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若無湖南是無國家
지난 주말에는 전남 여수에서 열린 고등학교써클 연차 총회에 참석하고 돌아 왔습니다. 우선 그 써클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1960년에 창립되어 지금까지 모임이 지속되는 모임 이름은 <光郞>입니다. 광주의 화랑이란 뜻이지요. 대학으로 치면 1960학번부터 1979학번까지 대략 100명쯤의 회원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완성된 자아 실현"이라는 상당히 이상적인 목표를 가진 이 모임은 고등학교 시절 독서클럽 운영, 농촌봉사활동이 중심 활동이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농촌부흥운동, 1970년대에는 군사독재타도를 하는 회원이 많았지요. 지금은 모임 전체보다는, 회원 개개인의 역량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다른 회원은 그때그때 도와 줍니다. 모교에 장학금 보내기부터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서남해안 포럼, 그리고 여수박람회 개최 지원등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이번 모임에는 54명이 모였습니다. 여수에서 활동하고 있는는 회원이 총회 준비를 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서울에서 버스로 도착한 일행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요트를 타고 선상 파티를 했습니다. 의외로 요트 빌리는 값은 낚시배 3대 임차료 수준이었습니다. 삼치회, 서대찜, 돌산 갓김치 등 여수 특산물과 쑥떡에 왼갖가지 술.... 200여명이 탈 수 있는 요트는 돛을 일부만 펼쳤습니다만, 순풍에 돛단 배는 가막만을 거침없이 미끄러져 갔고 적어도 30년지기인 회원들의 웃음소리가 봄바람에 흩날렸습니다. 다음 날은 문화유적 탐방.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문화유적에 대한 지식의 깊이와 넓이가 전국을 통틀어 당대 최고인 김민영 회원이 안내를 맡아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우선 鎭南館. 건평이 240평으로 단일 목조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큽니다. 임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전라본영으로 썼던 곳입니다. 내부 가구 구조를 살피면서 위풍당당한 목조건물의 멋을 느꼈습니다. 남해안을 돌아 한강과 대동강으로 들이치려는 왜군을 막아내는 이순신 장군은 "若無湖南是無國家"<만약 호남을 잃으면 나라가 없어집니다.>면서 바다를 지켰냈습니다. 이순신 장군 공덕비 옆에는 墮淚碑(타루비)가 서 있습니다. 순수하게 수병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작은 비입니다. 가막만 가장 깊은 곳 작은 언덕 너머에는 거북선을 지었다는 船所도 있습니다. 忠愍寺에는 이순신,이억기장군,안홍국 장군을 모셨습니다. 이항복의 추천으로 인조가 이순신 장군에게 내린 최초의 사액서원입니다. 바로 곁에는 충민사와 일렬로 나란히 <석천사>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사망하자 같은 전함에 승선하여 있던 스님 玉同은 석천사 곁에 초막을 짓고 장군을 추도하였습니다. 충민사에서 흥국사 넘어가는 언덕 밑에는 이순신 장군 어머니가 사시던 마을이 있습니다. 난리 통에 이순신의 가족을 인질로 삼으려는 일본군을 피해 여수까지 내려온 늙은 조선 여인의 고단하고 신산한 삶이 생각났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임진 왜란 때 스님들이 수군으로도 크게 활약했었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습니다. 그 수군 훈련소가 여천에 있는 흥국사입니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세웠다는 흥국사는 이름 그 자체로 호국도량입니다. 임란 때 승군 양성 기록은 최근 사찰 중수때 상량문에서 다양하게 발견되었습니다. 흥국사는 진달래꽃이 남한 제일이라는 영취산 자락에 있습니다. 영조대왕 시절에 중수한 대웅전, 불조전, 무사전 등 번듯한 가람이 훌륭합니다. 가람의 규모나 예술적 솜씨만으로 보면 전국구 최상위권입니다. 다만 요즘 등산객 등에게 시주를 받을 요량으로 흥국사 측에서 사찰관리하는 모양새가 기도도량의 품위를 손상케 하여 마음에 걸립니다. 대웅전의 웅장한 가구미는 단연 압권. 거기에 영정조때 남해안 제일을 자랑하던 화승이 그린 국보급 탱화들, 無私殿(지장전의 또 다른 표현)의 지장보살과 시왕들의 조각상은 잘 생긴 선비 모습 그대로. 또 가로 7.2M, 세로 13M의 붉은 빛 노사나불 부처 괘불. 건축,회화,조각 등 모든 예술품에서 영정조 시기의 강력한 국력과 풍부한 물산을 바탕으로 한 완성미가 느껴집니다. 대부분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일요일 남도의 하늘 역시 황사로 뿌옇게 뒤덮였습니다. 2년전 실크로드 여행중 타클라마칸 사막 돈황에서 만났던 황사 생각이 났습니다. 좋든 싫든 아시아는 하나입니다. 황색 모래먼지 띠는 우리 아시아인이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게 해줍니다. 1600년 전부터 1000년간 조성된 실크로드의 문화 유적에서 뚜렷이 보았습니다. 서역으로부터 한반도, 일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가 이미 하나의 문화벨트 속에 있었음을. 반가사유상,비천상,음양오행,고구려의 벽화들..... 그것들은 우리나라보다 100년 혹은 150년 앞서 실크로드에서 유행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으로,동으로 전해져 경주 석굴암에서 금강석과 같이 완성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한류가 실크로드인 서역까지 빗살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요트 뱃놀이, 이순신 유적 답사, 조선을 지킨 수군 양성소 흥국사, 영정조 시대 절정의 미술품들, 그리고 황사.... 남도의 봄이 폐부 깊숙히 파고 든 주말이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