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고 입기 / 야 봉 


그래, 이젠 훨훨 벗어야겠다.

팔랑대는 바람개비 고사리손 움켜쥐고
나풀대는 호랑나비 잡으려다 넘어져 아파울던
유년기 아련한 기억의 흔적들일랑
앞산기슭 짜뚜리밭 속절없는 허수아비 허름한 외투위에
살포시 걸어놓고,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칼
석양에 붉게 물든 그네의 옆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짝사랑 아름답던
소년기의 애틋한 추억은 
앞냇가 방천뚝 흩날리는 갈대사이
달랑 내려놓고,

가슴이 찢어지는 첫사랑 실연의 아픔에
숱한 밤을 하얗게 지새며 절망하던 
사춘기의 애절한 사연은
마을어귀 당산나무 꼭대기에
겨우겨우 때어놓고,

화염이 자욱한 전장의 깃발아래 
시퍼렇게 날이 선 장검을 치켜들고
시시비비를 가려 선악의 경계를 짓고 육신을 혹사하던
청년기의 빛나는 이상은 
미루나무 꼭대기에 걸려있는 구름위에 
은근슬쩍 뿌려놓고,

아무도 찾지않는 외로운 산속에서
진리를 구하고자 고행을 자초하던 
장년기 구도자의 깨달음마저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솔개의 날개깃에
깊숙히 묻어두고,

아....꿈에도 못잊을
내 사랑 고운 사랑
너무 고와 미운 사랑 
너무 미워 이쁜 사랑
차마 벗지 못해 예까지 달고 온
아름다운 구속까지
밤하늘 흘러가는 은하수에 
고이고이 뿌려놓고,

다 벗고나니 참나만 남았는데
내가 3학년3반 야봉이가 아니구나....

다시 입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