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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칼럼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 2018-02-04 (일)
ㆍ추천: 1  ㆍ조회: 498   
#[하얀거탑]이야기2
 
# 문화방송 MBC가 지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게 시달려서 가장 나쁜 방송으로 추락했다.   옛 명성과 위상을 다시 세우려려는 각오가 대단하다.   그 워밍-업으로 10여년 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하얀 거탑]을  다시 방영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 방송을 기대하면서, 2007년 2월과 3월에 쓴 나의 [하얀 거탑]이야기 두 개를  다시 올립니다.
 
 
 [하얀 거탑]의 드높은 인기, 권선징악에 갇히다! 070313 김 영주

 
[하얀 거탑]이 20부로 끝을 맺었다. [토지1부] [용의 눈물] [여자의 방] [애인] [쾌걸 춘향]이래로, TV드라마를 참 오랜만에 몰입해서 재미있게 보았다. 마지막 회에는 눈물까지 글썽임서 보았다. ㅠ.ㅠ 유치하게시리 -.-;; . 그러나 10부를 넘어서면서 현실적 리얼러티가 많이 떨어졌다. 가난한 인권변호사가 내부고발자의 증거를 확보해나가면서 재판을 이겨나가는 모습은, 드라마에 긴박감을 주려면 일부러 그 대립각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리 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 현실에 비하면 리얼러티가 많이 떨어진다.

조직폭력배만 조직이 강렬한 게 아니다. 그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매운 맛’이 있다. 지금만 그러한 게 아니라 태고적부터 그랬다. 조직은 한 쪽으론 든든한 보호막이면서도 다른 한 쪽으론 조직이 요구하는 의무나 강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조직의 보호막에 기대어 살면서도 그 의무나 강요 때문에 갈등하고 번민한다. 그러나 마냥 갈등할 순 없기에 그 의무나 강요를 자기 몸에 익숙하게 길들인다. 거기에 그럴 듯한 명분을 주게 되면 조직의 생명력이 왕성해지고, 그럴듯한 명분을 잃게 되면 조직의 생명력이 시들어간다. 이익이 많고 권력이 강한 조직일수록 조직원이 자기 개성의 색깔을 드러내기 어렵다. 게다가 그 이익과 권력을 주고받으면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에 보이지 않는 의리와 관행이 있기 마련이다. 그 이익과 권력을 포기하고 나아가서 그 의리와 관행을 깨면서까지 자기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건 차암 어려운 일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단단한 조직에서 살아본 사람은 체험으로 뼈 속 깊이 알고 있다. 그 옳고 그름보다도 ‘조직의 안전과 평화’가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하얀 거탑]에선 이 드높고 단단한 거탑에 박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법정의 증인으로 등장하여 자신의 색깔있는 삶을 찾는다. 그러나 색깔있는 사람은 조직생활을 잘 꾸려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살아남지 못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기보다는, “색깔있는 자는 살아남지 못하고, 색깔없는 자가 살아남는다.” 그런데 그 조직에 충실하면 자기 자신의 색깔있는 삶이 희미해져간다. 딜렘마이다. 색깔있는 삶이 자기의 개성을 만끽하는 대신에, 조직의 안전망을 포기하고 모진 비바람에 시달리는 건 색깔있는 삶의 당연한 귀결이다. 내부고발자는 자기 조직에서 따돌림을 당할 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다른 조직들에게 전파되어 사방팔방으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부고발자에게 세상이 왜 그렇게 썰렁해지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내부고발자들이 자기 조직에서만 물러나고 금새 다른 조직으로 옮겨서 나름대로 자기 일을 해 간다. 실제 세상에선 그런 정도의 손해를 입는 선에서 멈추지 않는다.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며, 어떤 경우엔 거의 치명적이다.

 
이 드라마의 장점이 선과 악을 뒤섞어서 현실적 리얼러티를 살려낸 것이지만, 큰 틀에서는 초반부터 권선징악이 깔려 있고 후반부로 들어서선 몰아쳐 달려간다. 내가 몸소 경험한 인생살이만을 되짚어 보면, 선과 악을 딱 가름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 선명하지도 않거니와, 대체로 그리 ‘권선징악’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권선징악이 우릴 맴돌면서 떠나지 않는 것은, 기득권 세력이 자기 세력의 입맛에 맞는 선악의 이데올로기로 강렬한 마녀사냥의 표적을 세워서 기존 사회질서의 안정을 도모하는 세뇌작업으로 생활 속에 뼈 속 깊이 박아놓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별 볼 일 없는 내 자신이 채우지 못한 욕망을 위로받고 싶은 자기 보호본능이나 자기 위로용 카타르시스 때문인 것도 같다. 자기를 ‘착한 사람’이라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은 ‘권선징악’을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러하면 좋겠다!”고 희망하는 것과 “실제로 그러한가?”라는 엄연한 현실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우린 그런 희망사항과 엄연한 현실을 자주 헷갈린다. 더구나 우리 스스로가 헷갈리고 싶어한다. 종교나 이념이 이 틈을 비집고 또아리를 틀고 들어 앉아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으며, 우린 ‘그 거룩한 순결주의’에 감복하여 엄숙단정하게 똥폼잡고 싶어한다. 이렇게 꼬치꼬치 따지고 보면 인간이라는 게 차~암 어리석고 비루하지만, 그게 실제 인간 세상에서 흔한 일이고 내 자신도 그렇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이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들이 다른 동물들보다 잘난 체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깊은 수렁인가를 미처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앞 글에서 까페여인 강희재에게 상당한 포인트를 주었고, 그녀가 중요한 역할을 맡아 어떤 썸씽을 만들어내어 스토리가 긴박하게 재미있어지기를 상당히 기대했는데,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끝나버려 참 서운했다. 마무리를 너무 서둘러서 짜임새가 많이 헐거웠다. 방영횟수를 10회쯤 더 늘려서 그녀가 얽혀들어 사건을 좀더 화끈하게 끌고 가고, 장준혁의 죽음이나 추락을 좀더 천천히 차분하게 끌고 갔더라면 현실적 리얼러티를 훨씬 잘 살려낼 수 있었을텐데 ··· . 하지만 그 동안 허깨비 같거나 질질거리던 TV드라마가 생생한 현실적 리얼러티로 긴박한 파워게임의 스릴을 펼쳐 보여준 재미를 한껏 맛보았다. 조연들이 돋보여서 더욱 좋았다. 이 드라마로 우리 사회 전체의 리얼한 모습과 내 자신의 주변을 돌이켜 보아야지, 그 어떤 특정 직업이나 집단만을 찍어보아선 안 된다.

TV가 아무리 대중의 말초적 감각에만 매달린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TV야 대중을 너무 졸로 보지 말라! 너희들이 대중을 졸로 보니까, 우리 국민수준도 졸로 보이잖아~!

* 영화 드라마 소설을 보거나 놀이를 할 때에는, 차가운 머리로 냉철하게 분석하는 게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열정하게 몰입해야 합니다. 냉철한 분석은 그 놀이가 끝난 뒤 적어도 1시간 대체로 하루 이틀이 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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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메거진 T]라는 잡지에서 '어느 중년 샐러리맨의 서글픈 고백'(2007/02/06)이라는 글의 일부를 퍼온 글입니다.
 
현실만큼 섬뜩한 [하얀 거탑]의 정치들
 
 ...  이쪽에도 붙고 저쪽에도 붙어 이권을 뜯어내는 모습은 섬뜩하게 현실적이다. 돈이 등장하고, 자리를 보장하고, 줄을 세우는, 선거판의 전형적인 모습이 부담스럽다고? 이런 풍경이 비단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 지자체장 선거에만 펼쳐진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순진무구한 분이지 않을까. 물론 대학병원 외과 과장 자리에 이 정도 로비가 이뤄지는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은 들지만, 우리 세대가 속한 어느 조직이든 어느 정도의 직급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로비와 암투가 필요하다는 것은 직접적인 경험으로도 혹은 간접적인 정보로도 충분히 체득할 수 있는 ‘상식’이다. 오히려 <하얀거탑>에서 흑색선전과 마타도어가 난무하지 않은 것이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고나 할까. 당사자들의 사생활에서부터 업무 경력에 이르기까지 온갖 ‘뒷담화’가 쏟아져 나오는 게 조직에서의 선거판이라고 해도 결코 오버가 아닐 것이다. 학연, 지연으로 맺어지고 줄을 잘 서야 출세하는 것이 슬프지만, 대한민국 샐러리맨의 현실이다. 오너와 혹은 막강한 세력군과 학연, 지연으로 연결되지 못한 사람은 ‘육두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노력과 능력만으로 ‘성골’ ‘진골’ 반열에 오르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샐러리맨들은 눈치가 빨라야 한다. 조직 내 누가 ‘끗발’이 있는가를 파악해야 하고 이러한 권력구도 하에서 줄서기를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아니면 집에 돈이 많던가!). 또 하나. 학연이나 지연에 얽매여 줄서기를 싫어하는 직장인조차도 권력 상층부에서는 알아서 줄을 세운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은 어느 학교 출신이니깐 상대 편, 이 사람은 어느 지역 출신이고 어느 부서에서 누구랑 같이 일했으니깐 우리 편’이라는 식으로 알아서 편 가르기를 끝낸다. 왜? 부동표가 누구를 포섭해야 할지를 파악해야 하니까.
 
이렇게까지 주장해버리고 나니 상당히 서글퍼진다. 청렴결백하고 눈치 안 보고 묵묵히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은 도태돼야만 하는 게 현실인 것인가. 아주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까? 하지만, 기억해보자. 장준혁의 외과 과장 자리가 아슬아슬했던 건 결코 능력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


이와 같은 일이 비단 조직생활을 하는 샐러리맨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업가, 자영업자나 프리랜서 등 조직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서 여기서 자유로울까? 정도의 차이겠지만 사업오더를 따내기 위해서 혹은 일거리를 위해서 로비와 접대를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필수가 돼버린 것처럼 보인다. 한 지인은 주장했다. 우리나라에 룸싸롱이나 단란주점 등 유흥업이 이토록 발전한 것은 우리 사회의 접대문화 때문이라고. 누구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 은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장소가 필요할 테니. 특히 이러한 일을 ‘맨정신’으로 하기에는 부끄러울 테니. 은밀하게 술잔을 권하며 이야기하는 곳이 절실했을 테니.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말이었다. 처세술과 관련된 책들이 스테디셀러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리라.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직장인들은 고민하고, 눈치보고, 술잔을 기울인다. 젊었을 때의 양심과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혹은 빠른 성공을 위해.
 
오늘날의 직장인들에게 <하얀거탑>은 아주 재밌는 드라마다. 그저 ‘뒷담화’로만 오고가던 얘기들이 화면으로 생생히 전개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 모른다. ‘미디어는 사회의 거울이다’라는 말을 잠시 인용한다면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해 있는 그래서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현상을 비춰주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부끄럽고도 서글프다. 나 자신의 추악한 모습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아서. 우리 샐러리맨들의 한계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하얀거탑>은, 참 슬픈 드라마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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