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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엉겁결에 지리산 당일종주를 하게 됐다.
10일 저녁, 번개 천둥이 몹시 쳤다. 근래 이런 날씨는 처음이다. "내일도 틀렸구먼!" 사실은 1주일 전 3일도 그랬다. 밤새 내리는 비 때문에, 4일 새벽 배낭을 멨다 말다하다가 날을 샜다. 결국 지리산에 못 갔다. 그런데 딱 1주일 뒤 오늘도 그런다. 똑 같이, 아니 더 심하고 변덕스럽다. 월드컵 축구고 뭐고 자정이 지나자 집에서 나왔다. ‘한숨 더’ 하다보면 못갈 확률만 높아지니……. "날씨도 안 좋은데, 다음에 가세요." 허나 이 말은 내가 현관문을 이미 나간 뒤의 얘기라 다시 들어갈 수가 없다. 나는 지리산을 갈 때마다 꺼리(?)를 가지고 간다. 혼자서 낙낙히 걸으면서 그 꺼리를 생각하고 정리한다. 한 번에 안 되면 두세 번 가서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지리산을 가는 나만의 이유이다. 해마다 몇 번씩은 가는데 올해는 방학 시작되기 전에 가려고 한다. 방학 철이 되면 지리산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우리 둘째 놈이 그 꺼리이다. 고3인데 애비로서 딱히 해주는 게 없다.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을 묻어 버린 지 오래이기에 말로는 해줄 게 없다. "너 대학 들어가면 아빠랑 지리산 종주하자." 이 말이 전부였다. 제 엄마는 아들놈을 위해 날마다 반야심경을 한번 씩 쓴다. 그것도 외워서 쓴다. 일종의 불공인 셈이다. 벌써 대학 노트 22권 째를 쓰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야 하겠는가마는 큰애 때부터 시작한 일이다. 나는 불경을 외우지도 못하니 몸으로 때우기로 했다. 그래서 2년 전 딸애 입시 때도 지리산을 몇 번 갔다. 따라서 이번에도 가야 한다. 말하자면 ‘자식놈 대학입시 기원 지리산행’이다. 집을 나서 차를 몰고 가기 시작한다. 근데 고민이 하나 있다. 지리산을 어디에서 부터 시작하는가이다. 성삼재부터……. 아니면 백무동부터……. 좀 편하려면 백무동 쪽이 좋고……. 아니면 이때까지 가던 대로 성삼재로 갈까……. 어느덧 차는 광주교도소를 지나 도동고개를 넘고 있었다. 빨리 결정해야한다. 88을 타느냐 호남을 타느냐 잠시 후 나는 호남선에 있었다. 날씨도 별로고, 어둡기도 해서 성삼재 쪽을 선택했다. 성섬재에 이른 시각이 2시. 이것저것 준비도하고 먹기도하고……. 출발하려 하니 밖이 춥다. 배낭 속에서 재킷을 뺐다. 아뿔싸! 재킷이 아니라 바지다. 그럼 외투가 없는데……. 이 때 내가 24년 전에 샀던 트렁크 속 Summit 재킷이 생각났다. 작업복으로 입으려고 넣고 다니던 것이다. 이것이라도 감지덕지다. 3시. 천천히 걸어서 올라갔다. 4시 00분. 노고단대피소. 9시 00분. 연하천대피소. 밥해 먹고……술 좀 사려 했는데 안 팔아서 못 샀다. 11시 00분. 벽소령대피소. 사실은 벽소령에 자려고 예약을 해뒀는데, 시간이 너무 일러서 취소했다. 1시 50분. 세석대피소. 여기서 또 고민이다. 힘도 들고 여기서 잘까말까…… 그런데 아직 잘 시간은 아니고……에라 가자.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성삼재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하고, 준영이 대용이 재수는 백무동에서 세석대피소로 올라 온 일이다. 내가 세석에 도착하기 전 오후 3시 경 선비샘에서 준영이의 전화를 받았다. 이미 세석에 올라왔다고…… 나와의 거리 차는 약 2시간. “니그들 그냥 장터목으로 가라.” “아니어 올 때까지 기다릴게” “그럼 거꾸로 와라. 중간에서 만나서 같이 가게.” 그냥 해본 소리인데 진짜로 그들이 거꾸로 달려서 와버렸다. 징한 놈들…… 결국 중간에서 만나 체포되어 장터목까지 끌려간 적이 있다. 힘들었지만 마중 산행까지 대접받았으니 꼼짝도 못하고…… 그런데 선출이가 오후 5시가 넘어 백무동에서 출발하여 거의 두 시간 만에 달리다시피하여 장터목까지 올라와 합세했다. 그런데 선출이가 세운 백무동에서 장터목까지의 2시간이란 기록을 깼다는 사람을 본적도 들은적도 없다. 목적은 술 마실라고…… 징한 놈…… 그때 마신 술의 양과 안주 종류는 나중에 직접 들어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나는 술맛도 없고 해서 조금 마시고 잤다. 이런 연유로 당일 장터목까지 가본 적이 있다. 한번 해봤던 것이라고 어그적 어그적 장터목으로 향했다. 3시 50분. 장터목대피소. 힘도 들고 여기서 자야지……. “아저씨, 황도 하나, 물 한통 주시오.” “예.” “아저씨, 지금 들어가 쉴 수 있소?” “예약했습니까?” “아니오.” “그럼. 7시에 오시오.” “예?” “예약했으면 지금 입실이고, 아니면 7시에 오세요. 규정입니다.!” “……” 차가 노고단에 있으니, 백무동으로 하산해야 하는데…… 지금부터 3시간 동안 혼자 어디서 뭣하며 어쩌란 말이냐. 시간도 어중간해서 자고 내일 내려가기도 그렇고……쉴 데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천왕봉이나 올라가버리자. 뒷일은 올라가서 생각하고…… 5시 00분. 천왕봉. 한군데 전화하고, 한군데 문자 보내고 나니 할 일이 없다. 그 다음 대책은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 밖에 없다. 8시 00분. 중산리. 시간을 보니 17시간을 걸었다. 힘들었다. 천왕봉에서 어떤 사람이 묻는다. “어디서 옵니까?” “성삼재요.” “몇 시에 출발했습니까?” “3시요. 아저씨는요?” “8시 반에 출발했습니다. 선두는 벌써 내려갔고요.” “……” 산행을 하다보면 전쟁하듯이 하는 이들이 있다. ‘종주를 몇 시간에 끊느냐’ ‘태극이니’ ‘왕복종주니’ ‘왕복태극이니’ ‘1시간에 3km니 4km니’ 등등…… 하기야 이것도 기록으로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놈 대학입시 기원 엉겁결 당일 지리산종주’는 이렇게 끝났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일찍 자리만 배정받았어도 장터목에서 잤을 것이다. 그리고 연하천에서 술만 샀어도 장터목에서 잤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약이 다 차서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잘 수야 있었겠지만…… 아무튼 1박2일의 장비와 계획으로 갔는데, 예정과 계획에도 없던 당일종주가 되버렸다. 중산리로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비싼 대가를 치루고 광주에 올 수 있었다. 그래도 의미는 있었고, 무릎 안 상하고 몸 성히 하산한 것 만해도 감사한다. 다음날 차를 찾으러 구례에서 아침 10시20분 버스로 노고단에 올라갔다. 버스 속 앞자리에 각각 노인 두 분씩 두 일행이 있다. 한 무리의 두 노인분들은 평범한 차림이다. 다른 무리의 두 노인분들은 범상치 않다. 우선 체구가 엄청나다. 해병대 모자에, 해병대 군복을 위아래 입고, 해병대 군화에, 수통이 두 개 달린 탄대를 차고, 배낭은 엄청나게 크다. 노고단 올라가는 도중 네 노인분들은 쉽게 친해져서 대화를 주고받는다. “해병대시네. 나는 HID요. 반갑소. 그런데 어디서 오시오?” “부산이요.” “오늘 어디서 주무시요?” “연하천이요.” “우리는 벽소령인디.” “우리는 천천히 갑니다.” “내일은 요?.” “장터목이요.” “우리도 내일은 장터목인디 만나겄소. 근디 올해 몇이요?” “나는 67이고, 이 양반은 72요. 댁들은 예?” “나는 69고, 이 양반은 71이요.” ‘……’ 어느덧 성삼재. 이제는 버스 운전기사와 해병대 두 노인분과의 대화이다. “부산 양반들이 이제 나를 모른 체하시네.” “그게 아이라, 자주 보는디 뭐.” “제가 대접할 테니 차 한 잔 하고 가세요.” “안 마셔도 괜찮아. 다리 안 아프면 왕복 종주할거니까 그 때 만나서 마시지 뭐.”“ ‘……’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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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
2006-06-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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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 징한놈들 한두살 먹은것도 아닌디....... 허기사 아들 입시꺼리로 아부지의 할 수있는 것중 하나를 한 셈이니 아마 올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준호야. 바람많은 나라에서 왔다고 작년 겨울에 니가 만들어준 Dancing Bamboo(綠竹動淸風)은 잘 간직하고 있단다. ㅋㅋ 건강하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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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upark
2006-06-1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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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시간 씩 어떻게 걸어? 대단허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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