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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the Basic! -- 마라톤 완주기
여섯시에 광화문가는 클럽버스가 떠난다고 했다. 4시 50분에 일어났지만 할일이 무지 많다. 찰떡 네조각을 꿀과 함께 먹고, 화장실에 가서 충분히 비우기. 그리고 게토레이 1.5리터 마시기. 젤을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썬크림은 얼굴에 바르고, 젖꼭지 반창고 붙이고. 액상 파스를 다리근육에 뿌린 후 운동용 테이핑. 복장을 챙기는 것도 일이다. 런닝팬티와 런닝구는 그렇다 치더라도 장갑이 또 문제다. 섭씨 이도에서 손을 계속 흔들면 손바닥은 뜨겁고 손등은 시리다. 그래서 면장갑 손가락을 모두 가위로 잘라서 땜방. 또 달리기 전까지는 몸을 덥히고 있어야 하니 대충 두르고 있을 허름한 상의 한 벌. 어쨋든 23,000명의 건각들이 풀코스에 도전하며 내달리는 대열에 휩쓸리며 광화문을 힘차게 출발했다. 남대문을 돌아 을지로입구에 이르니 오줌이 무지 마렵다. SK사옥 화장실에서 잠시 처리. 다시 동대문운동장을 반환하여 청계천 변을 뛰는 데 또 오줌이 마렵다. 골목길에서 하수구 구멍을 정조준하여 또 실례. 빌어먹을, 2분이나 까먹었다. 마장동까지 갔다가 돌아와 종로통을 내달리니 대략 12-3Km 지점. 이제 좀 달리는 생체리듬이 안정감을 찾는다. 신설동을 지나 장안평에 이르니 만사가 편안하다. 28Km 지점까지는 산천경개를 두루 구경하며 즐겁게 달렸다. 어린이대공원 후문에 이르니 응원하던 마누라가 펄쩍 뛰면서 반긴다. 마누라에게 키스 신호를 보내 주고 으원단이 건네 준 작은 비닐 통에 든 십전대보 꿀물을 받아 마시니 힘이 다시 불끈. 이 꿀물에는 목동마라톤 클럽 하회장 내외가 스무시간을 달여 일일히 작은 비닐명에 담아 온 정성이 깃들어 있다. 길거리 응원부대에게 일일히 "감사,땡큐"를 외쳐 주며 여유만만하게 32Km 도달. 이제 10Km만 더 뛰면 된다. 지금까지는 1Km를 4분 45초로 뛰겠다는 계획된 속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반드시 나를 찾아 올 악마와의 대면을 예상하며 뛴다. 신호는 잠실대교를 건널 때 찾아 왔다. 점차 다리가 무거워지고 머리가 앞으로 수그러진다. 고통과의 조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 본다. 35Km지점을 통과하면서부터는 갈길이 천리같다. 그래도 경험이 제일가는 스승이다. 그 관록으로부터의 자부심이 "이까짓 것, 내가 해결한다.'는 믿음이 온다. 37Km 지점에 오니 체력이 완전히 고갈된 느낌이다. 지금까지는 훈련의 힘으로 관성의 법칙으로 뛰었고, 지금부터의 레이스가 내 의지로서 작동하는 '진검승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왜,무엇을 하고 있는가?" 반문해 본다. 하지만 극한의 고통 속에서 지친 다리를 내뻗어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단축하려고 몸부림치는 나는 내 존재의미 생각하는 것 조차 싫다. 단순해 지고 싶다. '그래, 지금 이대로가 나다.' 간간히 단상들이 교차한다. ' 이 고생을 갈고 다듬자.' ' 여기서 다져진 인내력을 좋은 일에 써보자.' 그게 아니라면 이 고생이 단순한 고통으로 끝날 게 아닌가? 다시 허물어지려는 육체를 곧추 세우고자 '나'를 닦달한다. "Back to the Basic!" 역경에 처했을 때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뿐! 몸을 세우고 다리를 가볍게, 그리고 팔은 힘차게. 뜻대로 되든 말든 생각은 거기에만 집중한다. 인생살이인들 다르랴? 내 삶의 존재가 흔들릴 때마다, 내가 믿어왔던 기대치가 깨질 때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외에 무슨 수가 있으랴? 단 한걸음도 걷지는 않았다. 발걸음이 느려진 건 훈련량 때문임이 자명하다. 어느새 운동장에 접어들었다. 덤덤하게 트랙을 돌았다. 그리고 골인지점에서 사진사를 향해 얼굴을 내밀었다. 사진에 나오는 모습이 '웃고 있을지,울고 있을지....' 3시간 27분 03초(전반 1시간 42분, 후반 1시간 45분) 그저 그런 기록이다. 몸 관리를 좀 잘해서 4월 23일 함평나비마라톤에서 더 만족한 시합을 하고 싶다. 고통의 즐거움을 동반한 마라톤에 취한 하루. ===================== 기능성이라는 말만 믿고 새 팬티를 입고 뛴 나는 오늘 피봤다. 중요한 물건을 감싸야 할 팬티앞 보조 망사가 불량품이었다. 따라서 가운데 다리는 달릴 때마다 왼다리에 한번, 다시 오른 다리에 한번씩 채였다. 보폭을 1.2M로 잡을 때 35,162번 채였다. 시합이 끝나고 거시기가 몹시 쓰렸다. 화장실에 가서 팬티를 내려본 후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시기 끄트머리에 온통 피멍이 들어 있었다. 마누라에게는 부상신고를 못한 채 뒤돌아서 웅크리고 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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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
2007-03-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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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다. 태룡아. 부럽구나. 극한상황을 연출하여 극복해가는 너의 마라톤 완주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저러나 부상신고를 못하고 뒤돌아서 웅크리고 잤다는 말미에 웃음보가 터져나오는 걸 어떻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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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2007-03-2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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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하하하! ^O^ 윗글도 잔잔하게 재미있었지만, 마지막 글이 완전 리얼비디오이구만! 내가 널 잘 모른다만, 참 열심히 사는 친구이구나 하는 느낌만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글을 보니 그 열심에 뜨거운 열정까지 다가오는구나! 태룡이 화이팅! 글고 거시기도 화이팅!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살아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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