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문집'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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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껌둥이
작성일 2015-10-22 (목)
ㆍ추천: 0  ㆍ조회: 1417      
http://ilgo51.net/cafe/?zmunjib.279.12
“ 일고 51회 동문 데모 회상기 1탄-1974.10.21 ”
1974년 10월, 유신체제 반대 교내 시위 사건(50회 주동, 51회 참여)

1974년 10월 21일, 당시 3학년이었던 광주일고 50회 30여명이 넘는 동문들이 주축이 되고 51회 동문까지 광범위하게 참여한 교내시위가 벌어졌다. 그날 운동장에 운집한 일천여명이 넘는 학생들은 ‘유신헌법 철폐󰡑,󰡐구속학생 석방󰡑,󰡐군사독재 물러가라󰡑,󰡐언론자유 보장하라󰡑의 5가지 구호를 외치면서 대열을 형성했다. 학생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시위진압용 차량을 앞세운 경찰들과 정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 학생들이 가두로 나가기 위해 스크럼을 짜고 정문으로 몰려들자 선생님이 교문에 매달리는 등 적극적으로 저지하여 정문돌파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자 대열의 후미에 있던 학생들이 나무로 만들어진 후문을 부수기 위해 갑자기 뒤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뛰어나갔다. 수십명의 학생들이 밀어부치자 나무로 만들어진 문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숴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예기치 않는 후문공격에 놀란 경찰이 교문 밑으로 사과탄을 밀어 넣었다. 교문 밑으로 굴러들어 온 ‘사과탄’이 ‘뻥’하고 큰소리를 내고 터지면서 안개처럼 최루가스가 퍼지자 문을 밀어부치던 학생들이 놀라 코를 쥐고 뒤로 물러났다. 최루탄이라고는 생전 처음 겪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학생들은 더 이상 문밖으로 나갈 엄두는 내지 못하고 연단에 올라 한참동안 성토대회를 열고 학생독립운동기념탑 앞에서 성명서를 낭독한 후 시위를 끝내고 교실로 들어갔다. 당시는 시위에 경찰들이 최루탄을 함부로 발사하지 않았다. 최루탄을 쏘기 전에 먼저 소리는 요란하지만 가스량이 적은 ‘사과탄’을 터트렸다. 당시 시위를 주도한 학생은 50회 지병주, 이항규, 정경연, 김상집이었으나 지병주와 이항규가 경찰서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훈방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지병주 외 몇 명은 무기정학 조치를 받았다.
이름아이콘 껌둥이
2015-10-22 15:55
엊그제 신재형이가 우리 21회가 3년동안 데모를 5번 했다고 했던가?
그래서 예전에 써놓은 글이 있어서 연재를 해보려고 하네.
일단 1탄 올리네. 옛날 생각이 날걸쎄.
   
이름아이콘 정정호
2016-03-03 13:47
워메~! 고마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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