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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자앙 보살~
남도의 움트는 봄기운을 몸으로 느끼고 돌아온지 며칠만에 폭설이 내렸습니다. 선운사 뒷동산에 흐벅히 벌어진 동백꽃 위에도, 그리고 승주 선암사의 200년된 고목에서 피어나 암향을 날리고 있을 고고한 매화 꽃송이 위에도 이눈이 내려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어지러운 세상, 이 눈이라도 퍼부어 하얀색으로 정화되고 나니 생활고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잠시나마 환하게 피어 납니다. 저는 이 눈이 지장보살님의 원력에서 피어난 조화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 고창 선운사를 안고 있는 도솔산 마루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는 지장보살님을 뵈옵게 된 것은 제 일생의 큰 행운중 하나입니다. 수덕사의 <선이야기> 카페(http://cafe.daum.net/zenmind)에서 운영하는 참선여행에 동참하여 제현스님의 안내를 받아 찾아뵌 지장보살님은 저를 여러번 감동시키셨습니다. 우선 지장보살님이 앉아 계신 곳의 경관이 너무나 수려했습니다. 제가 그간 여러 절집을 돌아 봤는데 이처럼 좋은 곳은 흔치 않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상중의 하나인 지장보살님의 자태며 맵시는 또 어떠신지요. 화려하면서도 단정하고, 고려시대 불상답게 장식과 치장이 아주 세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파란 두건을 쓰신 이마 아래로 흐르는 얼굴선에는 자비심이 넘칩니다. 원래 지장보살은 부처님을 보필하시면서 중생을 돌보다가 "부처님, 이 세상 중생들을 마지막까지 제도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악업을 짓고 죽은 후 헤어나지 못하는 영혼을 구제한다기에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보통 명부전에 모셔 두고 있지요. 비내리는 내소사 법당에서 삼백이십사배를 올리고 저녁공양을 마친 우리가 지장보살님 앞에 선 것은 저녁 8시였습니다. 격식에 따라 예불을 마친 일행은 스님의 지도하에 "지자앙보사알~"을 염송하며 참배를 시작했습니다. 백배,이백배,오백배.... 무릎이 아프고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땀이 비오듯 떨어지고 눈이 가물거립니다. 그러나 목탁을 치시는 스님은 가사자락을 날리며 학처럼 참배를 계속합니다. 숨이 가쁠 때마다 내공이 실려 있는 스님의 목탁소리에 힘을 얻습니다. 어쩔 때는 그 목탁소리가 등줄기를 타고 정수리에 "탁,탁"하고 박히는 느낌이 납니다. 정신이 아득한 가운데 스님의 법문을 생각합니다. "오늘의 참 너를 돌아 봐라.그리고 참회하라.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놔 버려라. 한걸음 떨어져서 너 자신을 보라. 너와 나는 본래 하나다. 네가 가진 것을 이웃에 돌려주어라." 지장보살, 지자~앙 보살~. 무언가 간절한 마음이 솟구칩니다. 이 혼탁한 세상, 빚을 못 갚는신용불량자만 400만. 자식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어미들, 지난해에만 50명이 넘는 사람이 지하철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밤에는 또 누가 죽음을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있을까요? 이제 낼모레면 내나이 오십, 공자는 오십이면 지천명한다고 했습니다. 자기한계를 명확히 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지금 해내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절박한 나이지요. 아, 지자앙 보사알~, 세상사 이러저러한 일에 자책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내가 이 세상에 무언가 쓸만한 일을 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좋든 싫든 6자회담의 성과가, 그리고 이번의 총선의 결과는 우리 민초들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이 염원이, 이 간절한 기도가 내일의 나를 다스리는 매가 되도록 해 주십시오. 다시 천배, 천백배.... 가물거리는 눈을 들어보니 너무나도 잘 생기신 지장보살이 흐릿하게 시야에 잡힙니다. 이제는 절을 반사적으로 합니다. 기도도, 소망도 없습니다. 그저 무념무상, 단지 나는 절을 할 뿐입니다. 그날 밤과 다음날 새벽 예불까지 대략 세시간쯤 참배를 드린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기도란 마음의 때를 씻는 카타르시스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제법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동학접주 손화중이가 배꼽에 감춰둔 비결을 빼 갔다는 마애미륵불을 보러갔습니다. 이 산 이름이 도솔산이니 먼훗날 세상을 건진다는 미륵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마애불은 지장보살이 모셔진 내원궁 돌계단 아래 서편에 있었습니다. 크기는 13m로 장대하지만 부조를 다룬 솜씨는 다소 거칠어 보입니다. 백제시대에 조성되었다고는 하지만 정확한 내역은 모릅니다. 백제에 관한한 우리나라에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이 지역 일대에 미륵신앙이 성행하였고, 동학도 또 다른 미륵을 기다리다 지친 농민들이 일으킨 운동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미륵보살 배꼽에서 빼갔다는 비결이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간절한 바램, 그 자체였습니다. 이 허무와 좌절의 고장에 원전폐기물처리장 문제와 새만금 방조제 문제는 또다른 갈등과 고통을 몰고 왔습니다. 그 현장을 돌아보는 가슴 한켠에 찬바람이 허허로이 쓸고 지나갑니다. 지장보살님, 이제 우리는 돈으로 행복이 채워지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 땅에 평화를, 그리고 고통받는 민초대중의 가슴에 따뜻하고 넉넉한 기운을 주십시오. 새봄에 피울 꽃과 이파리를 위해 물을 잔뜩 머금은 남도의 초목을 뒤로 하고 귀경길에 올랐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도반들과 나누는 소주잔에는 일박이일 기도 후에 얻은 기쁨과 보람이 찰랑거렸습니다. 다들 성불하시기 바랍니다.()()() 검불 김태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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