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Reader] 케이트 윈슬렛의 은은하게 숙성된 연기력

책을 읽어주는 남자.  우연히 만난 엄마뻘 중년여자와 육체를 불태우는 16살 사춘기 머슴애가 짬짬이 책을 읽어준다.  관객을 낚으려고 홍보물에 야한 에로장면 15분이라고 선동하지만, 청소년을 노리개 삼아 노는 음탕한 중년여성의 꿀꿀한 불륜이 아니라, 누나와 동생처럼 서로 따스하게 애틋하고 아련한 사랑으로 그려간다.  여기에 독일 戰犯의 재판에 法理를 진지하게 생각케 하는 무게감까지 곁들여져 있다.

[타이타닉]의 그 풋풋한 케이트 윈슬렛이 이젠 나이 지긋한 중년이 되었다.  화사한 미모와 몸매가 많이 삭아들었지만, 시들어 간다기보다는 숙성되어 가는 쪽이다.  [타이타닉]에선 연기력을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여기에선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연기력을 뽐낸다기보다는 사소한 표정과 몸짓에까지 영화의 분위기를 은은하고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매우 숙성된 연기였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어~! 연기가 많이 되네?” 했지만, 이렇게까지 숙성된 연기를 보여줄 역량을 갖춘 지는 미처 몰랐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고도 남겠다.  장차 메릴 스트립에 버금갈 카리스마를 보여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를 해 본다.  참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영화가 중간을 넘어설 무렵부터 세 군데에 구멍이 뚫려서 ‘좋다가 김샌 영화’가 되었다.  감독의 역량이 제법 괜찮지만 여기저기서 조금씩 딸린다.  대중재미 B0 · 영화기술 B0 · 삶의 숙성 B+.  그러나 케이트 윈슬렛의 튀지 않고 은은하게 숙성된 연기력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본전은 뽑았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7457&videoId=20731

 

* [번 애프터 리딩] 서릿발 같은 블랙 코메디

코엔 형제 감독의 [Fargo]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는 듯한 돌발하는 폭력으로 핏빛 낭자한 리얼러티에 진저리쳤다.  그럼에도 막상 그의 이름을 만나면 주춤주춤 끌려 들어가게 된다.  이번엔 블랙 코메디란다.  비록 쌉쌀할지라도 그래도 코메디니까 그 핏빛 낭자한 폭력은 없지 않겠나?  더구나 조지 클루니 · 브래드 피트 · 존 말코비치가 나온다니 더 더욱 안 볼 수가 없다.  이들 연기력이 좋아서 어떤 역할을 맡겨도 잘 해내겠지만, 이런 블랙 코메디에서는 어떠할까 궁금했다.

조지 클루니는 부드러운 친숙함에 반듯한 카리스마, 브래드 피트는 깡다구서린 반항아에 천진난만한 개구쟁이, 존 말코비치는 날카로운 두뇌회전에 야멸찬 자기 확신이라는 복합적인 이미지로 한 끝발 날리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이토록 단단한 캐릭터를 갖춘 역량있는 배우들이, 이 ‘블랙 코메디’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에 맞추어서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본다는 게 여간 재미있지 않다.  게다가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틸다 스윈튼이 보여주는 숙성 깊은 연기력이 이 남자들의 망가지는 모습을 더욱 맛있게 북돋아준다.  모두들 연기력이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특히 브래드 피트가 여전히 싱싱한 젊음을 뿜어내면서 살짝 띨띨하게 망가지는 모습이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짜식!  그렇잖아도 부러움에 지쳐 얄미운데, 그의 모든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다섯 배우들의 물오른 연기만으로도 본전을 뽑고도 남겠다.  긍께 유명배우 왕창 출연에 낚여도, 아무런 후회 없단 말씀!  왕창 Good *^o^*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은 대중재미 A0 ·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대중재미 B0 ( 영화기술 A0 ` 삶의 숙성 A0 )

다행히도 돌발하는 폭력으로 낭자한 핏빛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 코믹에 숨겨진 쌉쌀한 뒷맛에는 피식 쓴웃음에 그치지 않고 싸늘한 서릿발 같은 매서움이 서려있다.  돈에 찌들어가는 미국사회의 짙은 어둠, 미국사회의 일부분에서 자행된 뒤틀림이 아니라, 미국사회 전체가 구조적으로 뒤틀려서 평범한 시민의 시시콜콜한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모습이 일상생활에 암암리에 스며들어 있다면, 이 얼마나 섬뜩한 세상이겠나!  너무나 사소한 일이 우연에 우연이 꼬릴 물고서 어처구니없는 폭풍을 몰아온다.  도시 자체가 이미 죄악의 원천이요, 그 도시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죄악의 나비효과는 소용돌이치며 더욱 사악해지고 깊어진다.

“미국사회의 어느 한 단면만을 지나치게 과장한 게 아닐까?  아니다.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런 비유와 풍자로 그토록 신랄하게 비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돈에 환장한 우리 사회는?  [추격자] [공공의 적] [바르게 살자] [하얀 거탑]이 지금 우리의 시대상을 대표할 수 있을까?”  그 내용을, 재미있어 하든 재미없어 하든,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시대상을 대표할 수 있어야 일단 좋은 영화가 될 자격을 갖게 된다.  난 미국사회를 몸소 경험한 적이 없어서, 코엔 형제의 영화가 미국의 시대상을 제대로 대표하는지 못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돈이 설치는 세상에서 코엔 형제가 말하려는 메시지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어느 보안관이 중얼거린다.  “문제는 돈과 마약이야!  20년 전에 누군가가 이런 세상이 온다고 말했다면, 난 결코 믿지 않았을 꺼야!”  돈 때문에 지난 20년 사이에 이토록 험악한 세상이 되었다면, 앞으로 20년 뒤엔 어찌 될까?  상상 밖이겠지만, 상상하기도 싫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4493&videoId=20799

* 뱀발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No country for Old men]를 직역한 것인데, 이 말 자체가 무슨 뜻인지 아리송할 뿐만 아니라, 영화내용과도 무슨 상관없어 보여서 어리둥절하다. 영화내용에 맞추어 생각해 보았다. 베테랑 보안관인 토미 리 존스가 범인을 쫓다가 번번이 놓치면서 그 무력감에 자기 인생을 悔恨하는 것과 관련된 제목인 듯하다. 윗 글에서 어느 보안관이 중얼거리는 대사와 밀접하다.  Old men을 나이 지긋한 베테랑으로 보고, No country는 “무언가를 향한 희망으로 열심히 살아온 게 헛되다”는 어감이 담겼다고 보아야겠다. 여기에 이런저런 어감을 담아 다양하게 풀이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말하면, “아무리 악당놈들을 잡아 넣어도, 더 악랄한 놈들이 더욱 설쳐대니,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구만! 아휴, 한숨 놓고 살만 한 세상은 언제쯤일까?”는 뜻이겠다. 이런 뜻을 담아 여러분이 제목을 다시 만들어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