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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반 신동현에게 답한다.
내가 12반인지라, 자네 글을 보고 아는대로 답하네. 그 때 그 시절에 한문으로 쓰여진 글씨가 교실 뒤에 높다랗게 걸려있다는 건 알지만, 무슨 글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자네 이야길 듣고 새삼 생각이 나서, 내가 모시고 있는 한문선생님께 여쭈어서 알아냈네. "爲山九仞에 功 虧가一籄라!"는 글귀인데, [논어]엔가 [맹자]엔가 나오는 글이라고 하시데 ... . 글 뜻은, 만들 위 ` 뫼 산 ` 아홉 구 ` 길이단위(8척) 인 ` 업적 공 ` 이그러질 휴 ` 하나 일 ` 궤짝 궤 - 여기에서 山은 반드시 '산'을 뜻하는 건 아니니까 자네 말대로 '뚝'이라고 번역해도 됨 - 九仞은 뭐 꼭 8x9=72라고 해서 72척 높이를 뜻한다기 보다는, 아홉 九라는 글자가 동양사회에서 아주 많다는 뜻을 상징하므로 여기에서는 '아주 높다란 높이'라는 뜻으로 번역하는 게 좋겠다. - 궤짝 籄는 자네처럼 '삼태기'로 번역해도 좋다네. 웬 산을 쌓는다냐? 할지 모르겠지만, 중국 동부지역은 평야가 어찌나 넓고 넓던지(자네가 중국 베이징이나 상해를 가보면 그 끝없는 지평선을 보았겠지만) 여기저기에 웅덩이를 파서 인공호수를 만들고 그 흙을 옆에 쌓아 인공산을 만든다네. 그래서 저런 한문구절이 생긴 거라네.( 공자와 맹자가 드넓은 평야지대에서 산 사람들이거든? 그래서 그리 높지 않은 자기 동네 '태산'이 그렇게 거창하게 높이 보였던거야!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 그래서 자네가 기억하고 있는 뜻이 옳지만, 굳이 글자에 맞추어 번역하자면, "높다란 산을 만듦에, 아무리 열심히 노력했어도, 한 궤짝의 흙이 모자라서 완성을 보지 못하고 만다!"는 뜻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했지만, 그 마지막 마무리를 잘못 처리하면 그 고생이 헛수고가 된다" 또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했지만, 한 터럭 차이로 낭패를 보고 말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네! 그래 우리가 살다보면, 작은 차이가 너무 크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고, 조그만 잘못으로 그 동안 고생이 헛고생되는 일이 많지! 그래서 이제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남한테 손가락질 받지 않는 정도의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그 동안 사느라고 고생 많았지? 그러나 앞으로 남은 날도 아마 40~50년은 될 껄? 아휴! 자네 물음을 접하고, 글 알아보랴! 재잘재잘 노가리 풀랴! 힘들어서 도중에 간단하게 쓰고 말려고 했는데, 자네가 말한 글귀 "爲山九仞에 功이 虧一籄라!"가 허리띠를 잡고 놓아주질 않아서, 이렇게 길게 쓰게 되었네. 글고 아직 마지막 흙 한 괘짝이 부족하지? 마저 쌓겠네! ***** 확실하진 않지만, 그땐 물빠진 모자쓰고 굵은 안경을 코에 걸고 다니는 변상섭(?)인가? 그 친구가 학동 증심사입구 '연진원'이라는 그림방에서 차밭을 가꾸며 동양화를 그리신다는 유명한 '의제 허백련 옹'에게 사정사정해서 겨우 얻은 글씨라고 했던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흙 한 괘짝마저 올리려니 힘빠져 죽는 줄 알았네! 이젠 밥사소! 꼬옥. 안 사믄 내가 힘들여 쌓은 '드높은 뚝'을 모두 허물어 위 글을 자네 기억에서 지워버리겟네! 아휴 남의 밥 얻어먹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 나 밥 사줄라믄 건강하고 튼튼해서 돈 많이 벌어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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