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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과 상사화
올 설날 광주 집 마당에 더미져 있던 상사화 몇 포기를 서울집에 옮겨 심었습니다. 내심 이게 서울에서 얼어죽지 않으려나 걱정하면서... 나무나 꽃을 옮겨 심을 때, 야물딱지게 심되, 심고 나서는 들썩거리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놈의 상사화란 게 여름이면 도대체 살았는지 죽었는지 잎도 꽃도 없으니... 제대로 심었는지, 제대로 뿌리를 내렸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던 것이 한 일주일쯤 전에 꽃대를 올리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에는 그 진홍색 꽃무리를 피웠습니다. 다행이다 싶고, 반갑기도 하고... 아무튼 흐뭇하게 아침저녁으로 꽃을 보면서도 내심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보냈습니다. 매일 시시각각 아이 학교로 정확하게 다가서는 허리케인 Ivan 때문에 잠을 설쳤습니다. 시속 150마일짜리 초대형 태풍이 예측한 데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내심 다른 데로 좀 빠져나가라고 빌기도 했지만, 매정하고도 야속하게, 아이가 있는 Alabama Birmingham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억에 생생한 사라호 태풍이 시속 40킬로, 내가 중학교때 경험한 태풍이 시속 30킬로인데, 시속 150마일이란 도대체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큰놈은 아주 짤막하게 " i am ok, i know huricane is coming right through Brimingham and we have procedure for emergency situation. Don't worry."란 멜만 날려 놓고 종종 무소식이었습니다. 게다가 CNN에서 나오는 멕시코만의 피해상황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배들이 집을 덥치고, 도로가 툭툭 끊겨 나가고, 전신주가 뽑히고, 0.5톤짜리 악어가 동물원에서 태풍을 틈타 거리로 탈출하고... 전기가 완전히 나가고... 칠흙같이 어두운 대낮에 번개가 번득이고... 견디다 못해 오늘 바로 좀전에 학교로 전화를 했습니다. 기숙사에서 함께 사는 여선생이 전화를 받더니...오늘 새벽까지(불과 3시간전까지) 아이들을 모아놓고 영화 상영을 했다. 전원도 나가지 않았고, 학교에도 전혀 피해가 없었다. 오늘 학교는 쉰다.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시내로 쇼핑갈 생각이다.... 날씨? Beutiful sunny day. Really fantastic. (깔깔대면서) 아이들이 정말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내가 여기서 25년을 살았는데 이런 태풍은 첨이다... 참 좋은 경험이었다... 연락 없으면 잘 있는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더니...(사실 이말은 제가 마누라에게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태풍 지나갔고 아무일 없었다고 한마디 전화나 멜하면 어디 덧나나 싶고...무심한 큰놈이 은근히 원망스럽기도 하고, 아무일 없다니 다행스럽기도 하고... 하기사 저도 돌이켜보면 대학때 거문도에서 태풍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서너시간 옆으로 내리는 비때문에 눈을 뜰 수 없어 고생했지만, 집에 전화는 사흘 후에사 돈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자식들 이야기를 올리고 나서 가끔 친구들에게 아이를 강하게 키웠다고 분에 겨운 칭찬을 듣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자식에게 읽어보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자식 있는 사람은 어디서 큰소리도 못친다고들 합니다. 저도 사실은 그렇습니다. 가지않은 길을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인생인지라 더욱 옴츠려듭니다. 하지만 자식도 나무 옮겨심듯 꾹꾹 발로 밟아 야물딱지게 심고, 그러고나서는 들썩거리지 말고 내버려 두는 게 옳은 일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최승철: 자식을 멀리두고 얼마나 깊은 생각이 드는지 짐작이 되네. 하지만 이번 Ivan 도 생각보다 적은 피해를 (상대적인 이야기지만) 내고 지나간것에 다행 스럽게 생각하네. 여기 미국 남동부는 일년이면 여름철에 약 10개정도의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관계로 대피나 이재민 구호 시스템이 상당히 잘되있다네. 특히 의무교육인 학교들은 각 주, 그리고 시, county 단위로 대피나 여러가지 대책 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시스테메틱 하게 되어 있으니 큰 걱정은 안해도 될거라 생각하네. 다행이 아무 일이 없었다니 좋은 일이고 맘 졸이는일 없어야 할텐데 말이네. -[09/19-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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