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밀양]? 이창동감독의 [오아시스]
저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제가 본 최고의 영화로 다섯 손가락에 꼽습니다. 그러나 그의 [오아시스]에 조금 실망했고, 그가 노무현정부의 '문화부장관'으로 보여준 모습에서 실망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도 그의 [박하사탕]에 대한 존경을 잊지 않고 있기에, 이번 영화[밀양]을 꼭 보려고 합니다. 2002년 8월에 상영했던 이창동감독의 [오아시스]이야기를 올립니다. ***************** # 장애인 사랑의 서글픈 [오아시스] 사노라면 여러 가지 난처한 일이 있다. 칭찬을 거듭하였는데 실망스런 모습을 보았을 때가 그 하나이다. 물론 거꾸로 나쁘게 보았는데 괜찮은 모습을 보았을 때도 그렇다.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낭패감도 낭패감이려니와, 인간관계로 낯뜨거움이 더 크다.  이창동 감독을 얼굴 맞대고 만난 적이 없으니 인간관계로 낯뜨거움은 없다.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내가 [박하사탕]에 홀라당 반해서 2-3년 동안 이창동님을 얼마나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고 다녔는가! 속으론 그에게 질투가 불끈 치솟기도 하였다. 그러나 [박하사탕]을 도저히 질투할 수가 없었다. 무릎 꿇고 경배하였다. [이웃집 토토로]만큼이나. 이번 [오아시스]를 잔뜩 기대하였다. 기대가 너무 컸나? [박하사탕]에게 치였나? 침이 마르도록 추켜 올린 찬양에 많이 미치지 못하니, 누가 손가락질 하진 않았어도 여간 쑥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별 볼 일없는 영화는 아니다. 별 볼 일 있다. 무엇보다 문소리가 장애인을 연기하는 모습은 눈물겹다. [어둠 속의 댄서]의 여주인공에 비해서 처참한 이미지가 덜 배어있어 보인다. 그 장애인의 깊은 설움이 몸서리치게 다가오지 않아 화면 안으로 쪼옥 빨려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정말 대단하다. 설경구의 변신도 참 좋았다. [박하사탕]의 연기에서 탄성이 절로 나오게 연기를 잘 했었는데, 그 다음 영화들에서 그 울타리를 벗지 못해서 조금 실망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어수선한 성격 파탄을 보이면서도 밑바닥에 순박함을 보이는 ‘엉겹결에 전과 3범’의 역할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쪼옥 배어들었다. 쾡하게 상해버린 얼굴의 창백한 꾀죄죄함에 불안정한 표정과 몸짓. 역시 그는 범상한 배우가 아니다. 이창동 감독의 까다로운 요구가 크게 한 몫 하였겠지만, 그 까다로운 요구에 입맛을 맞추어낸 그들의 재능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 나머지도 별 볼 일이 없는 건 아니고, 별 볼 일은 있으나 그리 돋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가 어색했다. 그 전반적인 어색함과 별 볼 일은 있으나 그리 돋보이지 않음 때문에, 나는 [오아시스]를 [박하사탕]보다 훨씬 못하다고 보고 [초록 물고기]보다도 못하다고 본다. 그가 너무 욕심을 부린 것 같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뭔가를 굳이 외쳐 말하고 싶어하는 억지가 느껴진다. 마음가짐에서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그런 ‘상식에서 너무 벗어난 사랑’을 상정하는 자체에서 더 큰 문제가 있었을지 않을까 싶다. 그는 가난한 사람 · 버림받은 사람 · 어둠으로 몰린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고 싶어하는 ‘원초적 본능’을 가진 것 같다. 나는 그의 지극한 원초적 본능에서 배어 나온 섬세한 감각과 짜임새 있는 터치를 존경하지만, 이번엔 오바한 걸로 보인다. ***** 그가 오바한 이유를 짐작해 보기에 앞서서, 내가 만난 가난 · 버림 · 어둠을 대하는 태도를 말해 보겠다. 나는 서른 살이 고개를 넘어갈 때까지는 추접스러울 정도로 가난했고, 불우한 가정과 불량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리고 돈 없고 빽 없고 처세에 약해서 ‘보따리 장사’를 무려 십 몇 년이나 하였다. 마흔 살이 되도록, 먼지 펄펄 나게 초라하긴 했어도 개기름 번질거리듯 추하진 않았다. 소나무처럼 겨울에도 당차고 꿋꿋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세상이 너무 몰인정하고 비겁하고 교활했다. 세상에 넘쳐흐르는 탐욕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나는 가난했고 버림받았고 어둠으로 내몰렸다.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박하사탕]의 설경구가 “나 돌아갈래”하며 절규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나’를 보았던 것이다. 그의 삶이 한 발짝 헛디디면서 빗나가는 그 모습이 가슴을 에이며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내가 가난한 이웃 · 버림받은 이웃 · 어둠에 몰린 이웃을 무턱대고 따뜻하게 대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왜 그런지 세월이 갈수록 그런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내 배가 따땃해져서 일까? 아직은 아니다.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힘든 사람이 있다. 해도 해도 너무하게 나쁜 사람이 있다. 예전에 내가 그들에게 품은 무턱댄 애정이 어리석어 보인다. 얼마쯤 “맘씨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조작된 강박관념’도 있었고, 종교와 국가가 손잡고 벌인 ‘음흉한 의도’에 놀아난 점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가난 ` 버림 ` 어둠에 빠진 그들을 감싸는 모습이 무조건일 때는, 나는 그 헌신적인 사랑에 경외감에 앞서서 위선과 허영을 느낀다.( 참되게 헌신적인 사랑이 있기도 하겠지만 드물고 드물다. 드물고 드문 걸 자꾸 찬양하며 강조하는 건, 한 쪽으로 그걸 모범으로 삼거나 흉내내어서 사회가 그나마 조금은 순화되었으면 하는 사려 깊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 어둠을 적당히 무마하려는 위선이나 자기를 좋은 사람이라고 확인하고픈 허영이 더 많다고 본다. ) 그래서 주변에서 보이는 ‘값싼 동정’하는 모습에 꼭 흐뭇해하지만은 않는다.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부당한 폭압구조에 분노하고, 사회구조적으로 저질러지는 기득권 챙기기 억압구조를 비난한다. 그러면서 서민 노동자 민중이라는 추상적인 구호를 외친다. 사회구조적으로 살피다보니, 귀족과 서민 ·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하는 건 이해되지만, 그 개념을 현실의 삶에 옮기면서도 추상적이고 맹목적인 구호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거기에 이념적 강요와 경직된 노선으로 허황한 먹물의 껍데기나 맹목을 본다. *****  [오아시스]에서 이창동님이 보인 오바는 좀 다르다. 가난한 사람 · 버림받은 사람 · 어둠에 몰린 사람을 상당히 리얼하게 알고 있는 센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박하사탕]에서는 몸소 지극한 고통과 슬픔을 뽑아내었지만, 장애인과 전과범의 슬픔과 고통은 깊이 흡수해내지 못하였다. 그 틈에서 벌어진 오바-페이스가 나를 그 영화에 빠져들지 못하게 한 것 같다. 장애인과 전과범을 무조건 감싸는 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이 그들에게 갖는 거부감을 좀더 리얼하게 녹여냈어야 했다. 주인공을 일방적으로 미화하고 주변사람을 일방적으로 나쁜 놈으로 몰아치는 구도가, 그 주인공들의 처참한 슬픔과 고통을 오히려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고 본다. 그들 주변의 보통 사람들은 위선과 허영이 거의 없다. 그저 생활 속에서 그들이 몹시 불편할 따름이다. 쨘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불편함에 신경질 나고 화가 버럭 나는 것이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평생을 주변에서 맴돌며 틈만 나면 문제만 일으키니, 생활 속에 같이 병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 나쁠 것도 없고 그리 좋을 것도 없이, 맨나 그렇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일 따름이다. 그걸 이창동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오바해서 끌고 간 것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까, 상식적인 상황에서 반짝이는 진주알을 찾아내지 못한다. 극단적인 소재로 지나친 상황설정을 하여 그들을 지나치게 감싸 안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처참함 슬픔이 겉돌아 버린 것이다. 그들 주변의 보통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좋은 사람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나쁜 사람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매어서 그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일 따름이다. 거기에 너무 거창하게 ‘사랑’이라는 이념을 심어, 우리에게 ‘감상적 슬픔’을 강요하고 의도적으로 훈계하려는 억지를 느끼게 한 것이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의 지극한 원초적 본능에서 배어 나온 섬세한 감각과 짜임새 있는 터치를 믿기 때문에, 또 다음을 기다린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