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명호 343개, 파란만장한 일생 대변”

주영재 기자

최준호 옥과미술관 관장 분석

추사 김정희는 중국의 옹방강과 완원을 스승으로 삼았다. 완원은 53개의 명호(名號)를 썼던 인물이다. 명호란 이름과 자(字), 호(號)를 통칭하는 말이다. 청출어람이라던가. 추사는 그보다 많아 학자들에 따라 96~461개의 명호를 쓴 것으로 파악된다.

국립대만사범대 미술대학원에서 전각학을 전공한 뒤 6년간 추사의 명호를 연구한 최준호 옥과미술관 관장은 최근 저서 <추사, 명호처럼 살다>(아미재)에서 추사의 명호를 343개라고 밝히고 이를 명호, 한글명호, 도형화된 문자부호의 명호 등 13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그는 “추사에게 명호는 세상과의 소통 수단으로 자신의 학식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기 위한 그만의 표현법이자 문자향(文字香)·서권기(書卷氣)의 끼를 드러내는 수단이었다”며 “추사는 명호처럼 살다가 생을 마쳤다”고 밝혔다. 김정희는 1809년 연경행을 앞두고 명호를 ‘추사(秋史)’로 바꾼다. 바로 전에 썼던 명호는 ‘검고 깊으며 심오한 난초’를 뜻하는 ‘현란(玄蘭)’이었다. 중국행을 앞둔 그에게 ‘추사’는 일생일대의 모색과 전환을 상징하는 명호였다. ‘추사’의 ‘추’에는 ‘추상같다’ ‘오행(五行) 중 금(金)’ 등의 의미가 있고, ‘사’에는 ‘사관’ ‘서화가’ 등의 뜻이 있다. 저자는 이를 종합해 추사를 “추상같이 엄정한 금석서화가”로 파악한다.

편지첩 ‘나가묵연’ 중 초의선사에게 보낸 어느 편지, 46.4×33.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편지의 말미에 써진 ‘춘분일용정(春分日龍丁)’은 ‘2월 말경 임금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편지첩 ‘나가묵연’ 중 초의선사에게 보낸 어느 편지, 46.4×33.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편지의 말미에 써진 ‘춘분일용정(春分日龍丁)’은 ‘2월 말경 임금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이 명호가 “파란만장한 추사 일생을 대변한다”고 보았다. 이 명호를 쓴 동기가 ‘가을 서리같이 엄정한 문장가나 서화가가 되자’였고 그대로 결과를 맺었기 때문이다. 명문 세도가에서 태어나 탄탄대로의 벼슬길에 올라 금석학자로 명망을 얻었으나 말년에 가을처럼 쓸쓸한 귀양살이를 한 그의 일생과도 들어맞는다.

금석학 분야에서 추사의 해박함을 잘 보여주는 것은 ‘륵(륵)’ 관련 후미운(後尾韻·글 말미를 장식하는 운으로 저자가 만든 용어)이다. 중국 <강희자전>에서 ‘륵’은 ‘돌이 (비바람에 의해) 결에 따라 갈라지는 것’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비롯해 <한어대사전>에서는 ‘금석에 문자를 새김’ ‘글을 쓰다’는 의미로 발전했다. 추사는 ‘륵’을 ‘글월을 쓰다’ 혹은 ‘돌에 힘들여 새기듯이 글월을 쓰다’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추사는 이를 제주도 귀양살이가 절반을 넘을 즈음부터 유난히 많이 썼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처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추사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나 호소하고 싶은 것을 토로하고 담아내는 명호를 지속해서 지어 썼다”고 봤다. 명호를 변형하거나 새롭게 창출해 쓰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했기에 “추사가 오래 살았더라면 더 많은 명호가 생산되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새로운 추사 작품이 발견되면 명호 개수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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