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reation
여가생활

 

 

 

ㆍ작성자 김태룡
ㆍ작성일 2005-05-26 (목)
ㆍ추천: 0  ㆍ조회: 4257   
실크로드 여행기6. 살아 생전에 이런 감격을....

 

 

우리가 안내된 첫 동굴은 당나라때 그 지방 절도사 장희조가

고승 홍변스님을 위해서 조성한 16호 굴이다.

홍변 스님은

그 굴 입구에는 홍변스님의 실물 조상이 있는 17호굴이 있는데,

그 굴이 앞서 말한 문서창고 장경동이다.

그 굴에 들어서서 일행들이 후레쉬를 켜던 순간 나는 호흡이 멈출 것 같았다.

“오, 이 우아함, 이 화려함, 이 장엄함!”

나는 천이백년전의 미술품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마치 고구려 고분천장을 연상케 하는 장방형 천장 위에는

중국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까미귀와 토끼가 그려져 있고,

그 천장을 비스듬히 받치면서 내려오는 경사면을 따라

부처님그림들이 기하학적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마치 현대적 문양의 벽지를 두른 듯 단정하면서도 색감이 뛰어나다.

사방의 벽면에는 당시의 풍속을 알 수 있는 출행도니 풍속도가 펼쳐져 있다.

벽 안쪽으로는 큰 방을 따로 파서 석가모니 부처님과 협시보살들을 안치했는데

편안하고 넉넉한 품새가 저절로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

대웅전만큼 큰 동굴에 꽉찬 미술품들이 각기 다른 개성으로 빛을 발하니

환희와 장엄이 넘쳐난다.

밀폐된 데서 오는 팽팽한 긴장감과 엄정함이 나를 압박한다.

 

이 한편의 드라마로서 충분했다.

10년 전에 로마의 바티칸에서 시스틴 성당에 들어섰을 때의 감격과는 또 달랐다.

내가 믿고 따르는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왔기 때문인가,

아니면 1,20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에 압도되었기 때문인가?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내가 살아 생전에 이토록 장엄한 부처님 세계를 친견할 수 있다니…..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굴들을 탐방했다.

AD 300년대 서진시대부터 조성된 굴에는 온갖 역사와 풍속이 기록되어 있다.

275굴에 이르면 마치 서양의 야수파 화가 루오가 그린

<황색예수>를 연상케 하는 화풍이 전개된다.

살구빛을 내는 살색에 섞인 납성분이 변색하여

검은 흙빛이 나는 그림들에서 원시의 건강미가 넘친다.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각종의 飛天상들이다.

맨살의 비천상, 뚱뚱한 남자비천상부터

장구,소고,피리 같은 각종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까지 무척 다양한 모습들이다.

우리나라 에밀레 종, 상원사 동종에 보이는 비천상들이

구리로 주조되어 좀 둔해 보이는 반면,

이곳 막고굴 벽에 물감으로 그려낸 비천상들은 날렵하고 세련된 자태가 한결 곱다. 

이민족과 한족의 문화가 교차하면서

풍성하고 화려한 문화를 만들어 온 흔적이 역력하다.

 

이민족들이 중원의 북부를 장악하면 대개 佛敎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낙양에 있는 龍門石窟이 그 대표적 사례다.

선비족이 집권한 北魏에서는 역대 5명의 황제 모습의 부처님을

엄청나게 커다란 규모로 석굴에 조성함으로써 부처가 곧 황제인 양 받들게 했다.

그러다가 순수 한족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 불교를 탄압하는 법난을 일으키고

유교 중심의 통치철학 통치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를 펴나갔다.

우리가 아는 性理學이란 것도 사실은 오랑캐에 밀린

南宋의 漢族(정호, 정이 형제, 주돈이가 대표)들이 自省運動의 하나로

불교비판을 하기 위한 이론적 전거를 만드는 과정에서 태동시킨 儒學의 한 潮流이다.

 

중국 문화재보호국은 이 대단한 문화유산이 앞으로 훼손되어 절멸할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여러가지 보호 장치를 마련중이다.

우선 관람객의 철저한 통제를 원칙으로 한다.

우리는 학술탐사라는 명분으로 1인당 9만원(이것도 40% 할인된 가격임)씩

아주 비싼 특별관람료를 지불한 반면 중요한 석굴 거의 전부를 볼 수 있었다.

연구원 이야기는 수년 내에 일반인 관람이 불가능해 질 것이라고 한다.

 

석굴을 관람하다 보면 청나라 때 불상들을 잘 못 수리한 결과

볼쌍 사나운 모습이 자주 나온다.

보통 절집의 예술품 중수는 시주를 받아서 처리했는데

청나라때는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서 부처님 두발을 라마식으로

코발트색 물감을 발라버렸다.

그것도 대충처리해 버려서 조악하고 생경하다.

또 몇몇 동굴은 청나라의 힘이 약해졌을 때

중앙아시아를 밀고 들어온 백러시아 병사들이

밥해먹으면서 남긴 그을음이 생생히 남아 있다.

 

 

실크로드는 중원과 한반도 및 일본으로 전파해 내려간 

문화의 생산기지요, 출발점이다.

돈황일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불교문화는 동진을 거듭하여

한반도에 흘러 들었고,우리는 그것을 일본으로 전파해 주었다.

그런데 오늘 날 일본 사람들은 먼 옛날 한반도로부터 한 수 배운 것을

자꾸 부정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말하자면 자기들은 돈황 등에서 문화를 직수입하였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일본인들이 병적일 정도로 집요하게 대륙문화,

특히 실크로드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김민영법사님의 해석이시다.

요새 우리나라의 연속극, 가수들,배우들이

중국에 커다란 신드롬, 즉<韓流>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참 뿌듯한 일이다.

중국의 함양박물관 앞에서 만난 중국청년의 티셔츠에는 한글로

<이영애! 당신이 있어서 세상이 아름답습니다.>라고 씌여 있었다.

 

 

서역의 문화는 동아시아 전역에 넓고 깊게 퍼져 나갔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 보더라도

고구려 벽화의 거의 모든 것(무덤의 내부 형태, 의상 및 복식, 마상 수렵도 등),

각종의 부도나 탑의 양식, 반가사유상, 부처님 고행상, 수월관음도,

성불의 기쁨을 표현한 미소 등 어느 것 하나 영향받지 않은 것이 없는 듯하다.

돈황을 돌아본 후

이제서야 우리문화를 보다 깊이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생이 든다.

돈황을 깊이 연구한 서용교수에 의하면 

동굴예술의 최종 완성점은 경주의 석굴암이라고 한다.

 

한편 돈황의 석굴 사신접견도에 鳥羽冠을 쓴 복식이 몇 개 눈에 띈다.

모자에 새 깃을 꽂은 것은 신라나 고구려 등 한반도에서 온 사신이라고 한다.

전에 이 내용이 정찬주라는 소설가에 의해서 국내 텔레비전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李先 究員은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설명해 준 바 있는데

정찬주씨가 스스로 발견한 것처럼 자랑하고 다닌 것이 섭섭하다고 마뜩찮아 한다.

 

호텔로 돌아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오후 내내 석굴을 관람했다.

체력이 약한 일부 도반들이 동굴 순방 학습에 참여하지 못하고 쳐진다.

정말 징그럽게 많은 굴들을 봤다.

 

막고굴에서 호텔로 오는 길에 비를 만났다.

연간 강수량이 40mm인 사막에서

길이 흥건히 젖을 만큼 내리는 비를 만난다는 것은 여간한 행운이 아니다.

돈황이여 영원하라!

 

 <막고굴 내부 사진이 없어서 섭섭합니다. 나중에 보완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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