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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생활

 

 

 

작성자 김태룡
작성일 2004-05-25 (화)
ㆍ추천: 0  ㆍ조회: 2191   
보스톤 마라톤 여행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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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mbule의
보스톤 마라톤 여행기 4



지옥의 레이스를 마치고  














12시 정각,
드디어 출발 선상에 섰다.

지금 기온이 28도인데
2시쯤에는 30도를 훌쩍 넘을 거라고 한다.

내 배번은 9002번이다.
모든 배번은 참가자가 미리 신고한 기록별로 주어지고,
출발 순서도 배번에 따라서 결정된다.
다만 모든 참가자가 신발에 개별 정보가 입력된
전자 계측 칩을 달고 뛰기 때문에
늦게 출발한다고 해서 손해 보는 일은 없다.
축포가 터지고, 비행기의 축하쇼가 벌어지면서 2차선
도로를 꽉 메운 달림이들이 무리를 지어 내닫기 시작한다.

늘 그렇지만 풀코스의
스타트 라인에 서면 가볍게 흥분이 된다.
완주할 수 있을까,
얼마나 지독하게 시달린 끝에 피니쉬라인을 밟을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달려 나간다.

10Km 정도를 달려 나가는 동안 연도에 몰려 나온
지역주민들이 응원 부대가 되어 손을 흔들고 함성을 질러댄다.
그런데 몸이 좀 가볍지가 않다.
아무래도 고전할 것 같다.
15Km 지점의 물 보급대에서 물을 받은 후 서서 마셨다.

내가 마라톤 시합에 나가 서서
물을 마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단 일초라도 앞당기려고 절대로 걷거나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원칙인데,
오늘은 아무래도 장기전에 대비해야 할 것 같다.
이미 18Km 지점부터 단전에 힘이 더 이상 없는 것 같다.
다리가 탄력을 잃고 터벅거리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그저 앞으로만 가기로 했다.
잘하겠다는 생각 자체도 지워버리기로 했다.
Half 통과지점을 1시간 48분에 지났다.
1Km당 5분 남짓 걸렸다.
국내 대회 기록에 비하면 좀 나쁜 편이다.
레이스를 더 진행해 나가면서 체력이 급격히 소진된다.
거의 1Km 간격으로 배치된 물 보급대마다
멈춰 찬물로 목을 축이거나 머리에 뒤집어 써 보지만
앞으로 뛸 일이 심란하다.

마침내 길 한 쪽으로 비켜나 무릎을 꿇었다.
다리가 쥐나는 것을 막고 장딴지와 관절에 쌓인
젖산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30초씩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가 다시 출발한다.
다시 일어나 가속을 붙인다는 것이 고통스럽다.

수많은 달림이가 나를 추월한다.
그들 중에는 멋쟁이 아가씨들이 많았다.
언뜻보니 키가 180Cm쯤 되는 쌍둥이 금발 미녀가
빨간색 비키니 복장으로 나란히 달린다.
정말 예쁜 애들이었다.
그리 빨리 뛰지도 않는다.
걔들과 나란히 달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 다리는
이미 풀렸는지 더 이상 따라 잡지 못한다.
동네 소방서 앞을 지나면 소방호스가 물폭포를 만들어 준다.
한참을 뒤집어 쓰고 있다가 다시 출발한다.
이제 1Km를 6분 40초 쯤에 뛰는 것 같다.
한심한 속도다.

정신이 가물거리는 가운데 내가 감동받은 것은
연도에 늘어선 주민들의 엄청난 응원 열기와 진심어린 성원이었다.
서너살 꼬맹이부터 90넘은 노인들까지 모두 나와서 외친다.


“Go, Go ahead! You can got it!”

이들은 지친 달림이들에게
손바닥을 내밀어 부딪히게 해 준다.
이빨빠진 꼬맹이들이 손에 손마다 오렌지 조각이나 캔디를 들고
꼭 받아가 달라고 애처롭게 외쳐댄다.
인터넷 보도에 따르면 70만
보스톤 인구중 50만이 연도에 늘어섰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감동이었다.
레이스 중반전에서 일찌감치 탈진되었던
내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응원에 힘입은 바 크다.

시내 구간에 들어 와서 마지막 7Km를 달려보려고
용을 쓰다 보니 단전이 째지는 듯이 아프다.
지금 내겐 달리는 일이 슬플 뿐이다.
이 정도로 힘이 빠진다면 어떤 정신적인 각성도
나를 온전하게 붙들지 못한다.
지금 나는 정신적인 미숙아이며,
육체가 느끼는 대로 그저 헤매고 있는 탈진한 짐승일 뿐이다.
새삼 궁금해진다.
곡기를 거의 끊은 채 육체적인 고통을
해탈에 이르는 동반자라고 하면서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끝없이 고행을 거듭하는 선승들,
티벳의 수도승들,
그리고 요가의 고수인 요기들….
그들은 누구인가?
그런데 나는 왜 이럴까?
인간의 차이란 이렇게 크고 넓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 차별을 인정하자.
그리고 거기서 또 시작해 보자.

마침내 피니쉬라인을 통과했다.
4시간 19분대, 17,950명중 9,395위.
내 백분율 순위가 3%쯤 뒤로 밀렸다.
그렇게 보면
오늘 나만 절망적으로 못 뛴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 웬수 같은 마라톤을
계속할 것인지 징그러운 생각이 든다.


칩을 반납하고 완주메달을 받아 오는
건물 귀퉁이에 김민영 선배님네 형수님과 따님이
미리 연락을 받고 환영나와 있다.
형수님이 사주신 저녁을 대접받고
돌아오는 찻속에서부터 나는 연신 꼬구라지기 시작한다.
편안한 잠 속으로 잠겨들었다.














글...gumbule
음악...Rialto - Monday Morning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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