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도히
흐르는 황하. 황하를
건너다니던 양가죽 뗏목. 한편에 비켜앉아 돈황 유적을 미리 공부하려고 책을 뒤적이다가 일행중 제일 노장이신 이원장님과 佛敎의 東方 傳播史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광주불교교육원을 운영하시는 분답게 지식과 지혜가 풍부하시다. 우리의 이야기는 불교가 초기의 중국 道敎와 결합되는 과정에 모아졌다. 불교의 핵심교리인 無常,無我는 곧 도교의 無爲와 결합되어 空의 사상을 이루면서 중국사회에 녹아든다. 불교와 도교와의 화합과 배척의 관계는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동양사상의 중심축을 이루게 된다. 우리나라 큰 절에 가보면 七星閣, 三聖閣 같은 道敎의 흔적이 아직도 선연히 남아있다. 이원장님은 화순 운주사에도 부처님과 도교의 道師가 섞여 있는 현상이 나타나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난주로 가는 기차안, 우리 도반들이 지참중인 술병을 돌리게 되자 흥이 도도히 올랐다. 즉석 노래판이 벌어진다. 정승희 도반이 가곡 “봄처녀”를 뽑자 이번에는 임영희 도반이 “아리랑”을 부른다. 서로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불러 흥이 도도히 오르자 같은 칸에 탔던 중국인 아줌마,아저씨, 아예 아래칸의 중국 청년들까지 가세하여 즉석 “한중 친선우호의
무대”가 만들어졌다.
도로 곳곳에 불길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청소원들이 쓰레기를 도로에서 태워버리는 중이다. ‘아이고 이 중국 아저씨들! 눈에 보이는 것만 흉내내서 선진국 되나?.’ 잠시 후에 강가에 도달한 나는 깜짝 놀랐다. 황토지대를 넘어 들어와 사막의 초입에 위치한 난주에 이렇게 큰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폭이 200M는 족히 될 것이다. 강을 가득 메운 황토빛 강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다. 저 흙탕물 緯水는 북쪽으로 방향을 바꾼 후 시안부근에서 맑은물 經水와 만나 나란히 흐르다가 마침내 黃河라는 이름으로 合水된다. 우리말 “經緯가 분명하다.”는 말은 여기서 왔다. 강변에는 한강 유람선의 두배쯤 되어보이는 유람선이 여러 척 있다.
난주시 외곽 산등성이에 커다란 도교 교당들이 여러채 보인다. 중국인들은 거기서 道士의 지도아래 기공이며 호흡,식생을 관리하며 不老長壽를 꿈꾼다. 요즘식으로 보면 웰빙족들인지도 모른다. 1958년에 황토계곡을 막아 만든 유가협댐의 전력생산량이 120만KW라고 하니 대충 우리나라 소양댐의 3분지2 크기다.
쾌속선이 40분을 달려 도착한 병령산은 첩첩산중 절경의 위치를 자랑한다. 티벳말로 10만 부처님이 거주하는 곳이란
뜻이다. 특굴 1개를 보는데 300웬을 내야 했다. 독한 놈들, 되게
비싸네. 비싸더라도 볼 사람은 꼭 볼거라는 “가격차별화” 정책의 묘미를 아는 중국인의 계산속 앞에 어쩔 도리가 없다.
석굴 위에서 본 계곡 병령산 석굴 계곡입구에서
특굴은 석벽 위로 60M 높이에 있다. 사라리를 타고 어렵게 오른 자연동굴에서 내려다 보이는 계곡이 아스라하다. 제법 큰 규모의 동굴은 전면이 크게 개방되어 있다. 천정, 초입부, 안쪽, 주 벽면 동서 쪽 모두 흙으로 빚어진 부처님들이 별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모셔져 있다. 전면의 3尊佛은 허물어져 버리고 약간의 흔적만 남았다. 이 곳에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갓 전래된 불교를 받아들이는 불자들의 수수하고 경건한 마음이 특별한 꾸밈없이 잘 드러나 있다. 古拙한 모습, 자그마한 체구의 아기얼굴 같은 부처님들이 간다라 양식으로 앉거나 서서 1,700년 째 웃고 계신다.
굴은 전면이 터져 있고 온 벽을 둘러가며 부처님을 모셨다.
나는 생각에 잠긴다. 인도에서 파키스탄의 간다라지방, 다시 파미르고원을 넘어 수천Km의 사막과 황무지를 지나 부처님이 동방에 오신 뜻은 어디에 있을까?
첩첩산중 깊은 동굴에서 사람들은 흙으로 부처님을 잘 빚어 놓고 무엇을 기원했을까? 이 동굴에 불사를 한 것은 漢族이 아닌 鮮卑族인 西秦이다. 멀고 먼 초원을 떠나 오아시스를 따라 사막을 건너 中原入城을 꿈꾸다 고단한 마음을 잠시 내려 놓은 것인가?
불교는 인도를 출발해서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모습이 좀 변한다. 亞羅漢이라는 자기 중심의 완성체를 지향하는 小僧佛敎와는 달리, 동쪽으로 방향을 돌린 후에는 大僧佛敎라는 모습을 갖춘다. 參禪修行을 통해 참 나를 찾고, 다시 그 나를 내 이웃에 완전히 되돌려 주는 데서 自我의 완성점인 無我에 이르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上求菩提하고 下化衆生하는 菩薩行을 인생의 지향점으로 삼는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현재 한국의 선불교가 부처님의 뜻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한다.
그럼 나는 어떤가? 시방 내가 菩薩行을 하는 삶을 착실히 지키고 있나?
1,700년의 시간을 타고 넘어와 병령산 석굴 안에서 화장기 없는 부처님의 맨얼굴을 바라보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나에게 묻고 있다.
(중국에서는 公元 420년이라 부른다. AD는 Anno Domini= in the year of our Lord. BC는 Before Christ의 머릿글인 바, 적정한 역사표기 방식인지에 대해서 최근 논란이 크다.)에 불사를 했다는 기록이 벽면에 남아 있다. 이것이 중국의 벽화에 대한 기록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 기록은 더 오래된 그림 위에 덧대어 씌였다. 적어도 이 석굴 이전의 불교미술의 양식에 대해서는 여기서부터 출발하여 상상력만으로 해결해야 하니 여기 병령산 석굴이 얼마나 재미난 역사적 출발점인가? 절벽 아래에는 아기자기한 석굴들이 수십개 조성되어 있다. 천수천안 관세음,유마힐 보살이 어여쁘게 앉아 있고, 다보여래보살과 석가여래가 마주보고 이야기를 속삭이는 二佛倂座象이 볼 만 하다. 당시 중국인들은 보리수나무를 본 적이 없기에 바로 인접한 석굴에 따로따로 야자나무나, 미루나무 같은 모습으로 보리수를 그려 성불수행중인 부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
|
|
|


황하 모친상
그림같은 산을 배경으로 법사님
가족
병령산 석굴 바깥벽 <의자에 앉은 부처님>


아이고, 애기같은 부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