는 빗살에 세상이 온통 젖어 들고 있다. "홍대장, 일기예보에 내일도 이렇게 온다는데 어떻게 하는거요?" "아, 형님, 비와도 갑니다." 대둔산은 아기자기하고 섬세하다. 또한 화려하다. 용문골에는 40여개의 암장 루트가 있다. 신선 암자를 바라볼 때 왼쪽부터 처마바위 3개, 위문공연 바위 7개, 원악바위 4개, 동신 바위 7개, 돼지 바위 5개, 신선 바위에 10개, 그외 몇 몇 등, face, crack, overhang 등이 골고루 산재해 있다. 바위길은 루트를 한마디로 함축하는 낭만적인 이름이 많다. 설악산 노적봉의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은 시 마디 마디에서 에델바이스와 금마타리를 느낄 수 있으며 웅장한 토왕폭의 상, 하단이 눈에 꽉차면서 시는 완성된다. 천등산 '어느 등반가의 꿈'은 자신의 등반에 대한 열정을 담고자 했으며, 천불동계곡 오련폭포 왼쪽은 '별길', 장군봉은 '나의 소중한 사랑'. 소토왕길에는 '낙화유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쟁기폭 좌벽에는 친구를 그리워하며 만든 '친구에게', 문 바위에는 '그대 새가되어' 도솔암에는 '동백꽃', '꽃 바람속에 피어난 꽃', '아침 햇살', '비틀스' 등이 있다. 이들 등반가는 모두 시인임에 틀림없다. 보다 세상을 치열하게 살거나 구도자적인 이름도 눈에 띈다. 선운산 속살바위에는 '어딘가 너머 무지개가' 도솔암의 '더러운 세상을 떨쳐 버리고','진달래 탈춤', '자유를 찾아서', ' 백팔번뇌', '개 같은 날의 오후', 계룡산 바가지바위의 '송병장의 꿈', 울산 바위에는 어려운 곳을 피해가다 다시 만나는 '하나 되는 길'이 있다. 대부분 등반가나 산악회의 이름을 딴 곳도 많지만 이중에는 우정과 사랑과 죽음이 담긴 비극적인 것도 있다. 설악산 석주길은 송준호가 설악에서 등반사고로 함께 죽은, 친구 엄홍석과 그의 연인 신현주의 마지막 글자를 따서 지었다. 5년 후 송준호도 토왕빙폭 등반에서 추락사했다. 갱기폭의 웅진철조는 김재웅, 이승조, 및 탈레이시가르에서 숨진 최승철과 김형진의 이름 끝자가 들어 있고 적벽의 '트랑고의 꿈'은 정승권씨가 트랑고의 홍성암씨를 추모하기위해 개척했다. 반면 야리꾸리한 이름도 많다. 울산암은 정상부의 바위가 미끈한 비너스의 허리와 엉덩이처럼 매끈하게 빠져 '비너스 길', 북계산의 매월대 암장은 '아! 살떨려(?), 이쁜이, 순이길, 덕구바위는 '굳세어라 금순이', 여인의 속살처럼 부드럽고 하얗다 해서 붙인 선운산의 속살바위에는 '그대 떠나가도', '언제나 너의 곁에서', '그 여자의 이야기', 투구바위에는 '이름다운 여인의 비밀', '립스틱 짖게 바르고', 계룡산 바가지바위에는 '빨간 유혹'이 있다. 대둔산은 죄끔 더 야하다. 아래에서 쳐다봐도, 위에서 내려다봐도 비경(秘境)이다. 미녀와야수, 청춘, 가시네, 데이트, 첫경험, 뽀뽀, 손장난, 엉뎅이, 방뎅이, 궁뎅이, 성감대, 꼭지(남자의 그것을 닮아서), Y골, 부부길, 위문공연 등,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이네! 기왕 산행한 김에 다 훔쳐 보고 싶지만 능력 부족이다.(^_-) 또한 루트에서 '고추 말리기'는 빼놀 수 없다. 따뜻한 가을 오후 햇살이 잦아들 무렵에 고추 말리고 싶은 유혹은 떨쳐 버리기 힘들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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