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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이윤헌
작성일 2017-03-16 (목)
ㆍ추천: 0  ㆍ조회: 1048   
친구야, 나의 한여름의 꿈을 잠깐 얘기해도 될까?
1974년 여름이었어. 우리는 그 시절 교복을 입고 돌아다녔잖아? 여름 방학을 맞아 한 손에 악기를 든 채 버스에 올라탔어. 꿈에 부푼 채 처음으로 서울로 갔던 거 같애. 1학년 어느날 관현악 연습 소리에 이끌려 찾아간 뒤로 운동장에서 뛰놀기 아니면 연습실에서 악기를 불어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던 청소년이 말이지. 음악 선생님께서 내게 열쇠 뭉치를 맡길 정도였으니, 얼마나 그 속에 빠져 살았을지 짐작이 되지 않겠나? ㅋㅋ 게다가 "열심히 하면 음대 갈 수 있어"라고 하시니, 곧이 곧대로 믿고 열심을 부렸던 거 같애. 그러다가 여름 방학이 되니까 사전 답사 겸해서 서울로 올라갔던 거야.
철부지가 그나마 '서울 음대는 당연 안되겠고, 연대 음대도 안될 거 같고, 뭐, 경희대 음대 정도는 해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지. 그래서 경희대 음대를 찾아 떠났던 거야. 대학 들어갔더니 '무식한 딴따라'라고 얕잡더라고. 그럴지라도 음대생에 대한 부푼 가슴을 안고 버스를 갈아 타고 찾아갔었지. 여름 방학이라 대학생들 형들은 잘 보이지 않는데, 물어 물어 찾아간 음대 건물은 너무 매혹적이었어. 요즈음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건물들이 모두 다 깍두기 모양이었는데, 오! 크라운 모양이라니? 가슴은 더욱 콩닥거렸지. 건물에 들어섰는데 조용하더라고. 음대생들도 방학이라 별로 나오지 않았나봐. 그런데 마침 악기 소리가 들리는데, 마침 내가 불던 오보에 소리였던 거야. 귀를 쫑긋하며 그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갔어.
노크하고 들어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러지 않았겠어? 교복 입고 찾아온 고등학생을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더군.
"무슨 일로 왔니?"
"음대 들어오고 싶어서요."
"어, 그래? 어떤 교수님께 사사 받는데?"
"예???"
"아니, 어떤 교수님께 레슨 받고 있냐고."
"레슨을 안 받고, 교본 보고 혼자 연습했는데요."
"아니, 레슨을 받아도 떨어지는데, 독학으로 음대 오겠다고?"
참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말을 잇지 못하더니, 잠시 후 한 마디 하더군.
"악기 가져왔지? 한 번 불어봐. 내가 한 번 봐줄게."
'음대 교수들한테 레슨을 받고서도 떨어지고 붙고 한다고? 그런데 한번 들어봐준다고? 자기가 입학 사정관이야 뭐야?'
자존심 되게 상하더군.
"아니, 됐습니다."
여름이었지만, 내 가슴에는 찬 바람이 세차게 불더군. 당시 광주로 오가는 고속터미널은 동대문에 있었어. 동대문까지 찾아왔는데, 도저히 광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어. 전국으로 떠나는 버스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대천 해수욕장으로 떠나는 버스도 보게 됐어. 대천해수욕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저 '해수욕장'이라는 단어때문에 바람이라도 쐬면서 너른 바다를 쳐다 보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았어. 그래서 대천해수욕장 티켓을 끊었지. 모두들 해수욕장으로 떠나는 복장인데, 교복을 입고 악기를 든 고등학생이 그 차에 함께 탄 거지.
대천해수욕장이 참 넓더군. 수영복 준비도 안되었지만, 마음이 전혀 아니었잖아? 그 바닷가를 따라 완전 이방인이 되어 걷고 또 걸었지. 너른 바다가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주긴 했지만, 광주로 떠나긴 해야 하는데 그래도 직행은 하고 싶지 않았던 거 같애. '장항행? 음, 전북이니까 남쪽이지' 그러면서 올라탔고, 금강을 배 타고 건너, 야구 명문 군산상고가 있는 '군산'에 도착했지만, 고등학생 마음엔 그저 완행 버스를 갈아타고 돌아오는 길밖에 안 남았어. '뭐야? 열심히 하면 음대 갈 수 있댔잖아?' 이 물음만 계속 메아리치고 말이지.
그래도 우리는 피 끓는 학생들이잖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일에 맞춰 연습을 계속 해갔던 거지. 그 뒤로 사랑스러운 오보에와 안녕했던 거지. 때로 너무 그리워서 종로 악기점에 중고를 물어본 적 있었어. 헐~ 프랑스제였던 거 같은데, 중고가 수백만원 하더군. 대학생 입장에서 그냥 나올 수 밖에 없었어.
이름아이콘 김영석
2017-03-17 11:54
오랫만에 여기에 들렀다가 친구의 글을 읽었는데 왠지 마음이 짠해지네.....
그시절에 우리가 조금 여유있게 살았었다면 친구는 하고싶은 음악의 길을 갔을거고
지금쯤 유명한 예술인이나 음대교수? 가 되어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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