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퍼시픽 림] 새로운 차원의 거대 괴수 대 거대 로봇
스토리가 뻔하다. 주제도 뻔하다. 게다가 [판의 미로]의 기괴하고 어두운 괴물 캐릭터가 너절하고 메스꺼우며 스토리까지 괜한 똥폼으로 허세를 부려서, 길예르모 감독의 작품을 탐탁해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관심의 촉수가 수그러들질 않는다. 바로 거대 로봇 때문이다. 거기에다 거대 괴수와 맞짱까지 뜬단다. 거대 로봇이나 거대 괴수는 내 60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서린 원초적 감성을 건드린다. 5060시절에 도회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겐, 주변의 생활풍경이 대단히 일본풍이었다. 전라도의 중심도시는 원래 전주와 나주였고 광주는 평범한 시골이었는데, 일본이 광주를 식민지 거점도시인 도청소재지로 삼아서 새로 개발하였다. 그 뒤끝으로 광주는 5060시절까지 일본풍이 짙게 남아있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문화’에 온 몸을 적시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0여 년 전에 일본 교토의 어느 주택가 골목길을 한가롭게 걷다가 내 스스로 화들짝 놀랐다. 신기하게도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5살 시절로 되돌아 간 듯한 환상을 일으키며, 마치 타향살이에 지친 몸이 고향에 돌아온 듯한 정겨움이 촉촉이 밀려들었다. 누군가가 그걸 듣고선 우스개로 희희덕거렸다. “쪽바리 유전자를 받았구만!” 길거리의 갖은 풍물들은 물론이고 조그만 구멍가게(하꼬방)에서 파는 수많은 물건들도 그러하며, 심지어는 일본정원이나 다다미방에 오시리(붙밭이장)로 어우러진 주택을 비롯한 근대일본식 건물이 즐비하였다. 일상생활 언어에 일본말이 부지기수로 끼어들었고, 양복점이나 노가다를 비롯한 서양문물의 전문용어는 거의가 일본문화의 잔재로 남아있었다. 군대는 물론 학교생활의 갖가지 제도 및 교과서 내용에 시험문제까지 일본 것을 거의 그대로 베껴서 사용했다. 하다못해 영화나 만화의 내용을 거의 대부분이 일본 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그 껍데기만 우리 것으로 대체하였다. 해방 후에 미국문화가 넘쳐났다지만, 적어도 80시절 이전까지는 팝송과 서양영화 말고는 우리나라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일본풍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겉으론 일제36년이지만, 속으론 일제100년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일본어를 공부해서 일본책과 일본풍물을 접하면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일본문화에 젖어 있는가를 깜짝 놀랄 정도로 더욱 실감했다. 그래서 20세기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조선문화 · 일본문화 · 미국문화로 이루어진 삼각정립三脚鼎立안에서 잘 버무려야 한다.( 조선末부터 김대중정부이전까지, 가히 천지개벽이라 할 우리의 지난 20세기 100년이 온통 그러하다. 난 김대중정부가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정부’일 뿐만 아니라, 명실공히 ‘참다운 독립국가’를 이룩하였다고 여긴다. 그래서 ‘제2의 건국’이란 말이 매우 어울린다. 그걸 이명박정부가 완전 초쳐 버렸다. )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절은 10살에서 15살, 그러니까 1966년에서 1972년까지이다. 스무 명쯤 되는 우리 동네친구들하고 산과 들 냇가 그리고 구불구불 골목길을 누비며 놀던 천둥벌거숭이 시절. 얼마나 싸 돌아댕김서 놀았던지, ‘깜둥이’이란 별명이 스무 살 시절까지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하얀 건, 이빨과 발바닥뿐이었다. 아직도 배에 선명한 八자와 희미한 王자 씩스팩 그리고 가슴근육과 광배삼각근육에 허벅지와 장단지가 살아있는 것도, 근육운동을 따로 한 게 아니라 모두 산과 들 그리고 골목길과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저절로 생긴 것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에 나오는 얘기는 ‘새발에 피’다. 싸가지라곤 하나도 없는 빈민촌에서 ‘삼류문화’에 푸욱 젖어서 코흘리개가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 시간 반에 반만 더 공부했어도, 지금보다 열 배는 더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겠지만, 난 그 시절이 너무나 행복했다. 그 아름다운 시절의 놀이 반에 반쯤은 ‘만화와 영화’로 나날을 보냈다. 일찌감치 '만화와 영화'로 발랑까진 '헐리우드 키드'였다. 그게 영화감독을 향한 갈망으로 恨이 맺혀서, '꿩 대신 닭'이라고 이렇게 10여 년을 넘게 영화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삼류문화’의 거의 대부분이 일본풍이었다.( TV의 만화영화는 미국 꺼가 반쯤이었다.) 그 수많은 만화나 만화영화에 상당수가 로봇과 괴수였다. 스무 살 이전에 본 것에 기억나는 것만 나열해 보면, 만화 [철인과 땅꼬마] [삐빠] [철인 뿔] [알통] [아톰] / 만화TV [아톰] [빠삐] [철인28호] [마징가Z] / 만화영화 [황금철인] [로보트태권V] [번개아톰][전자인간337] 그리고 만화[용가리] [불가사리] [공룡탐험대] / 영화[용가리] [왕마귀] [공룡100만년] [공룡 대전쟁] · · · . 거의 대부분이 일본풍이거나 그걸 흉내낸 짝퉁이나 유사품이다.( [트랜스포머]의 원조인 ‘변신 로봇’은 우리보다 10여 년 뒷 세대에서 크게 유행했다. ) 워낙 여기에 깊이 빠져들어서, 요즘말로 가히 ‘오타쿠’라 할만 했다. 그런데 [퍼시픽 림]의 예고편이 심장 깊숙이에 숨어있던 그 아련한 추억의 말초신경을 건들었다. [리얼 스틸]처럼. 그것도 거대 로봇만이 아니라 거대 괴수까지 등장시켜서, 거대로봇과 거대 괴수가 맞짱을 뜬다니 보지 않을래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길예르모 감독의 작품을 탐탁해 하지 않는 걸림돌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퍼시픽Pacific 림Rim? Rim이 주변이나 태두리라는 뜻이어서, 태평양을 둘러싼 ‘태평양 연안지역’이라는 뜻이다. 6070시절의 일본풍을 원조로 하고 있고, 괴수들이 서식하고 있는 장소가 일본에 가까운 쪽이라서, 이런 제목을 붙인 것 같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65848&videoId=41177&t__nil_VideoList=thumbnail 영화 타이틀도 뜨기 전 10여 분 동안, 첫 장면부터 관객을 완전 압도한다. 입이 절로 떠억 벌어진다. 우선 예거(사냥꾼/독일어)로봇와 카이주(괴수怪獸/일본어)괴물의 크기이다. 트랜스포머의 로봇들도 거대 로봇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로봇과 괴물은 그 보다 10배 크기로 아파트 30층 높이란다. 참말로 어마어마하다. 로봇의 한 쪽 팔이 부러져서 해변가에 쓰러지는 장면은 정말이지 엄청나다. 자동차가 작은 성냥갑만 하니까, 사람은 성냥개비 너댓 개만 하다. 영화화면이 그 크기를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다.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하려고 괴수들을 보냈단다. 바다 속에 살기 때문에, 바다에 가까운 도시부터 공격해 온다. 첫 장면이 태평양 동쪽 연안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젓가락 작신 부러뜨리듯이 박살내고 짓밟으며 등장한다. 싸움장소도 해변가나 바다 그리고 해변도시이다. 해변도시에서 싸우는 장면도 어마어마하게 엄청나지만, 바다 속에서 싸우는 장면은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내뿌리는 물보라를 헤치며 싸우니 가히 엄청난 장관이다. 홍콩에서 싸우는 장면에서, 25톤의 기다란 유조선을 손에 쥐고 괴수를 작신 작신 두들겨 패는 엄청난 장면은 기발하고 매우 인상적이다. [트랜스포머]에서 항공모함이나 비행장을 작살내는 장면, 이집트 피라밋이나 파라오신전을 산산이 박살내는 장면, 몇 십층짜리 도시건물을 라면상자 찢어발기듯이 은박지 구겨버리듯이 작살내는 장면, 시카고 도심을 통째로 초토화시켜버리는 장면, 상하이 도심을 수수깡 부러뜨리듯이 난장판을 만드는 장면, 그리고 [맨 오브 스틸]에서 고층빌딩 너댓 개를 한꺼번에 박살내며 무너뜨려버리는 장면과 [월드 오브 투모로우]에서 거대 로봇이 거대 빌딩과 함께 쓰러지는 장면, 그리고 [투모로우]에서 뉴욕을 덮치며 밀려드는 거대 해일과 [2012]에서 수많은 도시들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부서지는 장면들이, 그 동안 입이 떠억 벌어지게 압도적인 거대 장면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퍼시픽 림]의 장면들은 그런 엄청난 장면과 액션을 다시 또 새로운 차원의 거대 규모와 거대 액션으로 올라서는 영상들이었다. 아쉬운 점들이 없지 않다. [고질라]나 [킹콩]과 [쥬라기공원] 그리고 [리얼 스틸]은 그 모습이 선명하고 섬세하며 액션도 리얼하고 강렬한데, 이 영화는 괴물이 얼렁뚱땅 대충대충이고 액션이 우악스럽긴 해도 휙휙 스쳐지나가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주연과 조연들이 연기를 못한 건 아닌데 왠지 카리스마가 화끈하질 못하고, 특히 여자주인공이 매력포인트가 없고 표정연기가 뻣뻣하여 맨송맨송 겉돌면서 맘을 파고들지 못한다. 스토리나 의미는 따지지말고, 그냥 비주얼만 즐기세요. * 대중재미 : 로봇이나 괴물 매니아는 A++, * 영화기술 A++,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엄청난 거대파 C+.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