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화려한 휴가>의 무대 밖 풍경도 극적이었다. 항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던 20대 청년들이 50대의 중년이 되어 '항쟁 이후 30년'을 고스란히 증거하고 있었다.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김선출, 메이엔터테인먼트 대표 전용호, 총감독 김태종씨(왼족부터). 사진=운영호 기자

ⓒ 전라도닷컴

80년 광주 오월로부터 30년. 그 세월은 무대 안팎에 두루 스며 있었다.
무대 위에선 그 봄날에 청춘이었던 ‘신애’가 중년이 되어 망월동 묘역을 찾아 ‘죽은 자’들을 기억하고 불러내고 있었다.

무대 밖의 풍경도 극적이었다. 항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던 20대 청년들이 머리 희끗한 50대 중년이 되어 ‘오월 이후 30년’을 고스란히 증거하고 있었다. 오월 뮤지컬 <화려한 휴가>의 제작자 전용호(메이엔터테인먼트 대표), 총감독 김태종,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김선출씨. 밀려드는 관객들을 보며 이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지금도 청년입니다. 마음은 안 늙습니다”라고 말하는 53세 동갑내기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들의 청춘엔, 이들의 오월엔 극단 ‘광대’가 있었고 ‘들불야학’이 있었고 ‘투사회보’가 있었고 도청 앞 분수대 시민궐기대회가 있었다.
그렇게 오월과 따로 갈라낼 수 없는 청춘을 통과해온 세 친구가 30년 만에 ‘오월’이란 이름으로 다시 뭉쳤다.

“신영일, 박용준…열사이기에 앞서 우리들의 친구고 형인 그때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김태종)
“돌아가신 박효선 선배가 떠오른다. 오월광대 박효선은 ‘나는 80년에 이미 죽었다. 그 이후는 내게는 빚을 갚는 시간일 뿐’이라며 ‘오월은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시간이었으므로 나는 그 시간에 대해 천착한다’고 말했었다. 80년 오월 이후 극단 토박이를 만들어 죽는 날까지 오월연극을 놓지 않았던 이유다. 박효선 선배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빚을 갚은 느낌이다.”(김선출)
“같이 공부하고 활동했던 친구와 선배들이 죽어가고 상처받는 걸 목도하며 살았던 80년대였다. 너무나 억울한 순간들이 많았다. 그 억울함을 풀어내려 전력투구해야 했다. 어떻든 우리 세대는 오월의 세례 속에서 성장한 세대다. 오월을 마음 속에서 내려놓을 수 없다. 이번 뮤지컬을 만들며 새삼 그 업보를 생각했다. 나의 50대는 이 작품과 더불어 울고 웃고 부대끼며 지나지 않을까 싶다.”(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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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청춘엔 ‘오월’이 있었다

<오늘은 소풍 가기 좋은 날/ 저것 봐 꽃이 부르잖아/ 오늘은 소풍 가기 참 좋아/ 저것 봐 산이 오라잖아…/ 오늘은 소풍 가는 날/ 눈물은 두고 가자 꿈도 서러움도…>
뮤지컬 <화려한 휴가>(5.15∼5.19,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는 소풍 가기 좋은 아름다운 봄날에 펼쳐졌던 학살과 아픔의 현장으로 관객들을 데리고 간다. 무대를 열고 맺는 노래 ‘하늘 소풍’의 서정성이 그 봄날에 펼쳐졌던 비극과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염원을 극대화한다.

지난 2007년 개봉해 800만 관객을 끌어모았던 영화 <화려한 휴가>가 원작. 이제 막 설렘 속에 사랑을 키워나가는 젊은 연인 ‘신애’와 ‘민우’를 중심에 두고 평범한 이들의 소박한 꿈과 행복이 ‘오월’을 거치며 어떻게 깨어졌는지를 그려나간다. 학살을 목도하며 시민들이 분노하고 절망하고 항쟁에 동참해가는 과정, 광주를 지키기 위해, 자유와 민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도청에 남아 저항했던 이들의 모습이 그 위에 겹쳐진다.

연극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과 뮤지컬 <블루 사이공>의 작가 김정숙씨와 연출자 권호성씨가 다시 호흡을 맞췄다. 영화 <인디언 썸머>와 <청연>으로 대종상영화제 음악상을 수상한 미하엘 슈타우다허(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과 교수)가 음악을, 최영화(호남대 다매체영상학과 교수)씨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오월의 전국화와 세계화, 정당한 자리매김을 위해 문화콘텐츠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진즉부터 품고 있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될 즈음부터 이 시나리오를 뮤지컬화하는 구상을 해보았다. 창작극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방식이 더 효과적이겠다 싶었다. 이 영화가 5·18을 잘 모르는 세대나 광주 바깥의 타 지역에 오월을 알리는 데 상당한 대중적 기여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김선출)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대구 출신 감독이 광주 오월 영화를 만든 것이 일단 고마웠었다. 또 지식인이나 활동가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오월을 그려냈다는 점도 의미있게 다가왔었다.”(김태종)
“잘 알려진 작품의 대중성을 활용하면서, 그 위에 노래와 춤을 입혀 영화와는 또다른 감동과 메시지를 끌어내고 싶었다.”(전용호)
영화 <화려한 휴가>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뮤지컬을 만든 이유다.

무엇보다 “일회적 공연에 그치지 않고 5·18 30주년을 맞아 광주의 대표적 문화상품을 만들자는 데 의기투합했다”고 김선출씨는 말했다.
지난 해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기획창작프로젝트 공모에 선정되면서 뮤지컬 <화려한 휴가>는 제작의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 또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관련 공연 콘텐츠 계획에 도 포함돼 2018년까지 단계적 지원을 받으며 이 기간중 광주상설공연과 해외순회공연을 추진할 예정이다.

전용호씨는 “연출자나 작가 모두 열정과 의기가 있고 순수했다. 오월을 담아내는 작업의 의미에 공감하고 보수와 상관없이 참여해 주었다”며 “이 모두가 ‘오월’이 맺어준 인연이고 연대”라고 말했다.

“극에 쓰인 음악을 1980년 광주항쟁을 겪은 분들에게 헌정하고 싶다”고 밝힌 작곡자 미하엘 슈타우다허 교수도 알고 보니 오월과 관련 있는 사람이었다고. 1980년 당시 독일에 살고 있던 열네 살 소년이었던 그는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에서 일했던 누나를 따라 5·18 진상규명을 위한 길거리 시위에 나섰으며 한국 정부에 인권 수호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

그렇게 ‘오월’이 맺어준 인연들로 꾸려진 뮤지컬 <화려한 휴가>. 세 사람이 꼽는 명장면은 무엇일까.
“후반부 신애, 인봉, 신부님이 중창을 이루는 장면이다. 뮤지컬의 묘미를 생생히 살리면서 세 사람의 긴장된 마음을 극적으로 전달해주는 장면인 것 같다.”(전용호)
“바람이 불어온다 일어서라…‘역사의 바람’이란 노래가 나오는 대목이다. 죽음의 길로 가기 전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고 시민들이 비장하게 일어서는 장면이다. 배우들 모두 당시의 광주시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김선출)
“시민군들이 ‘광주 내사랑’을 합창하는 장면이다. ‘미소를 지어라 눈물을 거둬라…광주 내 사랑아, 오늘은 죽어도 우리 내일 다시 만나리’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오월에 떠나간 사람들, 죽은 사람들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이지 않을까. 또 산 자들에게의 당부가 담긴 노래이기도 할 것이다.”(김태종)

보완할 점들도 꼽는다. 좀 지루하다는 반응들도 있는 만큼, 장면들을 좀더 긴박감있게 재구성하고, 춤과 노래의 완성도를 높여가면서 오월의 메시지에 더 근접해갈 참이다.

전남대 출신인 이들은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각기 탈춤반, 연극반 활동 등을 통해 문화운동에 눈뜨고 들불야학 활동을 하며 시대의 어둠을 헤쳐가려 했던 청년들이었다.“나하고 김선출은 탈춤반이었고 김태종은 연극반 멤버였다. 나는 78년 당시 3수해서 대학에 들어가서 신입이었고 탈춤반(민속문화연구회) 창립을 주도했던 김선출, 김윤기 등은 3학년이었다. 봉산탈춤의 강렬한 이미지, 탈바가지의 맛에 끌려 대학생활의 낭만을 생각하며 들어갔는데, 막상 화약냄새만 진동하더라.”(전용호)

1978년 6월 ‘민주교육지표 선언’ 시위로 김선출, 김윤기는 투옥되고 학교에서는 ‘불온한’ 써클인 탈춤반을 없앴다. 그 다음해인 1979년 탈춤반 재건에 나선 것은 전용호씨였는데, 그 역시 12월에 시위로 수배되는 처지가 됐다.
그런 우여곡절들을 거쳐 1980년 1월 탈춤반과 연극반 등이 결합한 극단 ‘광대’가 창단, 3월에는 창작마당굿 <돼지풀이>를 YMCA에서 공연했다. 돼지값 파동을 다룬 <돼지풀이>는 사회현실을 다룬 본격 마당극으로 민중문화운동의 한 획을 그었다.
‘광대’는 두 번째 작품 <한씨연대기>를 한창 준비하던 중 오월을 맞게 되고, 단원들은 항쟁의 한복판으로 흘러들어간다.

“극단 ‘광대’와 노동야학팀인 ‘들불야학’ 사람들은 광주항쟁기간중 조직적 투쟁을 전개했다. 광대는 도청앞 궐기대회를, 들불은 투사회보를 맡았다.”(김선출)
들불야학 강학으로서 ‘투사회보’ 제작에 참여했던 전용호씨는 “암흑의 상황에서 투사회보는 유일하면서도 확실한 언론이었다”고 회고한다. 투사회보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던 그는 훗날 ‘빛고을신문’ 창간에도 참여했다.

김태종씨는 23∼26일 시민궐기대회 사회자로 활동했다.
“5월23일엔 비가 내려 궐기대회가 어수선했다. 그 때 ‘이 비는 돌아가신 영령들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말하자 시민들이 모두 우산을 접고 숙연하게 길바닥에 앉던 장면들이 기억난다. 26일 대회땐 27일 계엄군이 진입하리란 소식이 전해졌다. 궐기대회를 마치고 나면 보통 수천 명이 가두행진을 했는데 그 날은 참여 시민 수가 수백 명으로 줄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각에 분수대에 앉아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었는데 마음이 한없이 쓸쓸했다. 가장 뼈저리게 느낀 건 고립감이었다.”(김태종)

그 시간으로부터 30년, ‘오월’은 어디에 서 있을까. 올해 5·18 기념식에선 ‘님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5·18과 관련해 구속됐다 군대에 끌려간 뒤 첫휴가를 나와선 ‘님을 위한 행진곡’ 녹음작업에 동참했던 김선출씨는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가사는 오월정신 계승의 핵심을 압축한 것이다. 보수세력이 오월의 상징 부분에 직격탄을 쏜 것이라 생각한다. 오월의 역사를 지우고 희화화하려는 수작이다”고 말했다. “살벌했던 시절, 혹시나 누가 감시하지 않나 두리번거리며 찾아간 황석영씨 집, 그날 녹음과정에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을까 걱정하며 군용담요를 창가에 둘러치고 녹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용호씨는 “시대상황이 참담할수록 ‘오월 정신’을 살리고 계승해가는 작업이 더욱 절실하다”고 말한다. 스토리텔링작가협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내년에는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5·18 관련 소설을 쓸 생각이다.

김태종씨는 “그토록 많은 희생과 죽음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의 변화가 더디고 심지어 거꾸로 회귀하는 데 억울함을 느끼지만 역사의 발전을 믿고 싶다”고 말한다.
그 동력의 하나로 그가 새삼 강조하는 것은 ‘세상과 타인에 대한 관심’.
“5·18은 세상과 타인에 대한 관심이랄 수도 있다. 그때 광주사람들은 불의에 무심하지 않았다. 외면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이 맞고 찔리고 잡혀가는 걸 내 아들 내 딸 내 가족의 일처럼 여겼다. 고통에 같이 동참하고 불의 앞에 연대하는 마음들이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공동체적인 삶과 정서가 유지되고 있었다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풀어내는 해답 역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관심’에 있지 않을까.”
그 ‘대동세상’이 있었기에 그에게 오월은 “끔찍하고 아프면서도 또 행복했던” 양면성을띤 시간들로 다가온다.

“늘 철들지 말고 살자 싶지만, 사느라고 내게도 세상의 때가 묻었을 것이다. 세상의 불의와 모순들에 대해 ‘그냥 냅두자’ 하는 마음이 들 때 나이듦을 느낀다. 오월, 그때의 기억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오월은 나에게 ‘덜 나쁘게, 덜 뻔뻔하게 살게 하는 힘’이니까.”
입학 10년만인 1985년에야 대학을 졸업한 그는 학원강사를 거쳐 파주 헤이리에서 소극장을 운영했으며 현재 ‘문화마당 이구동성’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놓지 않아야 할 오월의 기억들을 위해

광주 관객들을 만나고 이제 서울 공연(6.12∼6.13,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앞두고 있는 뮤지컬 <화려한 휴가>. 극중 ‘신애’가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객석 사이로 다니며 호소하는 말은 “우리를 기억해주세요!”이다.
오월로부터 30년, 아니 더 많은 세월 흘러서도 잃거나 잊지 않아야 할 그 기억들을 위해 <화려한 휴가>는 만들어졌다.
글=남신희 기자 사진=윤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