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군(酒君)의 쪽배 / 야봉 

 
암울한 우주 
바람도 잠든 들녘에서
내 가여운 주군의 미친 전쟁은 시작되었어.
 
주군의 검광은 저쪽 우주의 끝을 향해 하얀 선을 긋고
가난한 쪽배는 출항의 설레임으로
아낙의 들뜬 젖가슴인양 
술잔속에 일렁였지.

시퍼런 검날아래
정녕 허망한 것들이 잔인하게 살육되어
술잔에 흉물스레 비명성을 토하고

오랫동안 앙금처럼 남아있는 가식의 염불과 기도문들이 
뱃전에 머리를 통타당하고 
처음 그대로 순백의 처녀성을 파괴당한 채
대숲에서 울먹이던 울누나의 흐느낌처럼
해빙의 열락을 승인하였어.

쪽배에서 조용히 치켜든 검
육신과 영혼의 아픔으로 
검은 신명나게 춤추기를 원했지.
“내 할배는 광대인가베, 내 할미는 무당인가베, 사랑해”
칼바람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쪽배는 저항할 수 없는 흡인력에 빨려 
소용돌이의 저편 끝으로 침전되어 내려갔어.

한잔 술의 의미와 그 사념의 공간을 넘어 
마침내 도착한 그 곳 
오~! 낯설지 않는 첫경험이여!
끝에선 
은은히 들려오는 깃발들의 노래
부질없음과 부질있음이 서로 손잡고 강강수월래
유심과 유물이 서로 손잡고 강강수월래
모든 하찮은 대립과 공존이 서로 손잡고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누구인가?
우리에게 잊혀진 노래를 들려주고
쪽배의 아픔을 깨닫게 해준 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