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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세살이 인생의 반환점
이제 올해부터는 어머니 뱃속 나이부터 치면 쉰살이 됩니다. 내가 서른 아홉 되던 해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데, 그 나이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니, 나에게 맞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기념사업이 될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은 신체가 하향기에 접어들게 되므로 건강에 유의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내일은 WTO가 정한 세계 금연의 날입니다.'라는 방송을 듣고 1994년 6월 1일부터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몸이란 게 상식과 다르더라구요. 달리기를 죽 해 봤더니 체력이 점점 좋아지더니만 인제.원통에서 군대생활하던 때의 다리 수준으로 탄력이 회복되더군요. 또 나이란 놈도 계산하기 나름입니다. 우리 동기 중에 어떤 친구는 늘상 나이 한살 더 먹은 것을 자랑하며 "형님"을 팔아댑니다만, 지금 우리가 인생의 반환점까지 도달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암과 순환기 질환(심장병,고혈압 및 중풍 등의 뇌혈관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면 풍부한 영양 공급과 잘 발달한 의료수준 덕분에 우리세대가 평균 90세까지는 수명을 누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 15세까지는 아직 부모밑에 있어서 독립된 인격이 덜 형성된 것으로 치면 우리의 완전한 인생 75년중 반환점을 도는 해는 53세 때입니다. 그 算法대로라면 우리는 아직 인생의 반환점도 돌지 아니한 청춘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앞에 너무나 긴 삶의 旅程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오정,오륙도'라는 종착역을 의미하는 단어는 봉급장이 하는 햇수를 인생 전체인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하는 비속어에 불과합니다. 제 생각에는 '人生旅程'이라는 먼길을 여행하는 나그네가 중간에 자기 行裝을 점검하는 때가 지금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각오로 건강을 챙겨야겠고, 글로벌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영어나 중국어 공부도 해야겠고, 귀찮지만 눈돌아가도록 빠른 IT 환경의 변화도 즐겁게 소화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새로운 사업기회를 늘 살피고, 먼 미래를 보면서 미지의 세계 사람들과도 두루 사귀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 나이는 한창 투자가 진행되어야 할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의 차이, 인식의 차이가 지금의 우리를 중년으로 만들기도 하고 청년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知的 好奇心을 잃어버리는 순간 중년을 지나 노년이 되는 것이지요. 孔子님은 <나이 쉰이 되니 知天命하게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여러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만, 저에게 가장 와 닿기는 <비로소 내 限界를 알겠다.>였습니다. 욕심을 줄이고 처지에 맞게 安分自足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욕심을 줄인다.'든지, '스스로 만족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또 시대가 변해서 오십세라고 해봐야 아직 청년기인데 벌써 安分自足한다면 自家撞着이 아닐까요?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생각의 한가닥을 잡아 두었습니다. 아직은 돈버는 일에 여전히 애를 써야겠지만 앞으로는 작은 돈만 가지고도 만족하며 사는 법도 익혀야겠구나. 지난 구랍에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교?>등 좋은 책을 내셨던 전우익 선생님이 모범적인 삶을 마감하고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몇년 전 선생의 삶과 글을 접하고 나서 '내 後半生을 그렇게 살아봐도 좋겠구나.'라는 동경심을 가졌었습니다. 누구에도 피해를 주지 않고 철저히 자연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 해뜨면 텃밭에 엎드려 자기 먹을 푸전거리를 가꾸고 해지면 잠자리에 드는 삶. 그리고 새벽이면 일어나 독서,명상,기도를 할 수 있다면...... 거기에 더해 이웃에게도 따뜻한 손을 보탤 수 있는 남는 힘을 가질 수 있는 삶이 된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생각이 떠올랐다고 하더라도 실천한다는 것은 별개의 큰 일입니다. 지난 구랍에 마누라랑 뭔 궁리를 좀 해봤습니다. "어이, 마누라! 올해부터는 우리 둘이서 매월 하루씩 날을 잡아서 좋은 일 한번 해보세. 뭔 일을 하는 것이 좋을까?" 우리 부부가 합동으로 소위 '慈善奉仕活動', 요즘 버전으로 '公益活動'을 해 보자고 하였습니다. 우리 나이로 보건대 불우 이웃에게 돈을 조금 布施하던 데서 한걸음 더 나가서 몸보시를 할 때가 왔다고 합의를 한 거지요. 그런데 그 담부터 각론으로 들어가니 참 어렵대요. '우리가 지금 줄 때인가,줄 돈이 있나?' '매월 돈을 얼마나 부담하는 것이 우리 형편에 적당한가?' '우리 주변에 친지,친구 등도 어려운 이가 많은데 굳이 밖에 있는 사람부터 도울 필요가 있을까?' '일단 돕겠다고 나섰는데 시작한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면 주고 받는 당사자 서로가 상처를 받고 끝나지 않을까?' 이렇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평소 인연이 닿아 있는 학력인정 야간고등학교(www.jalani.or.kr)에서 시작할 겁니다. 이 학교 3학년 학생 중에서 정원이 7-8명 쯤인 <예술감상부>라는 동아리 하나를 맡아 지도교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3월부터 6월, 9월부터 12월까지 8개월간 매월 한차례씩 동아리 회원들을 초대하여 연극이나 영화,컨서트 등을 감상하는 겁니다. 그리고 돼지갈비집 같은 데서 회식을 한 후에 <민들레영토>같은 카페에서 그 날의 예술감상 소감을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지요. 고등학교를 진학할 형편이 안되어 낮에는 공장에서 시달리다가 해가 진 뒤에 <학력인정고등학교>에 모여 앉아 졸린 눈을 비비며 무언가를 배워보겠다는 꼭 우리 자식들 만한 또래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휴일을 제공하고 거기에 예술이라는 것을 인생에 접목시키는 기회를 갖도록 한다는 계획입니다. 내 청소년기, 그 고단했던 고등학교 시절. 서울에서 내려온 성악가(테발디,김청자 등)들의 독창회 연주회를 들으며 그리고 '초원의 빛','자이언트','미드나잇 카우보이'같은 영화를 보면서 삶의 피로를 씼어 낸 후 새 힘을 얻은 적이 많았습니다. 불우한 청소년에게 예술을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꼭 해볼만한 프로젝트입니다. 아내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애들이 거칠면 어쩌나하고 심난해 합니다. 나는 지도교사가 될 준비를 하기로 맘먹었습니다. 클럽활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토론을 체계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이제부터 예술에 대해 공부를 좀 하려고 합니다. 학교가 쉬는 4개월은 친인척 중 어려운 분들을 찾아뵙는 날로 정했습니다. 이런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남들에게 공개하다 보니 참 쑥스럽습니다. 옛말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혹은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내가 한 일을 의식하고 생색을 내게 되면 그것은 積善을 하는 것이 아니고 業을 쌓는 일이 되고 만다.'고 했습니다. 나 스스로가 워낙 부족한 사람이라 기왕지사 하기로 맘먹은 일을 남에게 발설까지 해 두었으니 남의 눈이 무서워서라도 좀 더 열심히 하게 되지 않을까? 또 친구들이 격려해 주고 지원해 주면 그 기분에 기대서 더욱 분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때문에 이렇게 속마음을 글로 옮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새해 벽두에 가진 이 맘을 잘 간수하고 착실히 실천해서 연말에는 제법 보람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광주일고 51회 동기 여러분 새해에는 모두들 '發福하시고, 作福하시기를 빕니다." 김태룡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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