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작성자 김태룡 ㆍ작성일 2010-12-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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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삶, 품위있는 영면 저는 이제 아버지를 先親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정신없이 며칠을 보내고 사방이 고요한 새벽이 돌아오니 아버지 생각이 간절합니다. 며칠 전 선친은 79세로 그 치열했던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선친의 주문에 따라 장례식장의 위패에 <顯考典儀府君神位>라고 표기하였습니다. 전의(典儀)란 명륜당과 향교에서 지내는 공자님 제사 '석전제'의 집전관입니다. 5남1녀를 둔 아버지는 평생을 곤궁하게 사셨습니다.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거나, 자전거로 소소한 물건을 배달 판매하는 영세한 상인이 직업이었습니다. 하지만 틈 날 때마다 독서를 해 오신 분이셨습니다. 유교에서는 늘 배우려는 자를 이상적인 인간으로 간주하여 돌아가신 분에게 <學生>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는데 제 선친이 꼭 그러하신 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웬만한 대하소설은 거의 섭렵하셨고, 역사책 일는 일도 즐겨 하셨습니다. 경제활동에서 은퇴하신 후에는 성균관의 고전읽기 반에 입문하여 10여년을 수학하셨습니다. 4서3경과 심학, 성학집요 등을 배우셨는데 배우시는 자세가 어찌나 진지하든지 제가 늘 놀라곤 했습니다. 보통 하루에 5시간은 복습에 매달리셨고, 새로 배우는 한자를 익히느라 노트를 갖고 다니시면서 틈만 나면 외우시곤 했습니다. <學而時習之이니 不亦樂好아!>하시며 즐거워 하셨습니다. 최근 5년간은 漢詩 同好人 모임에 가입하여 詩作을 즐기셨는데 돌아가시기 3개월 전에는 공동으로 시집도 내셨습니다. 내가 병상에 그 시집을 가져다 드렸더니 애지중지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흔히 장남과 아버지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30대까지는 아버지에게 썩 공손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40대 이후에는 철이 좀 났던지 부모님과 무척 가깝게 지냈습니다. 독립심 강한 부모님을 한번도 제 집에 모시고 같이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거의 매일 전화로 昏定省晨(새벽과 밤에 부모님 안부를 살피는 일)을 했습니다. 보스톤 마라톤도 함께 다녀 왔고, 태양광발전소 부지를 물색하러 국내 출장을 다닐 적에는 승용차 뒷자석에 모시고 여러 차레 전국 유람을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부모님 모시고 명승고적을 둘러 보고, 소문난 맛집에서 식사를 함께 했던 즐거움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별미 식당을 찾으면 맛난 반찬을 별도로 구해서 가져다 드리곤 했었는데... 귀신이 씌었는지 모릅니다. 작년 이 맘 때 부모님 두분의 좌상을 유화 초상화로 마련해 드렸는데 그게 영정 사진이 되어 버릴 줄이야.... 그로부터 며칠 후에 부친에게 뇌졸증이 찾아왔고, 또 그 1달 뒤에는 폐암이 발견되어 병원으로부터 10개월 쯤 사실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 우리 형제들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에게 여한이 없는 사랑을 드리고자 무척 분주해졌습니다. 아버지 병환이 형제간의 우애를 키워주었고, 부모 사랑을 깨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지난 9월 중순 어머니마저 뇌졸증에 쓰러지자 우리는 부모님을 같은 병원에 모셨습니다. 저희 동기 기평석군이 운영하는 부천의 <가은병원>이지요. 그 결과 두분이 옆 병실에 계시면서 서로의 안위를 챙겨주며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드라마같은 삶을 이어 가셨습니다. 틈 나면 최선을 다해서 근력운동을 하셨고 식사도 잘 하시는 편이었습니다. 그 결과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심각한 통증이 없는 편이셨습니다. 폐암환자는 말기에 극심한 통증에 시달린다고 들어서 무척 걱정해 왔는데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돌아가시기 1주일 전 일요일 병원 침상에서 저랑 바둑을 세판이나 두실 정도였으니까요. 아버지 식욕이 뚝 떨어진 마지막 1주일 간 우리는 무척 긴장했습니다. 영면 하루전 날 새벽, 저는 광주로 출장가는 기차에서 간호원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맥박이 급해지고 호흡이 곤란해지며 의식을 잃어가시는데 어찌할 거냐고 묻더군요. 간이 산소호흡기를 장착하라고 해두고 급히 아버지 곁으로 돌아 왔습니다. 평상시에 아버지는 "품위있게 죽는 게 제일 중요하다. 웬만하면 인공호흡기는 쓰지 마라."고 했거든요. 몇 시간 후에 의식이 돌아 오자 아버지가 인공호흡기를 떼라고 그러시데요. 그 때 자식들과 지인들에게 유언을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에게 잘 가시라고 담담하게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우리를 낳아서 이렇게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해요. 잘 가세요. 저 세상에 가시더라도 우리 후생들 잘 보살펴 주세요. 항상 고마웠어요." "애들 많이 썼다. 잘들 살아라. 부디 화목하게 지내거라." 죽음을 목전에 두고 편하게 부모자식이 인사를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다음 날 오후 2시 30분쯤 해외에서 돌아 온 자식들과 후손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한 얼굴로 영면하셨습니다. 그 시각부터 준비하여 33시간 안에 장례식을 모두 마친다는 게 참 대단한 일이더군요. 제가 지휘하여 동생들에게 역할을 분담시키고 현대 아산병원에 빈소를 차렸습니다. 이틀간 1,200명의 조문객이 150평의 장례식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우리 5형제와 매제를 포함한 6명은 장례 기간 내내 문상객을 맞이하느라 몹시 바빴습니다. 이틀 째 되는 날 오후에는 무릎과 허리가 몹시 아팠지만 밀려드는 문생객 때문에 꾀부릴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문상객들 식사대접하는 접빈장에는 거의 나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문상 오신 여러분들께 결례를 한 듯 같아 지금이나마 송구한 마음을 전합니다.   장례식 중 기억에 남는 분 들은 아버지의 지인들이셨습니다. 성균관 儒林에서, 그리고 저희 瑞興 金家 門中에서 오신 어른들이 살아 생전 아버지가 남긴 공덕을 기리시며 어깨를 떨며 오열하곤 했습니다. 그 때마다 숙연해진 우리에게는 아버지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보였습니다. 전남 나주군 노안면 금안리 선영에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호남 3대 반촌중 하나라는 곳입니다. 제 11대조 이래 그 마을에서 280년을 살아 왔습니다. 나주 평야가 온전히 내려다 보이고 멀리 무등산을 안산으로 마주한 곳입니다. 선산 자락에는 아버지가 젊어서 부치시던 문중답이 내려다 보입니다. 이제 겨울이 오면 묘소 가까이 군집한 시누대 무더기들이 눈더미를 뒤집어 쓰고 서걱서걱 소리를 내면서 아버지랑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겠지요. 따스한 늦가을, 120명이나 되는 분들이 장지를 지키며 아버지의 하관식을 지켜 보았습니다. 수많은 일고 51회 동기 여러분이 장례식장에 찾아와 저를 위로했습니다. 또 형편이 안되는 이들은 다른 방편으로 제게 힘내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우선 홈페이지를 통해서 지극히 감사한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哀子 金兌龍 拜上

서경석 2010-12-01 07:45	고생 많이 하셨네. 딱히 사용해야할 문귀는 지식이 짧아 못하네만 자네의 지극정성은 선친께서도 익히 아시어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리라 믿네. 돌아서서 어머님의 간호에 열중해야 할 일이 남아 참 마음이 아프겠지만 좀 더 힘을 내시게나.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 일세.

박하석 2010-12-01 08:39	남자는 나이 40이 되어야 아버지를 이해한다고 배웠네. 아버지와 이별하고 1년이 지나서야 그냥 엉엉 울었다네, 나는. 그것도 이미 16년 전의 일이라네. 고인의 명복을 함께 기원하네.

김상순 2010-12-02 00:42	슬픔 속에 풍겨져 나오는 깊은 인생의 의미가 있습니다. 치열한 삶 가운데 가족사의 훈훈함을 읽습니다. 나름 효도를 다한 후손들의 사랑이 선친께서 하늘나라에서 더욱 편안해 하실거네. 손자들의 듬직함이 눈에 밝히 들어 오던데, 어찌 홀로 가셨는고. 힘내시게, 어머님과 식솔들이 있잖는가.

최준영 2010-12-02 21:57	일이 여러가지로 겹치는 바람에 장례식에 못가봐서 미안하다. 네 말처럼 정말 품위있는 삶을 사셨고 마지막 가시는 길도 그러셨구나. 어머니마저 아프시다니 안타깝다. 너같은 효자를 두어 두분 모두 행복한 말년을 보내셨고, 또 보내고 계시는구나. 선친의 명복을 빌며, 혼자 남으신 어머니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란다.

배민영 2010-12-04 07:35	최근에 본책중 상실은 있어도  상처는 없다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보내며 ) 말이 생각난다 난 꿈속에서 생전의  아버님 모습을 자주 만났는데 꿈  깨면 얼마나 허무했던지 , 지금은 덜하지만 ....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기성 2010-12-04 11:20	자네 보스톤마라톤 뛰러갔을 때 동행하셔갖고 동부지역 삼림지대를 지나면서 "근디 자몽이랑 오렌지는 어디서 키운다냐?" 하셨다던 이야기가 나에겐 베스트셀러로 남아있네. 부디 좋은 데로 가셨기를...

김영주 2010-12-10 12:41	빈소에 못가서 미안하네.  참 열심히 사시고 진지하게 사셨구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항쉬범탁 2011-01-07 10:47	태룡아 네 글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다시 생각하게 했으며..형제간 우애를 다지게 하는 구나!!! 특히 아래 대목이 감동이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에게 잘 가시라고 담담하게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우리를 낳아서 이렇게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해요. 잘 가세요. 저 세상에 가시더라도 우리 후생들 잘 보살펴 주세요. 항상 고마웠어요." "애들 많이 썼다. 잘들 살아라. 부디 화목하게 지내거라." 죽음을 목전에 두고 편하게 부모자식이 인사를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이제 남은 우리들이 더욱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책무라고 생각한다…수고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