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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사태'가 남긴 것(정석구의 글을 옮김)
휴머니스트이며 양심적 지식인인 우리들의 친구 정석구가 2004.9.20자 한겨레신문에 쓴 명칼럼을 소개합니다. 그의 추상같은 질타가 이 시대의 양심적 지식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태룡) ======================================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결국 물러나게 됐다. 지난 9월10일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문책적 경고’를 받고 금융계에서 사실상 영원히 추방된 것이다. 그럼 김정태씨가 제거된 것으로 모든 게 끝났는가. 아니다. ‘김정태 사태’는 오히려 금융감독기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고,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과제를 우리에게 남겼다. 우선 ‘김정태 사태’는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감독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의 신뢰도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금감원은 줄곧 국민은행이 명백히 회계기준을 위반했다고 하지만 회계업계와 국민은행은 아직도 이를 수긍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 집단과 피감기관한테서 인정받지 못하는 감독기관은 권위를 잃는다. 벌써부터 형평에 어긋난 이런 식의 회계감리를 하려면 감독원의 감리기능을 아예 없애라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회계감리를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지 심각히 고민해야 할 때다. 이번 사태는 또 금융감독 기관이 과연 ‘법과 원칙’에 따라 일처리를 하고 있는지 강한 의문을 갖게 한다. 금감원 규정상 회계기준 위반과 관련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법적 기구는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다. 증선위 논의 과정도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일단 권한이 있는 증선위가 ‘중과실 3단계’, ‘과징금 20억원’이라는 징계를 내렸다면, 그것으로 국민은행 회계기준 위반 사건에 대한 징계는 종결된 것이다. 금감원은 증선위의 ‘중과실 3단계’는 자동적으로 ‘문책적 경고’를 의미한다며 금감위에서 징계를 강행했지만 이런 절차에 대한 어떤 명문 법규도 없다. 금감원은 ‘금융기관 제재양정 내부 운용기준’을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이는 법적 근거가 미약한 금감원 내부 지침일 뿐이다. 만약 국민은행의 회계기준 위반이 정말로 문제가 됐다면 ‘법적 권한’이 있는 증선위에서 ‘문책적 경고’든 ‘임원 해임’이든 조처를 취해야 했다. 결국 금감위는 ‘불법적으로’ 김 행장을 징계한 셈이 된다. ‘김정태 사태’는 또 우리 사회의 전문가 집단이 과연 제대로 구실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정부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얼마나 존중하고 받아들이는지를 가늠하는 좋은 잣대였다. 적어도 이번 사안에 관한 한 외부 전문가들의 견해나 판단은 거의 없었거나 무시됐다. 감독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외부 전문가들은 겉으로는 소신있는 척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감독기구의 논리에 동조했다. 금감원은 한 술 더 떴다. 외부 회계 전문가로 구성된 회계감리위원회의 다수가 국민은행의 회계처리는 문제 삼기 어렵다고 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중징계를 강행했다.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켜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국정철학은 온데간데 없고, 외부전문가들은 여전히 들러리 취급을 받고 있다. 관치금융 부활도 논란거리다. 김 행장은 그동안 관치금융에 맞서는 시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이번 사태의 전말을 보면 이런 김 행장에게 관료들(‘유사관료’ 포함)이 뭇매를 가하는 양상이었다. 멀리는 “시장은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다”라는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경고발언’에서 시작해, ‘김정태는 문책 경고감’이라고 일찌감치 결론을 내리고 검사 과정에서 입수한 문건까지 흔들어댄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 김 행장 문책은 ‘법과 원칙’에 따랐다고 강조하는 윤증현 금감위원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결국 시장에 대한 관치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이는 노무현 정부 초기 잠시 고개를 숙였던 재무관료들의 영향력이 복원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앞으로 이들의 금융시장 장악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외환위기 이후 겨우 자생력을 키워가고 있는 금융시장은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이런 문제와는 별도로 후임 국민은행장 선임을 놓고 물밑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누가 후임 행장이 되느냐를 보면 이번 사태의 또다른 숨은 의도가 드러날 것이다. 정부가 다루기 쉬운 관료 출신을 내려보낼지, 풍문대로 부산·경남 인사가 낙점될지, 아니면 제대로 검증된 행장이 뽑힐지 지켜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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